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도 어김없이 마감 초읽기로 뉴스레터를 씁니다. 많은 분들이 저에게 글잘 쓰는 비결을 물어보는데, 글 잘쓰는 비결은 다독, 다작, 다상량(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할 것)이라는 고전법칙이 잘 알려져 있지요.
그런데 아무도 글 빨리 쓰는 비결은 안 물어봅니다. 글쓰는 직업, 아니 미디어라는 콘텐츠 비즈니스 또한 원료부터 생산, 판매에 이르는 밸류체인이 있는데, 뉴스 비즈니스는 특히 이러한 밸류체인이 매우 짧은 ‘숏테일 비즈니스’입니다. 제품(기사)를 작성하는데 들어가는 생산시간은, AI가 대신 써주지 않는 이상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똑같은데, 기사의 소비시간은 예전보다 훨씬 사이클이 빨라졌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생산성을 높이려면 제품(기사)를 빨리 쓰는 방법에 대한 학습도 필요합니다.
제가 뉴스레터를 밤에 쓰지 않고 아침 마감 1시간~1시간30분 전에 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마감이 있으면 순간 몰입도가 최강으로 높아져서, 기사 쓰는 시간을 평소에 비해 2~3배 줄일 수 있습니다. 글을 써보고 싶으신 분은 꼭 한번 적용해보세요. ^^(이렇게 서두를 워밍업하는 이유는 제가 서서히 글에 몰입하기 위한 저만의 습관 같은 것이어서, 바로 본론에 진입하고 싶어하는 분들께는 죄송합니다 ㅠㅠ)
2023년 10월 실시, 2026~2027년 본격 시작
이번 주는 유럽연합에서 13일(현지시각) 전 세계 최초로 통과된 CBAM(탄소국경조정제도)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럽연합이 1년 전부터 예고해오던 공포의 CBAM(전문용어로 컨퍼런스에서는 모두 씨밤이라고 부르는데, 욕같이 들려서 웃픕니다)이 10시간의 최종 논의 끝에 의회에서 합의에 이르렀습니다. CBAM을 잘 모르는 분을 위해 설명하자면, 유럽기업을 위해 탄소 가격만큼의 무역장벽을 세우는 겁니다. 예를 들어 국내 철강회사인 포스코가 톤당 2만원으로 생산한 철강을 유럽에 수출하려면, 유럽연합의 현재 탄소가격(유동적이지만 10만원까지 치솟음)만큼의 차액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전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던 거대한 ‘탄소 장벽’이 세워지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또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유럽연합이 CBAM을 세우는 이유도 간단히 설명할게요. 이게 모두 2050 탄소중립과 연결돼있습니다. 유럽연합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탄소중립 대책을 세우고 있는 나라입니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55% 감축(일명 Fit for 55)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정책을 다 동원하고 있습니다. 이건 여담이지만, 기후변화협약 대사를 지낸 전문가분께 여쭤보니 “유럽연합이 이렇게 기후대책에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거는 이유는 유럽이 위도와 경도 측면에서 지리적으로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대륙중 하나”라고 하더군요. 기사를 보니 실제로 30년 동안 유럽의 기온 상승 폭은 전 세계 평균의 두 배였습니다. 올 여름 폭염으로 2만명이 사망했다는 기사도 얼마 전에 나왔지요.
유럽연합은 이렇게 탄소감축을 위해 가장 강력한 환경정책을 또 하나 수정 중입니다. 바로 전 세계에서 최초로 2005년 실시됐던 ‘탄소배출권거래제(ETS)’라는 제도입니다. 탄소를 줄이기 위한 경제학적 설계에 의해 탄소거래시장을 만든 게 핵심인데, 여기에 ‘무상할당(free allowance)’이라는 게 포함됩니다. 정부가 A철강기업의 배출량 평균을 살펴본 후 일정한 양의 무상할당을 배정해주고, 이것보다 더 많이 배출하면 돈을 주고 사오고, 적게 배출하면 팔 수도 있는 거래시스템을 만든 것이지요. 왜냐구요? 안그러면 A철강기업이 탄소거래시장이 없는 다른 나라로 철강공장을 옮길 테니까요(이걸 전문용어로 ‘탄소누출’이라고 합니다)
무상할당 없애고 CBAM 도입
자, 그럼 EU는 앞으로 뭘 하려는 것일까요? 이 무상할당을 없앱니다. 2035년까지 단계적으로 없애려 하고 있습니다. 무상할당이 없어진다는 건, 기업들에게 무슨 신호일까요? ‘탄소배출=비용폭탄’이라는 뜻입니다.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등 탄소배출량이 많은 기업들에게는 회사 망하라는 소리나 다름없다”며 유럽 회사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그래서 유럽연합에서는 ‘님도 보고 뽕도 따는’ 일석이조 전략, 즉 CBAM이라는 탄소장벽을 세우겠다고 전 세계에 선포했습니다. “유럽연합은 기후 대책을 위해 10만원짜리 탄소가격을 원가에 부담해가면서 철강을 만들고 있는데, 중국 철강회사는 1만원짜리, 한국 철강회사는 2~3만원짜리 탄소가격을 갖고 유럽에 수출하고 있으니 말이 안된다. 이제 그대들도 정당한 탄소값을 내시오”라는 것입니다. 중국 시진핑 주석이 WTO 위반이라고 강력 항의해봤지만, 이번 EU의회는 “WTO 규정 위반이 되지 않도록 설계했다”고 발표했더군요.
공교롭게도, CBAM 발표 하루 전날 발표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G7 선진국그룹들이 만든 ‘국제기후클럽’이라는 것입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 등이 회원국입니다. 이들은 기온 상승 폭을 1.5도로 제한하기 위한 목표를 세우고, 이를 이행하기 위한 기후금융과 시장 메커니즘 등 과감한 조치를 도입하겠다고 하면서, ▲국제사회의 통일된 온실가스 배출량 측정·감독 기준 ▲온실가스의 명시적 가격(탄소세나 배출권거래제 등)과 내재적 가격(탄소 중립 정책에 따른 각 기업의 내부적인 비용) ▲개발도상국 대상 ‘정의로운 에너지전환 파트너십(JETP)’ 등 청정에너지 전환기금 등을 추진할 예정입니다. 지금까지는 탄소가격의 격차가 발생해도 개도국 프리미엄을 인정받을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확실한 탄소 장벽을 세우겠다는 ‘세계 질서’의 선언으로 보여집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현지 언론에서 보도된 내용을 보면, 국내 산업계에는 좀 암울한 소식입니다. 일단 CBAM은 2023년 10월에 시범실시하고,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비료, 전력, 전력, 수소 등 6개 품목이 대상이고, 특정 조건에서의 간접배출, 다운스트림 제품 등도 새롭게 포함됐습니다. 나사 볼트 등 가공제품, 철 또는 강철로 만든 유사품목도 새롭게 포함된 항목이며, 중요한 것은 시범 기간 종료까지 남은 3~4년 동안 화학물질 폴리머, 플라스틱 등도 포함시킬지 여부를 검토한다고 합니다.
시범운영 기간에는 탄소배출량에 대한 보고를 의무적으로 해야 하고, 과도기가 지나면 2026년 혹은 2027년쯤 본격적으로 탄소 관세가 부과됩니다. EU는 CBAM과 발맞춰서 탄소배출권거래제(ETS) 무상할당도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합니다.
우리 정부는 어제 국무조정실,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외교부, 환경부까지 모여 CBAM에 대한 국내 기업 지원방안을 논의했습니다만,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국내의 탄소배출권 가격이 유럽만큼 올라가지 않는 한, 차액을 기업이 부담해야 합니다.
국내 배출권 거래시장의 허점
그럼 국내 탄소배출권거래시장으로 한번 눈을 돌려보겠습니다. 얼마 전, 기후변화센터 후원의 밤에서 옆 테이블에 앉았던 몇 분들과 2시간 동안 끝도 없는 이야기를 나눴는데 국내 탄소배출권 시장에 대한 여러 복잡한 이야기였습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모 증권사에서 배출권을 담당하는 분은 “정부가 탄소가격이 오르기를 바라는지 모르겠다. 증권사들을 배출권 시장에 참여시킨다고 말은 했는데, 막상 우리 증권사들 중에는 꼭짓점에 탄소배출권을 대량 구매한 후 배출권 가격이 내려가 손해본 경우도 있다. 탄소시장은 현재 규제시장이지, 제대로 된 시장이 아니다. 1년 넘게 지켜봤는데 정부도, 기업도, 환경NGO도 탄소가격이 오르기를 바라는 것 같지 않더라. 그럼 탄소시장이 돈이 되지 않는데, 누가 여기에 돈을 투자하나. 금융회사가 돈이 되기 때문에 탄소시장에 들어오는 것이지, 자선사업하러 오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그런데 탄소로 돈을 벌면 나쁜 사람처럼 되는 분위기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탄소시장이 제대로 운영되는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기업의 입장, 국내 산업계의 입장을 생각해서 우리나라는 무상할당량을 후하게 배정하는 경우가 많은 게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지요. 그래서 국내 탄소배출량 1위인 포스코가 배출권을 판매해 돈을 많이 벌었다는 보도가 큰 화제가 되기도 했고요. 그만큼 탄소보다는 산업경쟁력을 우선시해왔던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EU를 포함한 국외에서 탄소 장벽을 세워버리니, 그동안 온실 속의 화초로 성장해왔던 우리 기업은 탄소 자생력을 점점 잃어온 게 사실입니다.
최근 1~2년 사이 배출권에 관한 설명회 자리에는 기업 관계자들이 수십명씩 북적댄다고 합니다. 그만큼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는 것이죠. 자발적 탄소배출권에 대한 관심도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오늘자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환경부는 국내에서 ‘탄소중립 원유’라는 표현을 한 SK루브리컨츠(현 SK엔무브)에 광고를 수정하라는 시정명령을 금명간 내릴 예정입니다. SK에너지, GS칼텍스, 포스코에도 탄소중립 휘발유, 탄소중립 원유, 탄소중립 LNG 도입을 광고한데 대해 광고를 시정하라고 행정지도(권고)할 예정입니다. 환경부는 “정부의 탄소중립은 스코프1,2에 대한 것으로 스코프3만을 갖고 탄소중립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고 행정처분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탄소배출권에 대해 기업들이 가장 헷갈려하는 지점이 바로 “탄소만 줄이면 돈이 되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부가성’의 원칙, 쉽게 말하면 A기업이 배출한 양을 다 상쇄하고 나서도 남으면 그걸 탄소배출권으로 팔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스코프1, 2라는 산을 넘으려는 고민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거기에도 돈도 들고, 시간도 필요합니다. 탄소 리스크를 넘긴 기업이라야, 탄소시장이 기회로 다가올 것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이 칼럼은 한주 전 매주 수요일 발송되는 뉴스레터입니다. 칼럼을 좀 빨리 읽고 싶은 분은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