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법원이 유럽 최대 종합에너지 기업 RWE를 상대로 페루 농부가 제기한 기후 소송을 기각했다. 법원은 30년 내 침수 피해 가능성이 1% 수준에 그친다는 전문가 판단을 근거로, 손해배상 청구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판시했다.

로이터는 28일(현지시각) 이번 판결이 10년에 걸친 국제 기후소송의 선례가 될 것으로 주목받았으나, 법원이 항소를 불허하고 사건을 종결했다고 보도했다.

페루의 루시아노 이우야 농부가 독일의 RWE 기업을 대상으로 자택 침수 위험에 대해 책임 지고 보상해야 한다고 소송을 냈다. / ChatGPT 이미지 생성
페루의 루시아노 이우야 농부가 독일의 RWE 기업을 대상으로 자택 침수 위험에 대해 책임 지고 보상해야 한다고 소송을 냈다. / ChatGPT 이미지 생성

 

기업 상대 기후소송, ‘혹시나’ 했지만…법적 요건은 충족 못해

이번 사건은 10년 전 페루 안데스 산맥 외곽에 거주하는 농부 사울 루시아노 이우야(Saul Luciano Lliuya)가 RWE의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빙하가 녹아 수위가 상승해 자택이 침수 위험에 빠졌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RWE가 특정된 이유는 지역 인접성과 무관하지만, 유럽 내 대표적 대형 배출 기업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탄소메이저(Carbon Majors)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화석연료 기업 100여 곳으로, 원고 측은 이 탄소메이저의 배출 데이터를 추적한 데이터베이스로 산업혁명 이후 전 세계 배출량 중 약 0.5%가 RWE에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해당 수치를 근거로, 350만달러(약 47억6000만원) 규모의 홍수방지 사업 중 1만7500달러(약 2380만원)를 RWE가 부담해야 한다는 계산이었다.

고등법원 재판부는 페루 우아라즈(Huaraz) 지역을 직접 방문하여 빙하 호수의 수위와 범람 위험을 조사했으며, 전문가 보고서를 검토한 뒤 “30년간의 피해 위험이 1%에 불과해 손해의 개연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며 소송 기각 결정을 내렸다. 다만 판사는 “본 소송은 전 세계 남반구와 북반구, 빈곤국과 선진국 간의 문제를 압축한 상징적 사건”이라며 원고 측 논리가 일관되고 성실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주요 배출자에게 기후 피해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인정했다.

RWE는 성명을 통해 “NGO의 기후정책 요구를 법정에서 논의하는 것은 잘못된 방식은 잘못된 접근”이라며 소송 기각을 환영했다. 이어 “RWE는 204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독일 산업계는 이미 다른 국가 대비 온실가스 감축에서 선도적 진전을 이뤘다”고 덧붙였다.

 

원고 측 “기후 정의를 위한 전진”…향후 소송의 판례 가능성

런던정경대 그랜섬 기후연구소의 노아 워커-크로포드(Noah Walker-Crawford) 연구원은 법원 결정 직후 “위험률에 대한 판단에는 아쉬움이 있으나, 이번 판결은 기후변화로 피해를 입은 다른 사람들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원칙을 마련한 것”이라며 상징적 승리를 강조했다.

소송 당사자인 이우야는 이날 법정에 출석하지 않고 페루 우아라즈 지역의 자택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기업 책임을 묻는 전례를 만들고자 했다”며 “비록 전부를 얻진 못했지만, 기후 정의에 있어 큰 진전을 이뤘다”고 밝혔다.

한편 상징성을 남긴 역대 기후소송으로, 2021년에 네덜란드 헤이그 지방법원이 셸(Shell)에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45% 감축하라고 명령한 판결이 있었다. 해당 판결 역시 기업의 기후변화 책임을 법적으로 인정한 첫 사례로 평가받으며 이번 이우야의 기후소송과 함께 상징성 있는 전례로 남을 전망이다. 또한 기업의 탄소배출에 대한 책임 소재에 있어 과학적인 근거가 일관적으로 증명된다면 법정에서 고려될 수 있다는 원칙이 세워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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