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해 전세계적으로 1억 6000만명의 아동이 노동에 노출되어 있다고 발표했다. 이는 한국 인구수의 3배나 많은 어린이들이 마땅히 받아야할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노동 현장에 내몰리고 있다는 뜻이다. SDGs(유엔 지속가능개발목표) 8.7번은 모든 형태의 아동노동을 2025년까지 근절하겠다고 목표를 정하고 있지만, 2016년 이후 특히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아동노동 인구가 840만명 더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글로벌 우선과제인 SDGs에 아동노동 근절이 포함되어, 유엔(UN)을 필두로 집중적인 개선 활동이 펼쳐지고 있음에도 아동노동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제개발 전문매체인 데벡스(Devex)는 최근 아동노동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루며, “아동노동은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원인을 가진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에 실타래를 푸는 건 간단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집안이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어린이들이 노동에 내몰리는 것이 아니라 부모, 특히 엄마의 경제적 권한(Empowerment)의 제약, 교육에 대한 접근성 부족, 노동법의 약한 집행, 빈곤층에 대한 불충분한 사회적 보호 등이 겹겹이 더해져 아동노동이 심화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학비와 식비를 주면 아동노동이 감소할 거라는 일차원적 접근은 '깨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 데벡스도 "사회, 경제, 정칙적으로 얽혀 있는 근본 원인들을 해결해 나가지 않은 채 물질적 지원을 퍼붓게 되면 오히려 지역사회에 독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수년 전, 방문했던 탄자니아에서 이 같은 문제를 직접 마주 대했던 적이 있다. 현지 NGO의 안내를 받아 현장을 둘러보는 일정 가운데, 담당자는 시내를 벗어난 외진 곳으로 데려갔다. 우거진 숲 사이를 한참 달려 도착한 곳에는 빛 바랜 콘크리트 건물 한 동이 세워져 있었고, 그 앞에 몇명의 아이들이 무언가를 기다리듯 앉아 있었다. 몇 년 전까지 만해도 학교였었다는 설명과 함께 담당자는 건물에 그려진 하나의 그림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한국의 모 기업의 로고와 함께 ‘사회공헌’ 활동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담당자 말에 따르면, 수년 전 한국 기업의 기부로 이 외진 곳에 학교가 세워졌고,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많은 가족들이 터전을 떠나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기부가 중단된 이후, 교사들은 월급을 받지 못해 학교를 떠났고 결국 학교는 문을 닫게 되었다. 자녀 교육을 목적으로 일자리까지 그만두고 외진 곳에 온 부모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했고, 이전보다 낮은 소득 수준과 더불어 학교가 문을 닫아 아이들은 농사일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하지만 수많은 경제적, 사회적 문제로 여력이 없는 지방정부는 작은 학교가 문을 닫았다는 사실에 관심조차 두지 않아, 오랫동안 방치되어 이제는 학교의 모습조차 잃어버렸다고 담당자는 개탄했다. 

농사일 틈틈이 학교를 방문해 기웃거린다는 아이들은 수년 전 만났던 한국인 교육봉사활동단의 기억 때문인지 현장을 둘러보는 내내 우리를 졸졸 쫓아다니며 모든 동작에 주목했다. 그날 밤, 숙소에 돌아와 탄자니아 학교 운영을 지원했다는 기업의 지속가능성보고서와 홍보 기사를 찾아보고 참으로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좋은 의도로 시작했던 기업의 선의가 오히려 독이 되어 아동노동을 양산시킨 사실을 목도하며, 실타래처럼 엉켜 있는 여러 문제들을 고려하면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필요성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는 비단 국내 기업만이 범하는 실수는 아닐 것이다. 데벡스도 기업 등의 개별 조직이 아동노동에 단독으로 접근하면 오히려 나쁜 결과만 얻게 된다며, 이를 해결하기위해서는 여러 행위자 간의 장기적인 협력이 무엇보다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개도국 정부의 국제노동협약에 부합하는 아동노동 근절 정책이 뒷받침되는 것은 물론 NGO, 시민사회 등은 지역사회가 아동 노동을 예방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풀뿌리적인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게다가 개도국에 공급망을 둔 기업들은 지역 사회의 근본 문제를 잘 이해하는 NGO 등의 도움을 받아 근로자 고용과 근무 환경에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ESG에 대한 사회적 압박 수위가 높아짐에 따라, 기업은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공급망까지 아동노동을 해결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아동노동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눈에 보이는 부족만을 채워주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국내 기업의 선의가 탄자니아의 나쁜 사례로 전락해버린 우를 막기 위해, 현지 상황과 근본적인 문제를 파악해 여러 행위자와 협력하는 기업이 늘어나길 기대해 본다. 

 

※ 김효진 임팩트온 Editor & Researcher

기업 등 민간섹터의 개발금융 접근 방안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효진 연구원은 지난 10년여간 다수의 ODA 사업과 ESG 컨설팅, 연구 등에 참여하며 지속가능성을 위한 공공과 민간 협력에 몰두해왔다. 현재는 임팩트온에서 Editor로 글로벌 ESG 동향 및 규제, 정책 등의 소식을 발빠르게 전함과 동시에, Researcher로 공공기관과 기업 등에  인사이트를 제공하고 있다. Beyond ESG를 통해, 지속가능성 이슈를 선봉해온 개발협력 측면에서 ESG 접근 방안을 논하는 칼럼을 게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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