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팩트온-사회적가치연구원 공동기획
[한국형 기후금융 모델을 찾아서]
[7] 폐기물 재활용 에너지, 시장은 이제부터
2050 탄소중립이 발표됐지만, 정책적인 로드맵이 없는 상태에서 신재생에너지 산업이 제각각 이뤄지다 보니, 다양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임팩트온은 사회적가치연구원(나석권 원장), 한양대 박동규 경영대학 교수와 공동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한국형 기후금융 모델을 찾기 위해 내러티브 현장조사를 진행했다. 태양광, 풍력, 연료전지, 폐기물, 금융 부문 등 현장 전문가 16인과의 심층 면담을 통해, 이해관계자들의 니즈(Needs)와 페인포인트(Pain Point)가 무엇인지 파악해봤다. 이들의 솔직한 목소리를 담기 위해 면담자들은 익명 처리했다.
“폐기물 분야는 인적 베이스가 약합니다. 고급 인력이 부족하다는 말이죠. 폐기물 재활용 관련 정책과제를 수행하려면, 정책 제안서라도 써야 하는데 이런 경험이 아예 없습니다. 그러니 국가 정책과제 수행 실적이 드물지요. 당연히 투자제안서를 써서 투자를 받아본 경험도 거의 없지요. 규모 있는 대기업한테 기술을 빼앗길까봐 조심스러워 하고, 현장에서 귀찮아 하니까 좀체 이 분야가 성장하지 않아요. 국내 폐기물 업체들은 상당한 기술력을 지녔지만, 검증을 쉽게 해 보일 수 없으니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조달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제도권의 본격 투자 이전 마중물 역할을 하는 국가의 투자가 필요합니다.”
30년 가량 폐기물 재활용업체에서 일해오며, 일본과 독일 등 해외 현장도 많이 다녀온 H사 C씨는 국내 현장을 이렇게 설명했다.
폐기물 에너지는 태양광이나 풍력 등 다른 신재생에너지에 비해 일반인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폐기물이 신재생에너지인가’라는 의문도 있을 법하다.
에너지공단의 신재생에너지 분류에 따르면, 폐기물 재생에너지는 사업장 또는 가정에서 발생되는 가연성 폐기물을 가공처리해 에너지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자동차 폐윤활유가 액체연료로, 자동차 폐타이어가 가스로, 폐기물이 열에너지로 바뀌는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성형고체연료(RDF, Refuse Derived Fuel), 폐유 정제유, 플라스틱 열분해 연료유, 폐기물 소각열 등이 있다. 2019년부터 비재생폐기물, 즉 산업폐기물이나 생활쓰레기 중 생물학적으로 분리되지 않는 폐기물은 재생에너지로 분류되지 않는다.
C씨의 심층면접에서는 여러가지 어려운 전문 용어가 등장했다.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방법에 따른 지원제도도 달랐고, 정부의 지원책이 현장과 잘 안 맞는 경우도 있었다. 하나씩 들어보자.
Pain Point ① 민간 사업자가 하기엔 폭증한 폐기물들
C씨는 “이제 민간 사업자들이 폐기물을 관리하는 수준을 넘어섰고, 정부 차원에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쓰레기산이 전국에 엄청 생기고 있는데 더 이상 갈 곳이 없습니다. 암암리에 해양 폐기물도 떠밀려 오고 있습니다. 방치된 폐기물은 시멘트 회사에서 처리되고 있어요. 시멘트 회사는 산골짜기에 있으니 민원도 덜하고, 소각로 허용 용량을 슬그머니 4~5배 늘리면 일반인들은 잘 알 수가 없지요.”
국내의 쓰레기, 즉 폐기물 문제가 심각해진 것은 이미 4년째가 돼 간다. ‘전 세계의 쓰레기 수입국’이던 중국이 2017년 폐기물 수입 전면금지를 시작한 후부터 생겨난 일이다. 2019년 미국 CNN 방송이 보도해 국제적인 망신을 샀던 경북 의성군의 20만8000톤짜리 거대한 쓰레기산도 바로 ‘갈 곳 없던 쓰레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현장이었다. 쓰레기산을 치우느라 국비 184억8000만원, 지방비 113억7000만원 등 298억5000만원의 세금이 들어갔다.
이후 상황은 더 나빠지고 있다. 불법 쓰레기산이 전국 235곳이나 있다는 환경부 추산도 있다. 수도권 64개 기초단체에서 배출한 폐기물 1만269톤을 매일 쌓아왔던 수도권 매립장도 4년 후면 다 차지만, 어떤 지역도 매립장을 지으려고 하지 않아 논의는 계속 맴돌고 있다. 이런 마당에 코로나19까지 터져 배달과 택배까지 늘었다.
C씨는 “나라에서 뉴딜펀드로 태양광, 풍력만을 할 게 아니라, 기술력이 발달한 폐기물 재활용에도 투자를 해야 한다”며 “폐기물 재활용 기술은 우리나라가 외국과 비교해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뛰어나지만, 폐기물을 잘 모르는 현실 때문에 설명하면서도 어려움과 장벽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Pain Point ② 재활용 기술 높지만, 투자 진입장벽이 걸림돌
한번 발생한 쓰레기는 땅에 묻거나(매립), 태우거나(소각), 다시 쓰는(재활용) 방법 말고는 없다. 수치만 보면, 우리나라의 폐기물 재활용률은 매우 높다. 2019년 기준 86%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선별업체에 들어가는 순간 재활용된다고 판단한 것일뿐 실제 재활용 비율은 아니다. 실질 재활용률은 40%도 안된다고 한다.
“우리 회사는 복합류 폐기물을 다루는데 단품목이면 재활용률이 높겠지만, 대부분 복합품목이기 때문에 제대로 분리 배출이 안됩니다. 예를 들어, 아파트 인테리어를 하게 되면 각종 다양한 쓰레기가 탑차에 실려서 버려지잖아요. 그게 다 폐기물로 처리되는 겁니다.”
C씨는 “소각도 재활용 방법으로 보기 때문에 소각은 PF를 받기가 오히려 쉬운 반면, 우리처럼 MR을 하는 기업은 상대적으로 PF 은행의 관심이 낮다”고 설명했다.
MR은 뭘까. 재활용 방법에는 MR, CR, TR 세 가지가 있다. MR(Material Recycle, 물질 재활용)은 플라스틱(폐기물) 화학적 구조를 유지한 상태에서 파쇄한 후 세척하고 녹여서 재생 펠릿을 만드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CR(Chemical Recycle, 화학 재활용)은 플라스틱 화학구조를 분해해서 순수한 원료상태로 되돌리는 기술이다. TR(Thermal Recycle, 열 재활용)은 플라스틱을 소각로나 시멘트 소성로 등에 바로 넣어서 태워서 에너지를 얻는 방법이다. C씨는 “현재 환경부는 물질재활용, 화학재활용 등을 장려하고 있지만, 현실은 대부분 소각(TR)”이라고 설명했다.
왜 그럴까. 예를 들어 플라스틱 폐기물 재활용을 위해선 신기술에 대대적인 투자가 이뤄져 기술 혁신이 필요하지만, 아직까지 거기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EPR(생산자책임재활용) 제도에 따라서 제조업체는 제품과 포장재 폐기물을 재활용할 의무 할당이 있습니다. 소비자 가격에 이 재활용 분담금이 포함돼 있는 셈이지요. 제조업체가 재활용을 더 늘리도록 유도하는 제도이지만, 지금까지 기업들은 재활용보다 그냥 분담금을 내왔습니다. 돈으로 메운 셈이지요. 이 분담금은 다시 재활용업체들에게 지원해줍니다. 100 중 70을 물질재활용(MR)에 주려고 하지만, 접수 자체가 미달이기 때문에 분담금은 TR(열재활용)로 간다”고 말했다.
Pain Point ③ 폐기물 재활용 투자는 이제 시작단계
C씨는 “우리나는 재활용 제도만 많을 뿐, 실제 재활용을 하기에는 여러 장벽이 많다”고 설명했다.
“어렵게 수거해서 분리 재활용하는 비용이나 공장에서 새 제품을 만드는 비용이나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재활용 제품이 국내에서 많이 활성화되기 힘든 거죠. 동남아로 많이 수출됐지만, 코로나 등으로 수출길도 막혔습니다. 국내에서는 재생품에 대한 인식이 나쁩니다. 품질이 나쁠 것이라고 생각해서 소비로 잘 연결되기가 힘듭니다.”
C씨는 소각이 아닌, 진정한 물질재활용과 화학재활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선진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재활용 시설은 상당히 우수합니다. 하지만 규모의 경제 이슈가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아파트 단지마다 컨테이너 크기의 ‘폐기물 오일’ 시설이 상용화돼 있습니다. 거기에 페트병을 넣으면 오일이 나오고, 난방용으로 사용합니다. 이런 소규모 시설은 외국에서 많이 보급돼 사용되지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대형화되고, 자기 동네에서는 보기 싫으니 딴 동네에 가서 지으라고 합니다. 특히 서울에는 쓰레기 매립장도 없고, 과천 등 외곽지역에 소각장이 늘어나지요. 지난해 호남권에 소각양이 30% 가량 증가했습니다. 호남 인구가 줄어드는데, 쓰레기 처리량이 30% 늘어났는 건, 결국 서울의 쓰레기가 호남권으로 간 것이지요. 우리 동네 쓰레기는 우리 동네에서 처리하면 간단합니다. 서울에도 소각장을 만들되, 부유한 지역일수록 소각장을 지하화하거나 현대화시켜서 처리하면 됩니다. 궁극적으론 폐기물을 회수해 자연으로 돌려보내거나, 원료(혹은 물질)로 사용할 기술 혁신이 필요합니다.”
C씨는 “과감한 투자로 연구소 밖에서 폐기물 재활용을 스케일업하고 상용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폐기물 재활용 업계는 대규모 M&A를 통해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SK에코플랜트(구 SK건설)가 1조원대에 EMC홀딩스를 인수한 후, 폐기물 업체 4곳을 매입했고 최근에도 추가로 3곳을 인수 합병하며, TSK코퍼레이션, 아이에스동서와 함께 폐기물 처리업계의 3대 강자가 됐다. 올해 초 발간된 삼성증권 보고서에는 ‘환경산업, 뜨거운 M&A시장’ 보고서에는 “코로나19로 이커버스 소비량이 늘어 생활폐기물이 증가했고, 의료용 폐기물이 늘어, 글로벌 폐기물 시장은 매년 성장하는데 미국은 연평균 6.1%, 국내는 5.9%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대기업들이 잇따라 폐기물 재활용 시장에 뛰어들면서, 대형화와 규모화를 통한 기술개발 기대감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공동 연구팀= 박동규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 정명은 사회적가치연구원 수석연구원, 박란희 임팩트온 대표(편집장), 김효진 임팩트온 연구원
☞ 알립니다
인하대 녹색금융대학원과 사회적가치연구원이 'ESG 금융의 실천 방안 모색과 대안'이라는 주제로 8월 30일(월) 오후 2시부터 5시20분까지 세미나를 개최합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Zoom 참여 URL :
https://us02web.zoom.u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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