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록, 기후변화 노력 부족한 53개 기업에 이사 선임 반대표
"191개 기업은 향후 진전사항 지켜볼 것"

IMPACT ON은 지속가능경영의 글로벌 트렌드를 깊이 읽어낼 수 있는 보고서를 분석, 독자들에게 전달합니다. 글로벌 책임투자의 흐름과 ESG 동향, 유럽 정책 변화 등 각 이슈별 다양한 주제를 선정해 알려드립니다. 【Trend Insight】첫번째 주제는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최근 발표한 지속가능 투자에 관한 보고서(Our approach to Sustainability)에 관한 내용입니다./ 편집자 주

지난 1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 Blackrock)의 래리핑크 CEO는 최고경영자들에게 보내는 연례서한에서 "기후변화를 고려해 투자 포트폴리오를 변경하겠다"고 밝혔다. 블랙록은 약 7조달러(약 8110조원)에 달하는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그는 연례서한에 이렇게 적었다. 

"기후 리스크의 증거들을 직면하면서 투자자들은 금융업에 대한 기본 가정들을 재검토하고 있습니다. (중략) 예를 들어, 기후 리스크로 인해 지방채 시장이 재편되면 향후 개별 도시들은 인프라 투자에 필요한 재원을 충당할 수 있을 것인지, 대출 기관들이 기후변화의 장기적 영향을 측정할 수 없고, 재해지역을 위한 유효한 보험 시장이 없어진다면, 금융의 핵심인 30년 만기 모기지 시장은 어떻게 될 것인지. 빈번한 가뭄과 홍수로 인해 식료품 가격이 상승한다면, 인플레이션과 그로 인한 금리는 어떠한 영향을 받을 것인지. 폭염 등 악천후의 영향으로 신흥시장의 생산성이 하락할 경우 경제성장 모델은 어떻게 구축해야 하는지. 투자자들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더욱 더 깊이 고민하고 있으며, 결국 기후 리스크는 투자 리스크임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중략) 

이러한 질문들은 리스크 및 자산 가치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본시장은 미래 리스크를 현재가로 반영하므로, 기후 변화의 속도보다는 당연히 자본 배분의 변화가 훨씬 신속하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예상보다 빠르게, 상당한 규모의 자본 재분배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중략) 

금융업에 40년간 종사하면서, 저는1970년대와 1980년대초의 인플레이션 급등, 1997년의 아시아 통화위기, 닷컴 버블, 그리고 글로벌 금융위기 등 다수의 위기와 난제들을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위기들이 다년간 지속된 경우도 있지만, 큰 그림으로 보자면 모두 본질적으로는 단기적인 문제들이었습니다. 기후변화는 다릅니다. 현재 예측되는 영향의 일부만 실현되더라도 훨씬 더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위기를 불러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업, 투자자, 정부는 상당 규모의 자본 재분배에 반드시 준비해야 합니다. "  

 

지난 1월 래리핑크 블랙록 회장과 블룸버그의 편집장 존 미클레쓰왓(John Micklethwait)이 래리핑크의 주주연례서한에 관한 보다 상세한 대담을 하고 있다.

 

매출액 25% 이상 석탄기업 투자 철회, 150개 이상 지속가능펀드 출시

그 후 6개월, 블랙록의 지속가능성 투자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 

지난 6월 23~24일 블랙록은 60개국, 3000여명의 투자전문가들이 참여한 온라인 글로벌 서밋(Summit)을 열었다. 주제는 '지속가능성이 회복을 가속화할 수 있을까(Can sustainability accelerate recovery?) 이번 회의에서는 ▲지속가능한 투자의 성장과 성과 ▲기업지배구조 ▲순환경제 ▲은퇴와 지속가능성 ▲글로벌 에너지 전환 ▲ESG 투자프로세스 통합 ▲고위 기업 리더와 기업이 지속가능성을 비즈니스에 어떻게 접목하고 있는지 등이 주요 세션으로 다뤄졌다. 

블랙록에 따르면, 현재 블랙록이 지속가능투자 전용 플랫폼에서 커버하는 ESG 전용 주식, 채권, 대체 투자 등의 규모는 1100억달러(132조원) 규모다(3월말 기준). 여기에는 전 세계에서 이뤄지고 있는 '에너지 전환'을 지원하는 650억달러(78조원)가 포함된다. 재생에너지 기업, 그린본드(녹색채권) 펀드,  LEAF(환경지속가능성 중심 현금 운용전략), 순환경제 전략 등이 이에 해당된다. 

블랙록은 150개 이상의 지속가능한 뮤추얼펀드와 ETF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는 세계에서 가장 큰 지속가능한 지수상품 포트폴리오라는 게 블랙록의 설명이다. 이뿐 아니라 환경, 사회, 거버넌스(ESG) 스크리닝을 활용하는 광의의 자산까지 포함하면 4810억달러(약 580조원) 규모로 커진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매출액의 25% 이상을 석탄발전을 통해 거둬들이는 기업에 대해 상장증권(채권과 주식 모두)을 매도하고, 이를 2020년 중반까지 완료키로 한 계획이다.  이뿐 아니라 ESG리스크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고유한 측정도구를 개발했다. 카본 베타(Carbon Beta) 도구를 활용해, 각기 다른 탄소가격 시나리오별 발행기관 및 포트폴리오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진행했다. 블랙록은 기후 리스크를 분석하기 위한 다양한 도구를 계속 개발중이며, 향후 이를 블랙록 자체의 리스크 관리 및 투자 플랫폼인 알라딘(Aladdin)에 통합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뿐 아니라 각 펀드별 ESG 점수 및 탄소발자국을 보여주는 데이터를 iShares웹사이트에 제공하고, 올해 말까지 블랙록 뮤추얼펀드에 지속가능성 특성에 대한 데이터를 대중에 공개할 계획이다. 

블랙록은 지난 1월 서한에서 기업들에게 두 가지 주문을 했다. 하나는 연말까지 업종별 SASB(지속가능성 회계기준위원회)에 따른 공시 혹은 이와 비슷한 데이터 기준으로 공시할 것. 또 하나는 SASB를 아직 도입하지 않은 경우 TCFD(기후변화 재무정보공개 태스크포스) 권장 기준에 따라 기후 리스크를 공시할 것. 블랙록은 "아직 완벽한 공시 기준은 없지만, 노사 관행ㆍ개인정보 보호ㆍ기업 윤리 등 다양한 지속 가능성 이슈들에 대해 SASB가 명확한 공시 기준을 제공한다고 생각한다"며 "기후 리스크의 측정과 보고, 이를 위해 필요한 지배구조와 관련된 공시 기준으로는 TCFD가 매우 유용하다"고 밝힌 바 있다. 

블랙록은 지속가능성을 위한 공시와 전략, 사업관행에 진전이 없을 경우, 이사 선임에 반대할 것임을 경고했다. 블랙록의 이 경고가 실제로 6개월 동안 이뤄지고 있음을 숫자로 보여준 보고서가 지난 14일(현지시각) 발표됐다. 보고서의 제목은 '지속가능성에 관한 우리의 접근(Our approach to Sustainability)'이다. 

블랙록 회장이자 CEO인 래리핑크는 "기후변화는 기업 투자 전략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블랙록 
블랙록 회장이자 CEO인 래리핑크는 "기후변화는 기업 투자 전략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블랙록 

 

244개 기업, 기후변화 위기 대응 부족 지적 

이번 보고서에서 블랙록은  전 세계 244개 기업이 기후변화 위기에 대응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기후변화 위험을 사업전략과 통합하거나 이를 공시하는 노력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블랙록은 이 가운데 22%에 해당하는 53개 기업에 대해 ‘주주총회 의안분석(프록시ㆍProxy)’에서 이사 선임에 반대표를 던졌다고 밝혔다. 

53개 기업 가운데 석유기업 엑손모빌(Exxonmobil), 로열 더치 쉘(Royal Dutch Shell) 등 총 37개 기업은 시가총액이 4080억달러(491조6900억원)에 달하는 에너지 기업이었다. 여기에는 항공부품기업 트랜스다임 그룹(TransDigm Group), 스웨덴 자동차업체 볼보(Volvo) 등  제조∙소재기업, 공기업, 금융기업도 포함되어 있다. 

 

블랙록은 기후변화대응 노력이 부족한 총 244개 기업 중 53개 기업들에게 기후변화 행동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했다/블랙록 
블랙록은 기후변화대응 노력이 부족한 총 244개 기업 중 53개 기업들에게 기후변화 행동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했다/블랙록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에는 주로 에너지 기업 대상으로 이루어졌지만 나머지 191개 기업도 앞으로 주요 감시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 1년 혹은 1년 반 동안 191개 기업들이 지속가능성 관련 공시를 확대하거나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노력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이들에게도 강력한 투표 영향력을 행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블랙록이 ESG이슈와 관련해 기업들에게 개입(engagement)하는 사례는 점점 늘고 있다. 환경(E) 부문의 경우 316개 기업에서 1230개로 289%p 늘었고, 사회(S) 부문의 경우 353개 기업에서 870개 기업으로 146%p 늘었다. 지배구조(G) 부문은 1931개 기업에서 2835개 기업으로 47% 늘었다./블랙록
블랙록이 ESG이슈와 관련해 기업들에게 개입(engagement)하는 사례는 점점 늘고 있다. 환경(E) 부문의 경우 316개 기업에서 1230개로 289%p 늘었고, 사회(S) 부문의 경우 353개 기업에서 870개 기업으로 146%p 늘었다. 지배구조(G) 부문은 1931개 기업에서 2835개 기업으로 47% 늘었다./블랙록

 

지속가능투자에 관한 블랙록의 접근법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기업이 ESG 기준에 맞추도록 적극 개입(engagement)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투표(voting)다. 

보고서에 따르면, 블랙록이 ESG이슈와 관련해 기업들에게 개입(engagement)하는 사례는 점점 늘고 있다. 환경(E) 부문의 경우 316개 기업에서 1230개로 289%p 늘었고, 사회(S) 부문의 경우 353개 기업에서 870개 기업으로 146%p 늘었다. 지배구조(G) 부문은 1931개 기업에서 2835개 기업으로 47% 늘었다. 환경 부문이 가장 크게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블랙록이 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은 투표다. 지난 6개월 동안 블랙록이 '주주총회 의안분석(프록시)'에서 이사 선임 등에 반대표를 행사한 사례는 53개 기업이다. 에너지 기업(37개), 전기통신기업(7개), 제조 및 소재기업(8개), 금융기업(1개) 등이다. 

지난 6개월 동안 블랙록이 '주주총회 의안분석(프록시)'에서 이사 선임 등에 반대표를 행사한 사례는 53개 기업이다. 에너지 기업(37개), 전기통신기업(7개), 제조 및 소재기업(8개), 금융기업(1개) 등이다./블랙록
지난 6개월 동안 블랙록이 '주주총회 의안분석(프록시)'에서 이사 선임 등에 반대표를 행사한 사례는 53개 기업이다. 에너지 기업(37개), 전기통신기업(7개), 제조 및 소재기업(8개), 금융기업(1개) 등이다./블랙록

 

보고서에는 개별 기업의 사례들이 여럿 등장한다. 엑손모빌의 경우, 블랙록은 "수년 동안 기후 위기에 관련해서 개입해왔고, TCFD와 SASB의 권고안을 기준으로 공시를 할 것을 요구했다"며 "엑손모빌은 이러한 투자자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2018년 '에너지 및 탄소 보고서(Energy and Carbon Summary)'를 발표했으나, 명확하고 장기적인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제시하지 못했고, 회사측은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밝히지도 않았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블랙록은 이사회에서 기후 정책과 관련한 감독 및 리더십 의무를 소홀히 한 것으로 보고 반대표를 던졌다고 밝혔다. 

핀란드의 최대 에너지기업 포툼(Fortum)에 대해, 블랙록은 "2020년 초반 석탄화력 발전에 관한 사업을 늘린 조치는 장기 주주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행위로 판단했다"며 "이사회와 사장의 해임에 반대표를 던졌고 이에 관해 책임지도록 했다"고 밝혔다. 

블랙록은 "올 하반기부터 탄소집약 분야에서 시가총액을 대표하는 110개 기업을 추가 공개하고, 이들에 대한 개입을 시작한다"며 밝히고 있는데, 그 대표사례로 한국전력이 보고서에 등장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전력이 최근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 3개의 석탄 화력발전소 투자를 계획하는 것을 두고 우려를 표하는 편지를 한국전력 사장에게 보냈다고 한다. 블랙록은 "이러한 프로젝트는 한국전력의 에너지 전환 약속과 어긋난다는 점을 감안해, 후속 대화를 통해 회사에 전략적 근거를 논의할 것"이라며 "한국전력의 기후 리스크와 관련해 공시를 강화하도록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모범적인 사례로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이 소개됐다. 스탠다드차타드는 이사회, 지속가능경영팀, 최고경영진에서 기후변화의 중요성을 인식해, 2020-2025년까지 클린 기술 및 재생에너지 분야에 35억달러(4조1800억원)를 투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급망 지속가능성 부족한 타이슨푸드, 경영진 선임 반대 

블랙록은 보고서에서 기후위기뿐 아니라 지속가능성 이슈에 대해 개입한 사례도 밝히고 있다. 개별 사례로는 ▲공급망의 지속가능성을 둘러싼 회사의 정보공개정책, 노동조건 등이 만족스럽지 못해 경영진 선임에 반대표를 던진 미국 포장식품업체인 타이슨푸드(Tyson Foods) ▲대출관행에서 인종차별적인 위험이 있음을 우려한 주주 제안을 지지한 금융회사인 샌탄더 컨슈머 USA(Santander Consumer USA) ▲조직의 다양성(Diversity)과 포용(inclusion)을 둘러싼 더 강력한 정보공시를 요구하는 주주들의 제안을 지지한 미국 기술기업 포티넷(Fortinet) 등이 그것이다. 

블랙록은 다농(Danone)을 지속가능성 기업의 모범사례로 들었다. 프랑스 법률에는 기업이 자신의 기업이 ESG 목표에 부합하는 기업에 대해 '미션기업(entreprise à mission)'을 지정할 수 있는데, 블랙록은 지난 1년 간 다농 이사진 및 경영진과 협약을 맺고 '미션기업'급이 되도록 내규 개정을 추진했다고 한다. 이 제안을 블랙록을 포함한 회사 주주 99% 이상의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해외 매체 및 전문가들은 블랙록의 지속가능성에 관한 이같은 개입과 투표 행위는 '투자자 행동주의(investor activism)'로 가는 흐름의 하나로 보고 있다. 미국 환경단체 시에라 클럽(Sierra Club)의 벤 쿠싱(Ben Qushing) 대표는 “블랙록은 기업에 경고를 하기보다는 더 자주 기업에 투표권을 행사해야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이같은 변화는 향후 수많은 투자자 및 기업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ESG를 향한 전 세계의 발걸음은 한결 더 빨라질 지도 모른다. 

※ 이 기사에는 김환이 editor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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