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배출권을 둘러싼 업종 내 개별기업간 분쟁이 이어질 것인가.
지난 11일 발표된 정부의 탄소배출권 거래제 3차 기본계획(2021~2025년)에 따르면, 내년부터 온실가스 배출권 유상할당 비중이 3%에서 10% 이상으로 늘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정부로부터 할당받는 배출권 수량을 더 많이 가져오기 위해 소송전까지 벌어질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배출권 유상할당 비중 3%에서 10%로 늘어나
2015년 도입된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는, 각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 허용량을 정부가 배정한 후 이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증권거래소나 다른 기업에서 사서 충당해야 하는 제도다. 물론 허용량보다 적게 배출하면 이를 팔아서 돈을 벌 수도 있다.
시멘트, 철강, 정유화학업종 등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의 경우 배출권 이슈는 바로 기업의 수익과 직결되는 리스크로 여겨진다. 제1차 계획기간(2015∼2017년), 제2차 계획기간(2018~2020년)을 거쳐 내년부터 시행되는 제3차 계획기간엔 중대한 변화가 있다.
배출권을 돈 주고 사야 하는 유상할당 비중이 3%에서 10% 이상으로 늘어난다는 점이다. 100만큼 배출권을 할당받으면 기존에는 3만큼만 줄이거나 돈을 주고 사면 됐지만, 이제는 10 이상을 줄이거나 사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유상할당 대상 기업까지 늘어난다. 기존엔 62개 업종 중 26개가 유상할당업종이었다면, 앞으론 69개 업종 중 40개가 그 대상이다. 현대ㆍ기아차 등 완성차 제조업은 물론, 고무제품 제조업, 자동차용 부품업, 증기 냉온수 및 공기조절 공급업 등이 유상할당 대상으로 변경됐다.
원래 '오염원인자 배출책임 원칙'에 따라 배출권은 유상할당이 원칙이지만, 비용 부담 때문에 기업들이 규제가 적은 국가·지역을 찾아 이전하는 '탄소누출'을 막기 위해 일부 업종은 무상할당해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의 책임성을 더욱 강화하겠는게 이번 정부 발표의 시그널이다.
해당 기업으로서는 정부의 배출권 할당량이 얼마나 될 지에 따라, 재무부담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촉각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게다가 탄소배출권 가격까지 초기에는 1만원을 밑돌았는데 올라 올초 4만원대까지 올라갔다가, 현재는 3만원대다. 자칫 실적에 변동을 줄 큰 부담요인이다.
온실가스 배출권 관련소송 올 6월까지 24건, 이 중 2건 정부 패소
위기를 느낀 기업들은 정부를 상대로 소송까지 불사하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정부를 상대로 제기된 온실가스 배출권 관련 소송은 총 24건이었다. 현대제철, 한국타이어, SK케미칼 등은 할당량이 너무 적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중 21건은 정부가 승소했지만, 2건에서 패소했다. 시멘트 업체 6곳이 제기한 소송이다. 업종 내 온실가스 배출권이 부당하게 할당됐다는 이유였다.
업종별 다툼이 이어지는 이유는 배출권 총량 제도 때문이다. 업종별 배출권 할당 수량이 정해져 있기에 동종업계의 한 업체가 독식한다면, 나머지 업체들은 그만큼 적은 배출권을 가져갈 수밖에 없다.
더구나 개별기업이 할당받는 배출권은 기존에 얼마만큼의 온실가스를 배출했는지 그 배출량을 근거로 정해진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했던 기업은 더 많은 배출권을 가져가고, 적게 배출했던 기업은 적게 가져간다. 이 때문에 어떻게든 초기 할당을 받을 때 배출권을 많이 확보해놓으면 유리해지는 구조다. 바로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성신양회 사건이 대표적이었다. 성신양회는 총 5기의 소성로(가마)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중 1,2호 소성로는 생산효율이 낮아 가동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배출권 할당을 앞두고 1,2호 소성로도 가동하겠다고 밝히며 신설 시설로 분리했다. 편법을 사용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늘려 추가 배출권을 할당 받았던 것이다. 이 때문에 아세아시멘트를 비롯한 6개 업체는 환경부를 상대로 “노후 소성로를 이용해 추가 탄소 배출권을 할당 받는 것은 편법이며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해 1, 2심에 승소했다.
부당할당 문제 제기하면 소송전 벌어질 수도
이와 같은 소송 사례들이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유상할당 업종이 증가하며 배출권 구매에 부담을 느낀 업체들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3차 계획(2021년)에 부담할 기업들의 배출권 비용은 한국전력(연결) 8435억원, SK에너지 2960억원, LG화학 3230억원, 롯데케미칼 2350억원 등이다(배출권 4만원, 유상할당 비중 10% 가정에 근거, 초과 배출할 경우 비용이 더 커질 수 있음).
시행령 개정으로 무상할당에서 유상할당으로 바뀐 업종은 17개. 고무, 자동차, 자동차부품, 담배, 기타 화학 제품 제조업 등이 해당된다.
| 무상할당 → 유상할당 (17개 업종) | |
| 1 |
고무 제조업 |
| 2 |
자동차 제조업 |
| 3 | 액체선별 및 원료제공업 |
| 4 | 절연선 및 케이블 제조업 |
| 5 | 자동차 부품 제조업 |
| 6 | 담배 제조업 |
| 7 | 기타 비금속 광물 비품 제조업 |
| 8 | 기타 섬유 제품 제조업 |
| 9 | 항공기 우주선 및 부품 제조업 |
| 10 | 기타 화학 제품 제조업 |
| 11 | 기타 금속 가공제품 제조업 |
| 12 | 일반 기계 제조업 |
| 13 | 전동기 발전기 및 전기변환 공급 제어장치 제조업 |
| 14 | 탱크 및 증기 발생기 제조업 |
| 15 | 의약품 제조업 |
| 16 | 특수목적용 기기 제조업 |
| 17 | 증기 냉온수 및 온기 조절 공급업 |
게다가 업종별 배출량으로 할당 기준으로 정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피해를 입는 기업도 생겨난다. 특히 철강, 비철금속, 석유화학 업종 등에서는 업체별 온실가스 배출 편차가 극심하다. 소수 업체가 과도하게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것이다. 때문에 개별기업이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거나 온실가스 배출 감축노력을 벌여도, 할당량이 전체 업종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없다.
2018년 기준으로 철강의 경우 포스코와 현대제철 주식회사는 각각 7312만톤, 2251만톤을 배출한 반면, 동국제강 주식회사와 (주)세아베스틸은 195만톤, 142만톤에 그쳤다.
비철금속 업계 또한 고려아연 주식회사가 384만톤을 배출한 반면, LS니꼬동제련 주식회사가 53만톤, 주식회사 풍산이 23만톤에 그쳐 쏠림이 심각했다.
석유화학 업계의 경우 주식회사 엘지화학과 롯데케미칼, 한화토탈 주식회사 등이 배출량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배출량 쏠림이 심한데도, 해당 기업은 정부의 업종별 할당량 기준에 의해 꼼짝없이 배출권 할당량을 배당받아야 한다. 게다가 정부의 배출권 할당량 배분 기준과 근거는 깜깜이다. 외부에 공개를 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2015년 15개 석유화학 기업은 환경부 장관을 대상으로 소송을 벌이면서 "석유화학 업종의 경우 예상하고 있던 배출권 할당량에서 당장 15%를 줄이게 됐다"며 "다른 업종들은 신청한 그대로 배출권을 받기도 했는데 유독 석유화학 업계만 적게 할당된 게 어떤 기준인지를 알려달라"며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철강업종이 온실가스 다량 배출업종이라는 이유로 묶여 배출권 할당에 불이익을 받을 경우, 포스코와 현대제철에 비해 턱없이 적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동국제강과 세아베스틸은 억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들 업체들의 부담이 소송전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배출권을 구매해야 하는 업체들의 비용부담이 커지며 정부의 배출권 할당 방식 자체에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정부는 배출권 거래제 관련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신뢰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며 “환경부는 배출권거래제 활용방안에 산업계의 부담을 저감할 수 있는 지원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