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국내 언론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탈리아에서 화제가 된 뉴스가 있다. 농심의 ‘김치신라면’에서 독성 물질이 검출돼 현지 식품매장에서 전량 철수된 것이다.

유통기한이 2022년 5월 19일인 김치 신라면 스프에서 검출된 독성 물질은 ‘2-클로로에탄올’. 2-클로로에탄올은 암을 유발하진 않지만, 증기를 흡입하거나 피부로 흡수되면 독성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네덜란드 CJ캄핀에서 만들어져 아시아익스프레스푸드(Asia Express Food BV)가 유통해왔다.

이탈리아 보건부가 발표한 김치 신라면 리콜 확인서/이탈리아 보건부
이탈리아 보건부가 발표한 김치 신라면 리콜 확인서/이탈리아 보건부

이탈리아 보건부는 “해당 제품은 기준치를 넘어선 2-클로로에탄올이 포함돼 있어 신체에 위험할 수 있다”며 “스프 성분 중 유독한 냄새가 나는 고독성 무색 유기 화합물인 ‘에테르’가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해당 제품을 섭취하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반품을 요구하면 인근 점포에서 영수증 없이도 환불 된다”고 안내했다. 또 해당 제품 섭취 후 몸에 이상이 있는 경우 즉시 의사에게 진료를 받으라는 내용도 공지했다. 

이탈리아 식품 전문지 체쿠치노(Checucino)는 “농심 김치신라면에 맹독성 화학물질인 2-클로로에탄올이 법적 기준치를 초과했다”면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제품으로 오랫동안 소비자가 즐겨 찾던 농심 김치신라면이 슈퍼마켓에서 모두 철수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한편, 지난 8월에도 농심이 유럽에 수출한 ‘해물탕면’에서 2-클로로에탄올이 검출된 바 있다. 수출용 농심 모듬해물탕면 야채믹스 원재료 중 건파에서 0.11㎎/㎏, 내수용 농심 모듬해물탕면 야채믹스에서 2.2㎎/㎏가 검출됐다. 팔도의 라볶이 미주용 분말스프에서도 12.1㎎/㎏가 검출됐다. 

문제의 물질인 2-클로로에탄올은 농약의 일종인 에틸렌옥사이드가 염소와 반응해 생성되는 물질이나, 에틸렌옥사이드 사용과 관련 없이 제조공정 중 오염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다. 에틸렌옥사이드는 살균소독 및 방부제로 사용되는데, 2-클로로에탄올과는 달리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인체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경우 에틸렌옥사이드 사용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허용 기준치를 0.01ppm 이하로 설정하고 있으며, 2-클로로에탄올의 경우 정해진 기준이 없어 지난 8월 농수축산물 가공식품의 경우 30mg/kg, 영유아 식품 10mg/kg으로 잠정 기준을 정했다. 미국과 캐나다의 경우 에틸렌옥사이드와 2-클로로에탄올을 따로 취급하고 있으며, 2-클로로에탄올의 최대 허용 한도는 940ppm이다. 반면 유럽은 2-클로로에탄올을 에틸렌옥사이드의 반응물로 보고, 합해서 0.02ppm~0.1ppm을 초과하는 경우 제품의 유통을 금지하고 있다. 

김치 신라면에서 2-클로로에탄올이 검출된 이유는 자세히 보고되지 않았다. 다만 유럽식품안전청(EFSA)은 식품 보충제에 많이 쓰이는 탄산칼슘에서 2-클로로에탄올이 발견될 수도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지난해 8월 해물탕면에서 2-클로로에탄올이 발견돼 한국 식약처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농심은 제조과정에서 에틸렌옥사이드를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2-클로로에탄올이 EU에서 문제가 되는 까닭은 2-클로로에탄올과 에틸렌옥사이드를 분리해 취급하지 않고 함께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 9월부터 EU에서는 에틸렌옥사이드와 관련한 식품 파문이 이어졌는데, 특히 인도에서 생산된 참깨, 기름, 식품첨가물인 메뚜기 콩껌, 카레, 생강가루, 강황과 같은 향신료들에서 에틸렌옥사이드가 검출되면서 이 원료를 쓴 식품 수백 톤이 리콜된 바 있다.

지난 12월 유럽식품안전청(EFSA)의 조사 결과 유럽 전역에서 중국산 잔탄검, 필리핀산 라면, 말레이시아 스리랑카산 유기농 계피 등에 에틸렌옥사이드가 포함됐다는 50건의 보고서가 나오기도 했다. 스니커즈, 트윅스, 바운티, 네슬레, M&M, 키리 치즈까지도 대규모 리콜에 들어갔다.

EU집행위원회가 발표한 에틸렌옥사이드 규제대상 품목/코트라

리콜 사태가 반복되자 EU 식물·동물·식품·사료 위원회(PAFF)는 올해 2월 18일부터 에틸렌옥사이드 물질이 포함된 식품에 대한 수입강화 조치를 시행했다. 규제대상에는 한국산 라면 및 식이보충제 식품을 비롯해 중국의 잔탄검, 인도의 로커스트콩·구아검·탄산칼슘, 말레이시아 로커스트콩 등이 포함됐다. 

한편, EU 집행위원회는 농장에서부터 식탁(포크)까지 식품의 생산·유통·소비까지 전 과정을 의미하는 EU의 식품안전전략인 팜 투 포크(Farm to Fork) 전략과 생물 다양성 손실을 막고 자연복원 목표를 포함한 자연 보호 패키지(Nature protection package)를 준비 중이다. 

유럽 그린딜 식품 정책 부분에 포함된 정책으로, 2030년까지 토지를 복원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팜 투 포크에는 2030년까지 화학 살충제 사용과 부작용을 50% 줄이고, 해충 관리에 대한 규정을 강화하는 계획이 담겼다. 또한 2030년까지 가축에 항생제 사용을 50%, 비료 사용을 20% 줄이고, 유기농업의 비중을 현재 8%에서 2030년까지 25%로 올리는 내용도 담았다. 

자연 보호 패키지는 손상된 생태계와 강을 복원하고, EU 보호 서식지와 종의 건강을 향상시키고, 꽃가루 매개체를 농경지로 복귀시키고, 오염을 줄이고, 유기농과 기타 생물다양성 친화적인 농업 관행을 강화하고, 유럽 삼림의 건강을 증진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유럽 육지와 바다의 최소 30%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보호구역으로 전환하고, 2050년까지 농경지의 최소 10%를 재조림한다는 계획이다.  

EU에서 식품 정책에 대한 지속가능성이 실시되면, EU 뿐 아니라 EU 공급망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된다. 크리스티안 버슈렌 유로커머스 산업협회장은 “코로나19에서도 봤듯이 공급망에서 연대와 협력이 중요하다”며 “식품이 지속가능성하려면 공급망 전체에서 대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EU에서 금지하는 살충제 및 화학물질 기준이 한국 수출품까지 적용될 수 있다. 코트라 브뤼쉘 무역관은 "팜 투 포크 전략에 수입식품의 EU 규정준수 및 품질관리감독 기능이 강화되면서, 앞으로 EU의 식품 모니터링 및 규제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사이트에서 제공 중인 RSS 서비스 등을 이용해 관련 기업의 주시가 요구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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