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피해에 대한 기업 책임이 법적으로 인정되기 시작했다.
로이터통신은 12일(현지시각) 콜로라도주 대법원이 엑손모빌(ExxonMobil)과 선코어에너지(Suncor Energy)를 상대로 제기된 지방정부의 기후 손해배상 소송을 정식 재판 절차로 허용했다고 보도했다.
“기후 피해는 규제 아닌 책임”…주법으로도 배상 소송 가능
이번 판결은 2018년 볼더시와 볼더카운티가 제기한 민사소송에 대한 것이다. 이들은 엑손모빌과 선코어에너지가 화석연료의 기후위기 유발 가능성을 수십 년간 은폐하고 대중을 오도했으며, 이로 인해 야기된 산불, 홍수, 폭염 등 각종 기후 재난 대응 비용을 지자체와 시민이 떠안게 됐다고 주장했다.
특히 두 기업은 1970년대부터 화석연료가 지구 온난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과학적 사실을 내부적으로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외부적으로는 이를 축소하거나 부정하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유포했고, ‘기후과학은 불확실하다’는 주장을 마케팅에 활용해 정책적 대응을 지연시켰다는 점이 핵심 쟁점이다.
볼더 측은 기업의 행위가 단순한 산업 활동이 아니라, 기후위기 피해를 알면서도 이를 은폐·조장한 기만적 책임 행위에 해당한다며, ▲공공 및 사적 불법행위(nuisance) ▲불법 침해(trespass) ▲부당 이득(unjust enrichment) ▲기만적 공동행위(civil conspiracy) 등의 혐의를 제기했다.
피고 기업들은 연방법인 ‘청정대기법(Clean Air Act)’이 온실가스 문제를 규율하는 만큼, 이 사건은 연방 법원에서 다뤄야 하며 주법 기반 소송은 무효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콜로라도주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수 의견을 낸 리처드 가브리엘(Richard Gabriel) 판사는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규제가 아니며, 기후 오도 행위에 대해 주법에 따른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밝혔다.
기후소송 본격화…“기업도 법정에서 책임질 수 있다”
이번 결정은 하와이 대법원이 2023년 호놀룰루시의 유사 소송을 본안 심리 대상으로 인정한 데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주(州) 대법원이 기후 피해에 대한 기업의 법적 책임을 정식 재판에서 다루기로 한 사례다. 하와이 판결은 2024년 초 연방대법원이 석유회사 측의 상고를 기각하면서 그대로 유지됐다.
특히 석유·가스 생산이 활발한 내륙 지역인 콜로라도에서 원고 측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는 점에서, 기후소송의 관할성과 법리 적용이 피해 도시를 넘어 에너지 산업 거점으로까지 확장됐다는 상징성을 지닌다. 콜로라도는 선코어의 대형 정유시설이 위치한 주이자, 셰일가스 개발이 집중된 덴버-줄스버그 분지(DJ Basin)를 포함하고 있다.
콜로라도 대법원은 “이 소송은 온실가스 배출 자체를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기만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요구”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반면 소수의견을 낸 사무어(Samour) 판사는 “이런 판결이 각 지방정부가 국제 기후정책에 개입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원고 측 변호인인 마르코 시몬스(Marco Simons)는 “이 판결은 단순한 배상 문제가 아니라, 기후 과학을 왜곡한 기업의 행위에 대해 공적 기록을 남길 수 있는 기회”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실제 이번 판결에 따라 재판은 증거 개시 절차(discovery)로 진입하며, 기업의 과거 커뮤니케이션과 내부 자료가 공개될 수 있는 구조다.
볼더시의 애런 브로켓(Aaron Brockett) 시장은 “기업이 대중을 기만하고도 피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며 “오늘의 결정은 정의와 회복의 첫걸음”이라고 밝혔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이번 판결은 피고 기업 측이 항소할 경우 향후 연방대법원의 최종 판단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 트럼프 행정부, '기후 소송' 전면 차단…민주당 주 4곳에 헌법 소송
- 미 대법원, "정유사 대상 기후소송 무산" 공화당 요청 기각
- 뉴욕주 대법원, 뉴욕시 기후 소송 기각... 연방대법원과 정반대 판결
- 美대법원, 기후변화는 주법 관할 판결…석유업계, 소송 물결 우려
- 美 법무부, 블랙록·뱅가드 겨냥 반독점법 소송에 힘 보태
- 독일 법원, 에너지社 RWE 기후 소송 기각…기업의 책임은 인정
- 실적 앞세운 방어 전략…엑손·셰브론式 주주 대응, ESG 회의감 반영
- 향후 5년 내 1.5도 초과 가능성 '매우 높아'… WMO, “재난성 기후 빈번해질 것”
- 독일 대형 자산운용사 유니온, 엑손모빌 지분 전량 매각, 이유는?
- 글로벌 은행의 화석연료 투자 급중…전문가들 "그린워싱보다 기후 소송 리스크 주목해야"
- 【ESG 동향】기후소송, 2024년 226건 추가…아시아 지역도 증가세 본격화
- 美 대법원, 엑손모빌 사상 최대 규모 환경법 위반벌금 확정
- 유엔 국제사법재판소, 23일 기후책임에 관한 의견서 발표
- 국제사법재판소(ICJ), 기후변화 대응 의무화 판결...글로벌 기후소송 지형 변화 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