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감축에 힘을 쏟는 기업들 사이, 탄소배출권 판매로 미소를 짓는 기업도 있다.

작년 처음 흑자를 기록한 테슬라는 자동차 판매가 아닌 탄소배출권으로 큰 수익을 거뒀다. 미국 11개 주에서 시행하는 무공해 차량 보급 정책 ZEV 크레디트를 33억달러(약 3조6800억원)나 팔면서다. 

볼보의 자회사 폴스타도 지난해 유럽연합이 규정한 이산화탄소 감축 목표를 초과 달성하면서 포드에게 잔여 탄소배출권을 판매했다. 이를 통해 거둔 수익은 친환경 기술 프로젝트에 재투자하겠다고 밝히며 2040년까지 넷제로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내에도 탄소배출권 판매로 웃는 기업 늘어...

감축 설비에 미리 투자한 기업이 웃었다

해외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배출권 판매로 웃는 기업이 있었다. 

반도체 세정제의 필수 소재인 질산을 생산하는 화학기업 '휴켐스'는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2004년부터 자발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사업에 참여했다. 탄소 감축에 들인 비용은 고스란히 수익이 돼 돌아왔다. 휴켐스는 작년, 주력 사업 부진 속에서도 탄소배출권 판매가 큰 방패로 작용해 작년 1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 311억원을 거뒀다. 구원 투수로 탄소 배출권을 사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2007년 온실가스 저감시설을 설치하면서 연간 최대 약 160만 톤의 탄소를 절약했기 때문이다. 

한솔제지는 2015년 탄소배출권 제도 도입 이후부터 매년 정부로부터 할당받은 배출권보다 적은 탄소를 배출해 남은 배출권을 판매하면서 추가 수익을 거두고 있었다. 2016년의 경우 35억1600만원을, 2018년에는 30억1000만원의 수익을 거뒀다. 한솔제지 또한 배출권 거래제도 시행 전부터 에너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LNG를 사용하는 등 연료 전환과 공정효율 개선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 관리 시설을 위해서도 2016년에는 54억원을, 2017년과 2018년에는 각각 49억원, 88억원을 투자하는 등 꾸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섬유판 등 건축자재를 생산하는 한솔홈데크는 산림 조성으로 탄소배출권을 만들고 있다. 자회사인 한솔뉴질랜드가 뉴질랜드에 조성한 숲을 통해 탄소배출권 리스회사에 배출권을 판매하고 있다. 또 폐목재에서 나오는 스팀을 활용해 탄소 감축 사업으로 인증받기도 했다. 

대기오염 제어 관련 친환경 핵심소재 및 부품 개발 업체로 온실가스 저감 설비를 만드는 업체인 에코프로는 중국 석탄 제조기업 양취안메이예그룹과 질소비료 제조업체인 융창케미컬이 배출한 탄소 36만톤을 저감하기로 하면서, 2022년부터 10년 간 이에 상응하는 탄소배출권을 받게 된다. 

대형발전소에 집진설비와 선박용 배기가스를 정화하는 탈황설비 등의 시설을 만들어 내는 KC코트렐은 이산화탄소를 포집 및 저장할 수 있는 CCS 기술로 배출권 발행을 계획하고 있다. 

가전 및 냉매가스와 반도체용 특수가스를 제조하는 기업인 후성은 국내에서 탄소배출권으로 매출을 올린 첫 기업이다. 후성은 연간 220만여톤의 온실가스 감축 실적을 인정받으며 지난 2009년 유럽과 캐나다에 탄소배출권을 매각해 약 160억원의 수익을 거둔 바 있다.

에코바이오는 매립지의 매립가스를 통해서 수소를 생산하고 매립가스로 전기를 생산해내는 기업으로 지난 2012년 온실가스 배출 감축 사업을 등록해 감축으로 획득한 탄소배출권을 판매하고 있다.

 

계열사 내 배출권 거래 통해 상부상조

현금 외부 유출 방지로 배출권 팔아

SK에너지
SK에너지

그룹 계열사 간의 배출권 거래를 통해 서로 돕는 사례도 있다. 지난해 정유업 회사 SK에너지는 액화천연가스 회사 SK E&S에게 30만 톤의 탄소배출권을 판매했다. 거래금액은 66억 6000만원, 계열사 간의 내부거래로 진행됐다. 

배출권 거래는 한 번이 아니었다. 지난 2018년과 2019년에도 SK에너지가 SK E&S에게 각각 35만톤, 15만톤의 탄소배출권을 매각했다. 에너지 발전이 주력 사업인 SK E&S는 배출권을 넉넉히 확보하기 어렵다. 부족한 배출권을 구매해야 하는 상황에서, 같은 그룹 계열사인 SK에너지가 구원 투수로 나서게 된 셈이다. 

SK에너지 또한 밑 지는 장사가 아니었다. SK에너지의 경우 지난해 코로나19로 석유 제품 수요가 줄면서 공장을 돌리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지난해엔 94.1%에 달했던 가동률이 올해 82.6%로 11.5%포인트 떨어지기도 했다. 어차피 남는 배출권을 현금화 하는 것이 SK에너지 입장에서도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LG전자
LG전자

LG전자도 2017년부터 LG화학에게 탄소배출권을 판매하고 있다. LG전자는 2020년 기준으로 43만톤을 거래하면서 115억원의 거래 수익을 거뒀다. LG전자의 영업이익이 연간 2조원 이상인 것을 감안하면 부업을 통한 수익창출보다는 계열사 지원 목적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룹 외부로 현금 유출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LG전자 역시 공장을 가동시켜야 하는 제조업이기 때문에 온실가스 배출이 불가피하지만, 중공업이나 석유·화학공업 등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배출량이 적은 편이다. LG전자의 지난해 온실가스 배출량 추정치는 120만톤 미만으로 790만톤을 내뿜은 LG화학과 비교했을 때 6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다. 

더불어 2013년 인도에서 고효율 냉장고 보급사업 등으로 탄소를 감축하고 있기도 하다. 에너지 효율이 높은 냉장고를 생산하고 판매해서 전기 사용량을 낮춰 줄인 온실가스의 양만큼 탄소배출권으로 되돌려 받고 있다. 이를 LG전자는 유엔기후변화협약으로부터 약 5년간 탄소배출권 17만3,000톤을 인증받았다.

환경부의 ‘외부사업 타당성 평가 및 감축량 인증에 관한 지침’에 따라 LG전자는 확보한 탄소배출권을 해외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판매할 수 있다. LG전자는 인도에서 고효율 냉장고를 계속 보급해 2023년까지 총 160만톤의 온실가스를 줄이는 게 목표다.

 

배출 할당량 초과로 빚 생기는 기업도 있어

포스코
포스코

탄소배출권 판매를 통해 웃는 기업도 있지만 부채를 쌓는 기업도 있다. 대표적인 철강 기업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이다.  

포스코는 지난해 처음으로 202억원의 배출부채가 쌓았다. 2019년 8050만톤의 온실가스를 배출, 1년새 2018년 7310만톤에서 9.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포스코는 “2019년 9월 포스코에너지의 부생가스 복합발전소를 인수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크게 증가했다”며 배출부채가 잡힌 이유를 설명했다. 부생가스는 화석연료보다는 친환경적이지만, 여전히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전력원이다. 

반면 포스코에게 부생가스 발전소를 매각한 포스코 에너지는 온실가스 배출이 줄었다. 2018년 1169만톤에서 2019년 489만톤으로 약 680만톤을 감축한 것이다. 이미 철강이라는 업종 특성상 온실가스 배출을 많이 하는 포스코에게 연간 700만톤을 배출하는 부생수소 발전소는 더 큰 짐을 안겨준 것으로 보인다. 

현대제철도 온실가스 초과 배출로 울상을 짓고 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할당량보다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해 약 1521억원의 탄소배출권 매입채무를 쌓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1143억원보다 24.8% 증가한 수치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포스코의 4분의 1 수준이지만 배출부채는 포스코의 7배 수준인 지점도 눈여겨볼 만 하다. 포스코는 연간 3590만톤의 쇳물을, 현대제철은 2120만톤을 생산하지만 배출권으로 인한 부채는 202억원, 1521억원을 지고 있다. 정부가 포스코에 더 많은 무상할당량을 지급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현대제철에게 배출권이 덜 돌아갔기 때문이다. 향후 배출권 거래제에서 유상할당 비율이 크게 늘어나면서, 업종별 배출권 할당 방식 또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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