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증권시장감독청(ESMA)이 재난채권(Catastrophe Bond)을 개인 투자자 대상 펀드인 UCITS에서 제외하라고 권고했다. 구조가 복잡한 상품을 개인이 과도하게 보유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블룸버그는 15일(현지시각) UCITS 펀드에만 175억달러(약 24조원) 규모의 재난채권이 편입돼 있어, 규제가 확정될 경우 시장 전반에 상당한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을 전했다.
ESMA, 재난채권 “개인 투자자 부적합”…UCITS 편입 제한 권고
ESMA는 재난채권은 구조가 복잡하고 위험이 커서 개인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UCITS 펀드에는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UCITS는 소액·개인 투자자의 안전한 투자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펀드 규제다.
ESMA는 재난채권을 원칙적으로 UCITS에서 제외하되, 전체 자산의 10% 이내에서만 예외적으로 편입할 수 있도록 권고했다. 이 경우에도 유동성 관리 장치를 반드시 두도록 했다.
현재 권고안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로 넘어갔으며, 이후 유럽의회와 회원국 심의를 거쳐야 최종 확정된다. 규제가 실제로 도입되기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지만, 이미 시장은 제도 변화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 대형 로펌 로프스앤그레이는 블룸버그에, 집행위가 이번 권고를 받아들일 경우 자산운용사들이 전략을 재검토하고 새로운 규제 환경에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UCITS가 ‘안전한 투자상품’이라는 인식이 강한 만큼, 재난채권를 제외 대상으로 지목한 것은 투자자 신뢰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재난채권은 지난해 20% 안팎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고수익 상품’으로 주목받았지만, 이번 규제 권고로 개인 투자자 접근이 제한되면 수요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의미다.
UCITS 편입액 175억달러…규제 확정 시 대규모 매도 우려
스위스 자산운용사 플레넘인베스트먼트에 따르면, 재난채권 전체 규모는 560억달러(약 78조원)이며 UCITS 펀드에 편입된 재난채권 규모는 175억달러(약 24조원) 수준이다. 최근 12개월 동안 약 50억달러(약 7조원)가 UCITS 펀드에 추가되며 편입 비중이 늘었다. UCITS를 통한 수요가 시장 성장의 주요 동력이었던 만큼, 규제 확정 시 매도 압력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운용업계는 규제 변화에 긴장하고 있다. 미국 누버거버먼 자산운용의 피터 디피오레 전무는 블룸버그에 “지금까지는 시장이 크게 흔들린 적은 없었지만, 기후변화로 재해 예측이 더 어려워진 만큼 언제든 갑작스러운 충격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규제 때문에 UCITS 펀드가 보유한 채권을 급히 팔아야 한다면 값이 떨어질 수 있고, 그 순간은 다른 투자자에게 매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기금 운용기관 네덜란드 사회보장기금(PGGM)의 에블린 타켄-소머스 보험연계투자 책임자는 “최근 몇 년간 재난채권의 수익률은 좋았지만, 대형 지진 같은 사건이 터지면 포트폴리오의 30~40% 손실이 날 수 있다”며 “위험을 충분히 알지 못한 투자자라면 나중에 큰 후회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플레넘인베스트먼트의 다니엘 그리거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코로나19와 금리 충격, 관세 발표 같은 시장 변동기에도 재난채권은 안정적인 성과를 냈다”며 “포트폴리오 다양화에 중요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ESMA 접근은 잘못됐다”며 “개인 투자자가 이런 대체투자에서 배제되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