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대외 경제가 불안해지면서 속도를 냈던 탄소중립 정책이 다소 지연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금융연구원과 한국은행은 "결국 탄소중립은 가야할 길"이라며 "정책방향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최근 세계적인 탄소중립 정책 후퇴 움직임과 향후 전망> 보고서를 통해 "각국에서 탄소중립 정책이 후퇴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기후위기로 물리적 리스크가 세계 곳곳에서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탄소중립이라는 정책방향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경기가 호황이고 저금리로 시중에 유동성이 풍부해 기업경영에 큰 문제가 없을 때는 각국과 기업이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탄소중립에 관심을 가지고 정책과 투자를 강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UN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는 ‘글래스고 기후협약’이 발표됐고, 각국은 올해 안에 2030년 탄소 감축 목표를 재검토하고 강화하기로 동의했다. 올해 5월 G7 기후·환경·에너지 장관 회의에서는 석탄을 이용한 화력 발전을 서서히 폐지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석탄발전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화석연료 보조금 지원을 중단하자는 내용이 골자다.

그러나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금리상승에 따른 유동성 축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는 등 대외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탄소중립 정책이 후퇴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6월 G7 정상회의에서는 러시아와 우크라니아 간 전쟁으로 촉발된 세계적인 에너지 공급난에 대처하기 위해 해외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대한 공공 자금조달을 일부 허용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국가가 독일이다. 독일은 지난해 5월 국가 탄소중립 달성 목표 기한을 기존 2050년에서 2045년으로 앞당기고,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65%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탈석탄 시기를 기존 2038년에서 2030년으로 앞당기고 재생에너지와 천연가스로 석탄발전량을 대체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에너지 공급위기에 처하면서 석탄발전을 허용했다. 에너지안보 관련법을 개정해 폐지가 결정된 석탄화력 발전소를 일시적으로 재가동할 수 있도록 하고, 2030년까지 폐쇄가 계획된 일부 석탄화력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 6월에는 유휴 석탄화력 발전소를 재가동하고 천연가스 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기업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내용을 담은 에너지 긴급조치를 발표했다.

겨울철 에너지 부족이 가시화되면서 오스트리아도 100% 재생가능 에너지로 전환하는 정책에 따라 가동 중지됐던 석탄화력발전소를 재가동하기로 했다. 2029년 탈석탄을 목표로 석탄화력발전 비중을 35%로 제한한 네덜란드도 제한을 없애기로 결정했다. 프랑스, 그리스도 석탄화력발전을 재가동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에서도 인플레이션과 에너지공급난으로 연료비 부담이 가중되면서 탄소중립 정책이 후퇴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지난 6월 환경청이 석탄화력발전소 온실가스 배출을 광범위하게 규제할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ESG 투자를 선도한 블랙록도 다소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관 ISS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투자 기업 연례주주총회에서 환경과 사회 이슈 관련 주주제안 중 24%에만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에는 43%에 찬성표를 던졌다.

그러나 한국금융연구원은 “경제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봤다. 최근 기후위기가 악화하면서 탄소중립으로 나아가는 방향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지난 5월 호주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기후 파업이 일어났다. 
지난 5월 호주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기후 파업이 일어났다. 

실제로 지난 8일 호주에서는 10년 만에 기후법안이 최종 통과됐다.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43% 감축하고, 에너지·기후 장관은 매년 의회에 탄소 감축 진척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고 정부기관이 재정 및 개발 결정을 내릴 때 감축 목표를 고려하도록 한 것이다.

호주는 2019년에서 2020년까지 6개월간 이어진 대규모 산불로 약 18만6000㎢가 소실된 경험을 한 바 있다. 총 28명이 사망했고, 야생동물 30억마리가 소사했다. 올해는 기록적인 홍수로 약 1만여채의 집이 침수 피해를 입었다. 호주 국립과학원은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로 2050년까지 연간 390억달러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예측하기도 했다.

호주 크리스 보웬 기후변화에너지부 장관은 “이번 법안은 국가가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는 강력한 의지가 있다는 걸 보여주며, 국민을 보호하겠다는 국가의 야망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이 1일 내놓은 <중국 탄소중립 정책 현황 및 공해방지투자의 경제적 영향> 보고서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나왔다. 한국은행은 “중국 산업구조가 첨단산업 및 3차 산업을 중심으로 고도화되면서 탄소중립 정책은 장기적으로 중국경제의 경쟁력을 제고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중국은 2012년 18차 당대회에서 생태문명 건설을 주요 발전방향으로 제시한 이후 탄소 정책에 속도를 냈다. 특히 태양광 및 풍력발전 설비용량은 세계 1위 수준으로 올해 기준 중국 내 전력 생산의 약 11%를 차지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중국의 태양광 모듈 점유율은 84%, 전지는 85%, 웨이퍼는 97%로, 미국 포브스지는 중국이 향후 석유시장에서 OPEC과 같은 지위를 차지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재생에너지로 빠르게 전환하면서 일자리 증가 효과도 가져왔다. IEA는 중국의 탄소감축 속도에 따라 2019~2030년 중 60만개에서 최대 200만개 일자리가 새로 생길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은행은 “탄소중립 정책의 일부인 공해방지 투자는 탄소 배출량이 상대적으로 낮은 3차 산업 중심으로 산업구조 변화를 촉진해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는데 기여했다”며 “고용 창출효과가 상대적으로 큰 3차산업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변화하면서 고용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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