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탄소배출권거래제(ETS)를 강화하고 확대하기로 합의하면서, 탄소 감축에 본격적인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번 합의안에는 2034년까지 탄소배출권 무상 할당제를 폐지하고, 탄소배출권 개수 자체를 점진적으로 줄여나간다는 내용이 담겼다. ETS 적용 범위도 확대한다. 2027년부터 ETS II라는 별도의 명칭을 붙여 도로교통과 빌딩에도 탄소배출권을 적용하기로 했다.

유럽의회는 지난 18일 ETS 개편을 위한 의회·이사회·집행위원회 간 삼자 합의가 타결됐다고 밝혔다. 지난 2005년 도입된 ETS는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배출량을 55% 감축하겠다는 EU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핵심적인 수단이다. 이번 개편으로 EU는 ETS를 통한 배출량 감축 목표를 높였다. 기존 2005년 배출량 대비 43%에서 62%로 상향 조정했다.

유럽의회 피터 리제 수석대표는 29시간의 협상 끝에 결론을 도출했다며 “이는 유럽에서 가장 큰 기후법이며, 가능한 낮은 가격으로 많은 양의 탄소를 절약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합의안에 따르면 현재 일부 업종에 무상으로 제공되고 있는 탄소배출권은 2026년부터 2034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된다. 2026년부터 2.5% 소폭 감축을 시작으로 2027년 5%, 2028년 10%, 2029년 22.5%, 2030년 48.5% 등으로 무료할당 규모를 축소할 방침이다. 2034년에는 완전히 폐지한다.

EU는 철강, 화학, 시멘트 등 국제 경쟁력이 중요한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일정 수준의 배출권을 무상으로 할당하고 있다. 그러나 역외 국가에서 들어오는 제품에 관세를 매기는 탄소 국경조정제도(CBAM)를 시행하며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역외 기업도 동등한 수준의 탄소 비용을 부담하는 만큼, 역내 기업도 탄소배출권 구매하게 만들어 일정한 탄소 비용을 부과하겠다는 조치다. 무상 할당제 제도를 2026년부터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것도 CBAM 도입 시기와 발을 맞추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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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배출권의 개수 또한 줄어든다. EU는 2024년에는 9000만개, 2026년에는 2700만개의 탄소배출권을 없앨 계획이다. 이는 탄소배출권의 오염 상한선을 높이자는 결정에서 비롯됐다. 2024년 오염 상한선은 2.2%, 2026년에는 4.3%로 높아진다. 이 조치를 통해 2030년까지 2005년 대비 탄소배출량을 62% 감축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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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S 적용 범위도 넓어진다. 지금까지는 철강과 정유 등 에너지 사용이 많은 산업계와 발전소·항공사 등 약 1만 개 기업에 적용됐으나 2024년부터는 해상 운송 분야까지 확장될 전망이다. EU는 이들 부문의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05년 대비 43%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27년부터는 ‘ETS II’라는 별도 제도를 통해 도로 교통과 건물에 에너지를 제공하는 기업에까지 확대 적용할 예정이다. 소매 에너지 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제한하기 위해 도로 교통과 건물의 탄소시장은 다른 부문과 분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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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현재 에너지 시장이 불안정한 만큼, 에너지 가격 추이를 보고 ETS II 도입은 1년 유예할 수 있다. 만약 탄소 배출권 가격이 톤당 45유로에 달한다면, 가격을 낮추기 위해 추가적인 탄소 배출권을 도입할 수도 있다.

유럽의회 파스칼 캉팽 환경위원회 위원장은 “이번 ETS 개편으로 EU 내 탄소 배출권 가격은 현재 80~85유로에서 약 100유로(약 14만원) 수준까지 인상될 수 있다”고 했다.

친환경 에너지 전환에 부담을 가지는 영세기업, 취약계층 보호를 위한 '사회기후기금' 신설도 잠정 합의됐다. 에너지 절약형 건물 개조 또는 전기차 구매 보조금 등 약 867억유로 규모의 기금이다. 기금의 일부는 ETS 수익으로, 일부는 정부 지원금으로 조성된다.

독일 로버트 하벡 경제장관은 “EU는 기후보호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모든 위기에도 불구하고 결의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럽 기후 정책은 우리가 함께 기후 중립으로 가는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보장하고, 전 세계적으로 기후 정책을 시행하기 위한 기준을 설정한다”고 했다.

개편안은 내년 1월 또는 2월 중 EU 27개 회원국 동의 및 유럽의회 표결을 거쳐 확정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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