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20일(현지시각) 그린워싱 방지를 위한 '그린 클레임 지침(Green Claims Directive)' 철회 의사를 표명했다. 그린 클레임 지침이 2023년 3월 제안된 이후 약 2년간 진행된 입법 과정이 막바지에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마체이 베레스테츠키(Maciej Berestecki) EU 집행위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관련 질문에 "현재 상황에서 집행위는 그린 클레임 제안을 철회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고 ESG투데이는 전했다. 다만, 구체적인 이유나 절차에 대해서는 "지금으로서는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며 언급을 피했다.

유럽 집행위원회는 그린 클레임 지침에 대한 철회 의사를 표명했다./픽사베이
유럽 집행위원회는 그린 클레임 지침에 대한 철회 의사를 표명했다./픽사베이

 

최종 협상 직전 돌연 철회 의사…협상자들 "예상치 못했다"

이번 철회 의사 표명은 23일(현지시각) 예정된 이사회, 유럽의회와의 삼자협상(trilogue)을 불과 3일 앞둔 시점에서 나왔다. 이 협상은 그린 클레임 지침에 최종 승인을 내리기 위한 마지막 절차였다. 유로뉴스는 집행위가 이번 입장 표명으로 협상자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보도했다. 

집행위는 철회 배경으로 약 3000만 개에 달하는 소기업이 규제 대상에 포함될 수 있어 집행위의 단순화 의제와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유로뉴스에 따르면, 집행위는 "현재 논의가 집행위의 단순화 어젠다인 옴니버스 패키지를 왜곡시킨다. 이는 친환경 시장의 발전을 지원한다는 목표 달성을 방해하고 소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준다"고 설명했다.

의회 소식통들은 협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단계에 있었다며 집행위 결정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사회민주당 소속 수석협상가 델라라 부르크하르트(Delara Burkhardt) 의원과 자유당 소속 산드로 고지(Sandro Gozi) 의원은 여전히 협상 진행 의사를 밝혔다. 한 의회 협상팀 관계자는 유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집행위가 이 법안에서 공동입법자들이 이룬 진전을 노골적으로 방해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EPP 요구 후 집행위 철회 의사…권한 행사 적절성에는 문제 제기

이번 철회 의사는 유럽 최대 보수정당인 유럽국민당(EPP)이 이달 초 제시카 로스월(Jessika Roswall) 환경위원에게 보낸 철회 요구 서한 이후에 나왔다. 

EPP는 해당 법안이 대폭 수정되지 않는 한 법안을 거부하겠다고 공언했다. EPP는 서한에서 해당 지침이 과도하게 복잡하고 행정적으로 부담스러우며 비용이 많이 들기에 집행위가 재고하고 궁극적으로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고 ESG투데이가 보도했다.

EPP는 또한 제안된 지침에 대한 영향평가 부족을 비판하며 "이 지침으로 얻는 효과보다 기업들이 부담해야 할 비용과 규제 부담이 더 클 것이라는 우려를 해소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극우 성향의 유럽보수개혁당(ECR)도 비슷한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이번 철회 의사 표명을 둘러싸고 집행위의 권한 행사가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EU는 집행위의 철회권을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지만, EU 사법재판소는 2015년에 집행위가 입법 발의권의 일환으로 제안을 철회할 수 있다고 판결한 바 있다. 다만, 재판소는 제도적 교착상태나 제안이 시대에 뒤떨어지는 등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고 제한했다.

유로뉴스는 그린 클레임 지침의 경우 이런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며, 집행위가 입법 과정에 사실상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역할을 넘어서고 제도적 균형을 깨뜨릴 수 있다는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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