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발 택소노미가 완성되면서 택소노미의 적용을 받는 CSRD(기업지속가능보고지침)을 준수할 준비가 된 회사는 1만2000개 중 10개 미만인 것으로 밝혀졌다. CSRD는 EU기업의 지속가능보고에 관한 의무지침으로, 예전에는 NFRD(비재무보고지침)로 불리던 지침이다.
EU의 CSRD의 적용을 받는 기업은 2022년을 기점으로 택소노미에 따른 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활동을 보고해야 한다. 2023년부터는 택소노미와의 정렬(align) 정도까지 공개해야 한다.
미국을 비롯한 60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 싱크탱크 컨퍼런스 보드(Conference board)는 자체 분석결과 대부분의 유럽 기업들이 재생에너지와 같은 주요 친환경 사업에 대한 자본 지출 관련 자료를 회계연도 말에 제공하지 못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올해 발효된 CSRD 규정에 따르면, 500명 이상 상장기업은 택소노미에 포함되는 활동에서 발생하는 수익, 자본 지출 및 운영 비용의 비율을 공표하도록 했다. 은행, 보험사, 공익법인 등 약 1만1700개 대기업이 적용 대상이지만, 조사 결과 스페인의 인프라 회사인 악시오나(Acciona) 외 9곳만 이에 대응할 수 있다고 답한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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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시오나의 경우 지난해 택소노미와 부합 정도를 분석한 보고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악시오나는 전체 수익의 58%가, 에비타의 83%가, 연 설비투자(CAPEX) 중 93%가 택소노미와 부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악시오나는 택소노미 부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기준을 공개하기도 했다.
올해 기업은 택소노미에 부합하는 활동의 비율만 공개하면 된다. 기후변화 적응, 지속 가능한 물 사용, 오염 방지 등 6가지 환경 목표에 부합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지만 공개하면 되는 것이다. 기업의 활동이 기준을 충족하고 환경 목표에 기여하는 경우 준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내년부터는 택소노미와 일치 정도까지 공개해야 한다. 택소노미의 원래 목적인 지속가능한 활동에 대한 기준을 세워 그린워싱을 줄이고, 투자자와 은행이 기후위기 대응을 해나가는 기업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초반이라 아직 보고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제재를 가하진 않지만, 보고에 미흡한 기업은 자금유치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컨퍼런스 보드는 "대부분의 기업은 수익의 10% 미만이 택소노미 활동과 관련됐다"고 추정했다. 공개 대상 기업의 단 15%만이 녹색 목표에 부합하는 수익, 자본 지출 또는 운영을 해왔다고도 밝혔다.
올해를 기점으로 택소노미 부합 정도를 공개하게 된다면, 시멘트 업종과 같이 녹색과 거리가 먼 사업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컨퍼런스 보드는 “가령 시멘트 회사의 경우 택소노미에 부합하는 활동의 비율은 90%에 가까울 수 있지만, 정렬 정도를 따져보면 0%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올해부터 시행될 택소노미 부합 정도 공개도 기업에게 어려울 수 있다고 봤다. 컨퍼런스 보드는 기업의 어려움 중 하나로 입법 지연을 꼽으면서 규제에 대응할 수 있는 기간이 6개월 남짓 뿐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EU 위원회는 작년에서야 대규모 민간기업과 소규모 상장기업으로 택소노미 보고 대상을 확대하고, 보고서에 대한 독립적인 감사와 정보를 디지털화 시킬 수 있는 ESAP(유러피안싱글액세스포인트) 법안을 상정했다. 컨퍼런스 보드는 “택소노미 공개 규정은 3년마다 재검토될 것이므로 정보 공개 대상인 기업은 전담팀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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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소노미 분류체계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고 애매한 점이 많은 것도 기업의 혼란을 가중했다고 볼 수 있다. 컨퍼런스 보드는 “대부분 기업은 지금까지도 논란이 남아있는 분류법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면서 “혼란이 남아있는 한 기업은 택소노미 목적과는 다른 활동을 전개할 수 있고, 데이터 제공자는 규제 목적과 다르게 정보공개를 진행하며, 규제당국은 자의적인 해석을 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짚었다.
EU뿐 아니라 중국, 일본, 남아프리카공화국, 캐나다, 영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에서 자체 택소노미를 개발하고 있다는 환경도 기업의 대응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봤다. 컨퍼런스 보드는 ”각 국가마다 보고 기준이 서로 다르기에 이를 대응하는 전담팀을 둬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3일 EU 집행위원회는 원자력과 천연가스 발전에 대한 투자를 녹색 경제활동으로 인정하는 택소노미 최종안을 확정했다. 집행위의 최종안은 27개 EU 회원국 가운데 20개국 이상이 반대하거나 EU의회의 과반수가 거부하지 않는 한 그대로 확정돼 내년부터 시행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