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방은 80% 이상 재활용된 재료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문구를 보고 소비자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2017년 대형 소매점에서 모든 일회용 비닐봉지를 퇴출시킨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나타난 일은 충격적이다.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문구만 믿고 비닐봉지를 쓰레기통에 덥석 버리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다. 결과적으로 재활용은커녕, 소각장에서 활활 태워졌다. 

재활용이 가능하다고 적힌 일회용 비닐봉지들. /로이터
재활용이 가능하다고 적힌 일회용 비닐봉지들. /로이터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 재활용 시장 위원회(California Statewide Commission on Recycling Markets and Curbside Recycling)는 주 법무장관과 규제 기관인 칼 리사이클(CalRecycle)에게 대형 소매점들의 ‘불법 라벨링’을 제재할 것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대형 소매점에서 제공되는 일회용 비닐봉지. 재활용된 재료를 80% 이상 함유했다고 표기했지만, 결국 일반쓰레기로 버려진다./로이터
대형 소매점에서 제공되는 일회용 비닐봉지. 재활용된 재료를 80% 이상 함유했다고 표기했지만, 결국 일반쓰레기로 버려진다./로이터

위원회는 “리사이클이 가능하다는 의미를 암시하는 원형 화살표(↺)와 재활용, 또는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문구가 인쇄된 가방은 소비자를 오인하게 만들고 있다”며 이 문구를 불법 라벨링으로 규정하고, 단속해 줄 것을 요구했다. 또 비닐봉지를 판매하는 소매점에게는 이 문구가 적힌 비닐봉지를 제거하라고 요구했다.  

소비자들은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문구만 보고 재활용 쓰레기통에 비닐봉지를 버려왔다. 그러나 실제 재활용 과정에서 비닐봉지는 재활용이 어렵고, 오히려 재활용 업체가 수거된 폐 비닐봉지를 하나하나 걸러내는 과정에서 기계가 고장나는 등 비용을 증가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비닐봉지와 포장 필름에 쓰이는 연질 플라스틱은 재활용 가능성이 높지 않다. 재가공을 거쳐 신제품으로 탈바꿈하는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에 시장이 형성되지 않는 것이다. 위원회는 “현실적으로 재활용이 불가능한 비닐봉지를 재활용이 가능하다고 칭하는 건 그린워싱”으로 비판했다.  

또 일부 소매점에서 “재활용을 위해 비닐봉지를 구매한 곳으로 반환해달라”고 요청한 것 또한 그린워싱으로 봤다. 소매점이 비닐봉지를 모아 재활용한다는 증거가 없을 뿐더러, 매장 내 실태를 살펴보니 재활용 쓰레기통에 모아진 봉지들이 그대로 쓰레기 매립지로 향하면서다.

위원회는 ‘불법 라벨링’ 운동을 일회용 비닐봉지 외에도 택배에 사용되는 완충재와 포장재, 일부 식료품 품목의 플라스틱 필름으로 넓혀갈 예정이다.

 

기업들 “최선을 다하고 있다”

환경단체 "강력 규제 전 단속 시작해야"

캘리포니아주 소매점 연합인 CGA(California Grocers Association)는 “재활용 라벨이 붙은 비닐봉지가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판매되는 비닐봉지는 최소 40% 이상 재활용 재료로 만들어지며, 125번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내구성을 갖춰, 캘리포니아주 법이 요구하고 있는 기준을 충족한다고도 덧붙였다. 

소매 기업들도 반론에 나섰다. 비닐봉지 반품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CVS 헬스(CVS Health Corp)은 “매장 회수 재활용 이니셔티브를 준수하기 위해 재활용 솔루션 공급업체 등 외부회사를 고용하는 등 노력하고 있으며, 외부회사가 법을 준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다만 CVS 헬스와 계약을 맺고 있는 주요 공급업체 중 하나인 G2 레볼루션은 로이터에 답변을 하지 않았다.

플라스틱 회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아마존 또한 “일회용 플라스틱 포장 사용을 줄이는데 빠른 진전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소매점으로 반환된 폐기물이 재활용되고 있다는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월마트는 “비닐봉지는 법의 요구사항을 충족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고, 우리 회사를 통해 100% 재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매장 내 수거 프로그램이 어떤 절차를 가지고 있는지,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얼마나 많은 체인점이 참여하고 있는지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재활용 위원회는 2017년 통과된 비닐봉지 금지법의 허점이 밝혀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4년 처음 캘리포니아주에서 일회용 비닐봉지 금지법이 발의됐을 때, 플라스틱 산업계는 거세게 반대하며 로비를 펼쳤다. 2016년 국민투표를 거쳐 마련된 절충안에는 비닐봉지를 판매하되 개당 최소 10센트(약 120원)에 판매하고, 캘리포니아 내에서 재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규제 기관인 칼 리사이클(CalRecycle)은 위원회의 문제 제기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환경단체인 더 라스트 비치 클린업(The Last Beach Cleanup)은 “주 정부가 위원회의 조언을 따를 경우 캘리포니아에서 비닐봉지 사용을 실질적으로 중단하거나 소매업체가 비닐봉지를 재활용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실질적으로 법 집행 권한이 있는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은 “잠재적이거나 진행 중인 조사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다”고 말했다.

녹색을 향한 캘리포니아주의 압박은 강해지고 있다. 지난 10월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캘리포니아에서 판매되는 모든 제품 및 포장에 대한 법안인 일명 ‘라벨링의 진실(truth in labeling)’에도 서명했다. 2025년 6월 발효된다. 이 시행되면 재활용 표시가 인쇄된 비닐봉지 판매는 위법이라는 판단을 받을 수 있다. 환경단체는 더 큰 범위의 법안을 시행하기 전인 지금부터 단속을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 2019년 대형마트 등 일회용 비닐봉지 규제했지만

여전히 소각되는 비닐봉지들

'재활용 가능' 홍보한 생분해 비닐봉투도 그린워싱 가능성 커

우리나라 환경부도 2019년 비닐봉지 사용억제를 위해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을 개정하면서 대형마트 등 대규모 점포와 슈퍼마켓, 제과점에서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했다. 이를 어길시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작년 12월엔 ‘생활폐기물 탈(脫)플라스틱 대책’으로 2030년까지 모든 업종에서 일회용 비닐봉지와 쇼핑백 퇴출 방안도 내놨다. 2030년까지 플라스틱 제품에 재생원료 사용 비율을 30%까지 의무적으로 늘리는 방안도 포함됐다. 

규제 수준은 높지만, 현장에서 비닐봉지는 쉽게 볼 수 있다. 현 시행령에 따르면, 규제범위가 한정됐기 때문이다. 일반 소매점인 다이소나 편의점 등에선 유상제공이 여전하다. 대형마트 등에서 일회용 비닐봉지 대신 제공하는 종량제 쓰레기봉투도 문제다. 재질만 보면 재활용이 잘되는 몇 안 되는 플라스틱인 폴리에틸렌(PE)으로 만들어졌지만, 일반 쓰레기를 담는 탓에 대부분 매립 또는 소각된다.

UN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지금까지 생산된 플라스틱의 약 10% 미만만이 재활용됐다. 묻거나 태우는 것이 더 저렴하기 때문이다. 미국 최대 폐기물 관리업체 중 하나인 RSG(Republic Services Inc.)는 “재활용 과정에 일회용 비닐이 포함되는게 오히려 손실”이라며 “분류 기계가 손상되지 않도록 매번 기계에서 일회용 비닐봉지를 빼줘야 하고, 심할 땐 회전 분류 장치에 걸려 기계를 폐기해야 할 때도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재활용 과정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기에 결국 손쉬운 처리 방식인 매립 또는 소각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환경부는 작년 12월 ‘생활폐기물 탈(脫)플라스틱 대책’ 중 하나로 2025년까지 폐비닐로부터 석유를 추출하는 열분해 시설 10기를 확충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장에선 골칫덩이다. 오염률이 높아 재활용다운 재활용을 할 수 없어 자원으로 가치가 0에 가깝기 때문이다. 현장에선 “폐비닐은 얼마나 적은 비용을 들여서 처리하느냐”가 문제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골칫덩이 비닐은 다른 일반 쓰레기들과 뭉쳐 폐기물로 전기를 만드는 고형폐기물연료(SRF) 발전소에서 소각되고 있다.

생분해성 비닐봉투는 친환경이라는 홍보문구들. 현재 쓰레기 처리 과정에선 결국 매립되거나 소각된다. /환경운동연합 보고서  ‘생분해 플라스틱의 오해와 진실’
생분해성 비닐봉투는 친환경이라는 홍보문구들. 현재 쓰레기 처리 과정에선 결국 매립되거나 소각된다. /환경운동연합 보고서  ‘생분해 플라스틱의 오해와 진실’

2019년 12월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이 대대적으로 홍보한 ‘생분해 플라스틱 비닐봉지’도 마찬가지다. 같은달 발간된 녹색연합의 보고서 ‘생분해 플라스틱의 오해와 진실’에 따르면, 국내 생분해 플라스틱 제품은 일반쓰레기와 동일하게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리는 방식으로 처리되기에 결국 소각되고 만다는 것이다. 매립되는 생분해 봉지 또한 퇴비화 조건을 갖춘 땅이 아닌 곳에 묻히기 때문에 BGF리테일이 홍보한 것처럼 퇴비화가 된다는 보장이 없다. 

생분해성 랩, 비닐, 플라스틱이라고 해서 재활용이 되는 것은 아니다. /환경운동연합 보고서  ‘생분해 플라스틱의 오해와 진실’
생분해성 랩, 비닐, 플라스틱이라고 해서 재활용이 되는 것은 아니다. /환경운동연합 보고서  ‘생분해 플라스틱의 오해와 진실’

녹색연합은 “친환경성을 내세워 일회용품 예외 항목으로 안내해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일으키는 그린워싱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생분해성 수지 제품도 결국 사용억제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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