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국의 세컨드라이프는 매년 120톤의 플라스틱을 모으고, 이를 활용해 만든 플라스틱 칩으로 신제품을 만든다. 이렇게 제거된 플라스틱에는 일종의 ‘플라스틱 크레딧’이 생성되고, 이는 폐기물 발자국을 상쇄하고자 하는 기업이 구매한다. 

#. 필리핀 네슬레는 2020년 8월 ‘플라스틱 중립’을 달성했다. 판매 제품에 사용된 플라스틱 양과 같은 양의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가공했다는 인증서인 플라스틱 크레딧을 구매하면서다. 필리핀 네슬레는 이를 ‘1톤 인, 1톤 아웃’이라고 부르면서,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남미 12개국 등에서 플라스틱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이 전략을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각국에서 구입한 플라스틱 크레딧은 2025년까지 자사 제품에서 처녀 플라스틱 사용을 3분의 1 줄이겠다는 네슬레 본사의 목표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소비재 기업의 최대 적은 플라스틱이다. 당장 생산공정을 바꿀 수도 없을뿐더러, 상품의 보호를 위해서 포장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플라스틱 크레딧을 눈여겨 볼만하다.

플라스틱 크레딧은 탄소배출권 거래 원리를 반영해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발행되고 있다. 크레딧은 기업이 환경에 퍼진 플라스틱을 제거하거나 재활용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하나의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신흥 시장에는 32개의 크레딧 발행 기업과 크레딧을 구매하려는 네슬레, 다논 등 수십 개 글로벌 기업이 포함돼 있다.

플라스틱 크레딧 참여자가 취할 수 있는 4단계/Plastic Credit Platform
플라스틱 크레딧 참여자가 취할 수 있는 4단계/Plastic Credit Platform

크레딧 참여자들은 이런 메커니즘이 수백만 톤의 플라스틱 오염을 해소하고 환경에 미치는 해로운 영향을 줄일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소비재 기업으로선 플라스틱을 대체할 재료가 마땅치 않기에 플라스틱 사용을 완전히 줄이기는 어려운데, 크레딧을 활용해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 정도는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기업이 직접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전 세계에 널려있는 플라스틱에 대해 일정부분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플라스틱 크레딧은 원칙적으로 생산자인 기업이 비용을 부담하게 설계돼 있다. 기업이 크레딧을 구매하기 위해 낸 자금은 폐기물을 수집하고 재활용하는 시스템에 더 많은 자금이 가도록 유인하는 순기능도 있다.  

각국 정부는 플라스틱의 수집, 분류, 재활용에 대한 비용을 포장 생산자들이 지도록 요구하는 생산자 책임 제도를 택해 재활용 시스템을 갖추려 노력하고 있지만, 실제로 재정 조달과 EPR 규제를 시행하기까지는 길게는 수십년이 걸리기도 한다는 부작용도 있다. 반면 민간이 주도하는 플라스틱 재활용은 기업이 간접적으로나마 폐기물을 수집하고 재활용할 수 있는 즉각적인 수단을 제공하기도 한다. 

 

플라스틱 생산이라는 주 원인 아닌 증상만 해결한다는 비판도

그러나 플라스틱 크레딧에 대한 회의적인 견해도 존재한다. 플라스틱 크레딧은 플라스틱 생산이라는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방법이 아닌, 이미 버려지고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라는 증상만을 해결하는 방안이라는 비판이다. 플라스틱 크레딧 시장이 활발해지더라도 플라스틱의 생산 자체를 감소시킬 유인은 없다. 또 재활용이 거의 불가능한 특정 1회용 플라스틱의 생산이 재사용 가능한 플라스틱과 동등한 가치를 지닐 수 있냐는 의문도 남는다.  

플라스틱 크레딧의 기본 전제인 ‘1 IN 1 OUT’ 원칙이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의 복잡성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점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플라스틱 쓰레기는 단순히 생산국이 아닌 나라에서 주워지고, 재활용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환경적 영향 뿐 아닌 사회적 영향을 간과한 해결방식이라는 지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있다. 특히 아시아의 국가에서 폐기물 관리는 폐기물 수거업자들의 서비스에 의존하는데, 이들의 노동력 비용까지도 크레딧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그린워싱에 대한 문제도 있다. 크레딧 구매로 녹색 이미지는 챙기면서 오히려 더 많은 플라스틱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WWF는 “플라스틱 크레딧 사용으로 인해 플라스틱 중립성, 또는 상쇄라는 용어를 마케팅으로만 쓸 수도 있다”며 “근본적으로 기업이 플라스틱을 사용하거나 판매하는 한 플라스틱 중립은 달성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탄소 크레딧을 통해 ‘탄소중립 석유’라는 광고를 한 셸처럼 플라스틱 분야에서도 그린워싱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플라스틱 크레딧이 재활용 시장을 활성화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검증돼야 한다. 예를 들어, 폐기물을 수집할 능력은 있지만 폐기물을 처리하거나 재활용할 수 있는 기반시설이 없는 도시에 크레딧 시장이 형성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기반시설이 없는 나라엔 크레딧 자금만으로 시스템을 구축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존재한다. 

 

플라스틱 크레딧의 궁극적 목적 상기해야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업계와 NGO 관계자들은 2019년 '3R 이니셔티브'를 출범시킨 바 있다. 기업이 플라스틱 크레딧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프로젝트를 어떻게 판매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3R 이니셔티브는 국제 환경 표준 설정기관인 베라(Verra)에서 관리하는 플라스틱 폐기물 감소 표준(Plastic Waste Reduction Standard)을 만드는 등 크레딧 시장의 전반을 정비했다. 가령 플라스틱 크레딧 1톤을 어떻게 정의할 것이냐에 대한 문제를 고민한 것이다. 

'기업 플라스틱 스튜어드십 가이드라인'을 정비하기도 했다. 기업들이 플라스틱 폐기물을 먼저 줄이고 재사용한 후에만 플라스틱 크레딧을 사용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런 문제점에 공감해 네슬레는 플라스틱 크레딧 구매를 줄이는 대신 플라스틱 오염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여러 나라의 프로젝트와 제휴해 플라스틱을 수집하고 재활용하는 액션을 보여주고 있다.

3R 이니셔티브는 “기반시설, 쓰레기통, 수집품, 재활용품, 계획, 간접비용, 위험 등을 고려한 적정 플라스틱 크레딧 가격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올해 8월, 플라스틱 크레딧을 위한 표준 프로세스 모델을 발표하면서 1 크레딧의 적정 가격을 어떻게 책정했는지 밝힐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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