중앙은행의 기후변화 관련 정책이 과학적 근거나 재무 데이터보다 국내 정치적 요인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28일(현지시각) 블룸버그는 미국 UC버클리(UC Berkeley)와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의 공동 연구를 인용해, 중앙은행이 독립적으로 기후 리스크를 관리하기보다는 국가 기후 정책에 영향을 받아 대응한다고 전했다. 연구는 이로 인해 중앙은행이 정부 기조에 따라 탈탄소 정책을 강화하는 역할도 할 수 있지만, 정책이 부재할 경우 이를 보완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기후 정책의 강도, 기후변화에 대한 국민 우려 수준과 강한 상관관계
각국 중앙은행의 기후 리스크 접근 방식은 상당한 차이가 났다. 일부는 전환 리스크와 물리적 기후 리스크를 금융 리스크 관리 절차에 통합하는 ‘기후 리스크의 내재화(re-risking)’에, 다른 일부는 청정에너지 투자를 유도하는 ‘탈위험화(de-risking)’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공동 저자인 조나스 멕클링(Jonas Meckling) UC버클리 교수는 “중앙은행의 기후 리스크 접근법 차이가 뚜렷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기후리스크 관리에서 선도국은 더욱 강화되고, 선도국과 후발국의 간극이 더 벌어지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중앙은행의 기후 리스크 관리 수준은 해당 국가의 전환 리스크 노출 정도나 화석연료 산업 규모와는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았다. 대신, 기후 정책의 강도나 기후변화에 대한 여론과 강한 상관관계를 나타냈다. 기후 정책이 엄격한 국가일수록 ‘기후 리스크의 내재화’를 강화하고, 대중의 기후에 대한 우려가 큰 국가일수록 ‘탈위험’ 활동이 더욱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공동 저자인 에스터 시어스(Ether Shears) 캘리포니아주 석유시장감독국 부수석이코노미스트는 “중앙은행의 기후 대응이 기후 관련 경제 리스크와 연계돼 있다는 증거는 제한적”이라며, “중앙은행이 지구온난화로 인한 자산가치 하락과 같은 경제적 위험보다, 국내 정치와 밀접하게 연관된 기후 이슈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었다”고 말했다.
‘정치적 중립’ 내세운 중앙은행, 기후 대응엔 정치 따라 움직여
모르간 데스프레(Morgan Després) 유럽기후재단 국제기후금융 총괄은 “그린딜 같은 기후정책이 중앙은행에 일정한 도덕적 압력을 가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정치나 사회 우선순위가 바뀌며 그 동력도 사라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표면적인 관심은 줄었지만 많은 중앙은행들이 여전히 기후 관련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각국 중앙은행은 기후 문제에 대해 ‘정치적 중립성’을 내세우고 있다. 올해 초 벨기에중앙은행 총재 피에르 분쉬(Pierre Wunsch)는 “중앙은행은 운동가가 되어선 안 된다”고 말했고, 사라 브리든(Sarah Breeden) 영란은행 금융안정 부총재는 “중앙은행은 자기 영역을 지켜야 하며, 탄소 중립 정책에 대한 선출직 공무원들의 논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제롬 파월(Jerome Powell)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연준의 임무는 에너지 전환을 촉진하거나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며, 감독기관에 기후 리스크를 인식하고 관리하도록 요구하는 제한적인 권한만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선 전부터 연준은 기후정책에 대해 소극적이었지만,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는 공화당의 반기후 정책 강경론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연준은 올해 1월 ‘녹색금융을 위한 중앙은행 및 금융감독기구 간 글로벌 협의체(NGFS)’에서 탈퇴했으며,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의 기후 프로그램 축소도 압박하고 있다.
英·EU 중앙은행, 기후정책 강화
“녹색전환, 단기 신용위험 유발”…독일 중앙은행 경고
반면, 키어 스타머(Keir Starmer) 노동당 정부가 넷제로(Net Zero) 정책을 방어하고 있는 영국에서는, 영란은행 산하 건전성감독청(PRA)이 금융기관의 기후리스크 대응 강화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촉구했다. PRA는 지난달 말 발표한 자문 보고서에서 “기후리스크 관리 능력이 향상되고 있으나 아직 불균형하고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유럽중앙은행(ECB) 역시 금융감독 및 통화정책에 기후·자연 요소를 통합해 반영 중이다. 일부 회원국의 규제 간소화 요구에도 불구하고 EU의 그린딜은 유지되고 있으며, ECB는 환경 고려의 중요성을 꾸준히 강조하고 있다.
한편, 독일 연방은행(분데스방크)이 발표한 최근 보고서는 “녹색 전환이 기업 대출 포트폴리오에 미치는 단기 영향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고배출 기업은 신용위험이 “상대적으로 더 급격히 증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분데스방크의 에너지 전환 스트레스 테스트 시나리오에 따르면, 비금융기업의 평균 부도확률은 향후 3년간 최대 40%까지 상승할 수 있으며, 이는 은행 개별 수익성뿐 아니라 금융 시스템 전반의 안정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단, 이들은 “기후가 금융에 미치는 영향을 계량화하는 작업은 아직 초기 단계이며 불확실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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