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석유·가스 개발 승인 시 스코프3 배출량을 의무적으로 반영하도록 하는 새로운 환경 지침을 발표했다.
이번 지침은 신규 사업뿐 아니라 이미 개발 승인을 받은 석유·가스 프로젝트에도 소급 적용돼, 화석연료 개발 사업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영국 에너지안보·넷제로부는 20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지침은 정부 승인 단계에서 화석연료 개발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도록 한 것”이라며, “특히 소비 이후 발생하는 다운스트림 배출까지 포함해 환경영향평가(EIA)를 실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침에 따르면, 개발사는 자사 제품의 연소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이 전 세계 탄소 예산(carbon budget)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해야 한다. 이와 함께, 다른 프로젝트들과의 누적 배출 효과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
정부는 구체적인 배출 저감 수단을 제시하진 않았지만, 직접 공기 포집(DAC)이나 대규모 조림과 같은 ‘직접 제거’ 방식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반면, 외부에서 구매한 탄소 저감 크레딧은 자사 배출 상쇄 수단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이번 조치는 지난해 영국 대법원의 ‘피니치(Finch)’ 판결에 따른 후속 조치다. 당시 법원은 개트윅 공항 인근 유전 개발 사업이 스코프3 배출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업 승인을 무효화했다. 당시 환경운동 단체인 웰드 액션 그룹(Weald Action Group)은 해당 유전에서 발생할 스코프3 배출량이 1000만 톤을 넘을 것으로 추산했다.
이에 따라 새로운 지침은 정부가 프로젝트 승인 시 탄소 배출의 전 과정, 특히 연소 배출에 따른 기후 영향과 이를 상쇄하기 위한 감축 또는 제거 전략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에너지부 장관 마이클 섕크스(Michael Shanks)는 “이번 지침은 정부의 에너지·환경 목표와 프로젝트의 경제적 이점을 동시에 고려할 수 있다”며, “북해의 청정에너지 전환을 추진하기 위한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쉘ㆍ에퀴노르 등 기존 프로젝트에도 소급 적용…올 가을 이후 최종 승인 전망
이 지침은 신규 프로젝트 뿐 아니라 기존 승인을 받은 프로젝트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대표적으로 셸(Shell)의 ‘잭도(Jackdaw)’ 가스전과 에퀴노르(Equinor) 및 이타카에너지(Ithaca Energy)가 공동 추진 중인 ‘로즈뱅크(Rosebank)’ 유전 사업이 이에 해당한다.
두 프로젝트 모두 영국 정부와 북해전환청(NSTA)이 승인한 사업으로, 환경단체 업리프트(Uplift)와 그린피스(Greenpeace)는 지난 1월 두 프로젝트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스코틀랜드 법원은 해당 프로젝트가 연료 사용에 따른 배출량을 환경영향평가에 포함하지 않은 점을 위법으로 판단하고 승인을 취소했다. 법원은 “기후변화에 대한 공공의 이익은 개발자의 사익보다 우선된다”며 정부에 재심사를 명령했다.
이에 따라 두 사업자는 새 지침에 따라 환경영향평가서를 다시 제출해야 하며, 최종 승인은 올해 가을 이후로 미뤄질 예정이다.
셸과 이타카 에너지는 법원 판결을 수용하면서도 “국가적 에너지 안보를 위한 핵심 프로젝트”라며 개발 의지를 재확인했다. 셸은 “잭도 프로젝트에 8억파운드(약 1조4500억원)를 투자했고, 완공 시 연간 160만 가구에 난방을 공급할 수 있다”며 정부의 신속한 조치를 촉구했다.
에퀴노르도 “로즈뱅크 유전은 최대 2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으며, 새 지침에 따른 스코프3 평가서를 제출해 개발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로즈뱅크는 약 3억5000만 배럴의 석유가 매장된 영국 최대 미개발 유전으로, 현재까지 22억파운드(약 4조원)가 투입됐다.
에너지부 장관 에드 밀리밴드는 “장기적으로는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비용 절감과 에너지 안보에 필수”라고 강조하면서도, “석유·가스는 향후 수년간 여전히 경제의 일부로 기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보수당은 “기존 사업에도 제약을 가하는 것은 사실상 전면 중단과 다름없다”며 반발했다. 케미 베이드녹 보수당 대표는 “수천 개의 일자리와 에너지 안보를 위협하는 결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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