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과학자들은 지금의 기후 상태를 종종 욕조에 비유한다. 욕조에 이미 물이 가득 차 있는 상태에서 물이 계속 흘러 넘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산업화 이후 뿜어져 나온 온실가스가 이미 대기 중에 가득 차 있는데, 매년 새롭게 온실가스가 510억톤씩 배출된다. 현재 논의중인 탄소세나 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ETS) 등은 ‘지금 흘러나오는 물’을 어떻게 다룰 지만 관심있을 뿐, 욕조 속에 가득 찬 물에 대한 대책은 없다.
'이미 배출된 탄소를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소 부채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논문이 지난달 네이처에 게재돼 포브스와 해외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다.
요하네스 베르나르 오스트리아 국제 응용시스템 분석연구소 연구원과 영국 옥스퍼드대를 비롯한 미·독·러 등 국제연구팀은 ‘탄소 네거티브 경제시스템 운영(Operationalizing the net-negative carbon economy)’이란 네이처 논문에서 기업들에게 자신들이 배출한 온실가스 흡수 및 제거 책임을 지우는 시스템을 제안했다.
모든 기업 탄소부채 지고, 탄소 제거 의무(CRO)를 부여 받아
연구팀은 금융시장의 부채 개념을 차용했다. 온실가스 배출을 기업의 재무적 부채로 취급하고 이를 은행 심사를 거쳐 대차대조표에 기록하도록 하는 모델을 제시했다. 이렇게 되면 온실가스를 배출한 모든 회사는 탄소 부채를 지게 된다. 배출량에 따라 ‘탄소 제거 의무(CRO, Carbon Removal Obligations)’ 또한 함께 부여 받는다.
배출 기업들은 지금 당장 배출권(할당량)을 구입할 수도 있고, 이를 뒤로 미룰 수도 있다. 하지만 이자를 내야 하기 때문에, 이자 부담을 덜기 위해 탄소포집 기술 등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시간차 배출권 거래제’로 볼 수 있다.
베르나르 연구원은 포브스에 “여러 세대에 걸쳐 탄소 완화 노력비용을 분산할 수 있고, 오염 배출기업이 자체적인 탈탄소화 노력을 가속화하는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현재의 탄소세나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한다.
옥스퍼드 넷제로 이니셔티브의 책임자이자 지질공학자인 마일즈 앨런(Myles Allen) 교수는 “현재는 ETS는 기업들에게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허가권을 구매할 수 있도록 돼있기 때문에, 탄소 네거티브 시스템(산업화 이후 지금까지 지구상에 배출돼있는 온실가스를 제거하는 문제)은 고려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앨런 교수는 “EU의 탄소 가격은 본질적으로 시장이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수준에서 정치적으로 결정되지만, 우리의 제안은 현재 탄소의 객관적인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이 방법을 활용하면,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이산화탄소 제거 기술의 기술적 장벽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베드나르 연구원은 포브스에 “탄소 네거티브로 가려면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이러한 메커니즘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가 승인한 제6차 보고서에 따르면, ‘탄소예산(carbon budget)’이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 인류는 1850~2019년까지 2390기가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했고, 향후 500기가톤을 더 배출할 경우 1.5도 목표치 달성 확률이 50%이고 300기가톤을 배출할 경우 목표 달성 확률이 83%다.
연구팀에선 300기가톤의 탄소 예산이 10년 이내에 다 없어질 것으로 봤다. 때문에 현존하는 대기 중 탄소를 빨리 제거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개념이 성공하기 위해선 탄소 예산이 정확히 계산되어야 하며, 배출권 할당이 일관성있게 유지돼야 하고, 배출 기업들이 계속 뒤로 미루기만 하고 빚을 안 갚는 도덕적 해이를 막아야 한다.
탈탄소화 위해 '그린 GDP' 산출하는 일본도...
1.5도 향한 다양한 아이디어
한편, ‘1.5도 목표’와 ‘탄소중립’을 위한 움직임이 거세지면서, 다양한 아이디어도 등장하고 있다. 일본은 탈탄소화를 위해 아예 ‘그린 GDP’를 산출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기까지 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온실가스 저감 성과와 GDP를 조합한 ‘새로운 지표’를 발표한다고 밝혔다. 기존 GDP와 별도로 ‘그린 GDP’ 산출해, GDP 성장률에 비해 일본 온실가스 배출량이 얼마나 증감했는지 보여주는 방식이라고 한다. 이를 통해 경제성장 관점에서 일본의 탈탄소화 노력이 얼마나 잘 진행되는지 보여줄 계획이다. 일본은 2030년 46% 탄소배출 감축 목표치를 세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