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보유한 국내 주식 자산의 금융배출량이 최초로 공개됐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과 AI 기반의 ESG 전문 평가기관인 후즈굿(Who’s Good)은 국민연금 자산의 포트폴리오 내 국내 보통주 1168개 중 온실가스 배출량을 공시한 기업 312개에 대해 국민연금의 금융배출량을 산정한 결과, 2021년 말 기준으로 총 2710만3018톤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는 국내 주식 중 일부의 금융배출량만으로도 2021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인 6억7960만 톤의 3.98%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금융배출량은 2019년과 2020년에 각각 3740만 톤과 3372만 톤이 넘었다. 

이에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이하 Kosif)은 한정애 국회의원과 18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국민연금 2040 넷제로 달성 방안 토론회’를 열고 세계 3대 연기금인 국민연금의 금융배출량을 줄일 방안을 논의했다.

Kosif와 한정애 국회의원이 주최한 국민연금 2040 넷제로 달성 방안 토론회. 발제는 배희은 AIGCC 투자관행 이사, 김태한 Kosif 수석연구원, 윤세종 플랜 1.5 변호사가 맡았고, 패널토론에는 원종현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상근전문위원, 손석호 한국경영자총협회 사회정책팀장, 윤덕찬 지속가능발전소(후즈굿) 대표,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종오 Kosif 사무국장이 참여했다./ⓒ임팩트온
Kosif와 한정애 국회의원이 주최한 국민연금 2040 넷제로 달성 방안 토론회. 발제는 배희은 AIGCC 투자관행 이사, 김태한 Kosif 수석연구원, 윤세종 플랜 1.5 변호사가 맡았고, 패널토론에는 원종현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상근전문위원, 손석호 한국경영자총협회 사회정책팀장, 윤덕찬 지속가능발전소(후즈굿) 대표,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종오 Kosif 사무국장이 참여했다./ⓒ임팩트온

 

국민연금 2055년 소진…2040년 넷제로는 필수

Kosif는 국민연금이 2040년까지 넷제로를 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은 과학 기반 감축목표 이니셔티브인 SBTi(Science Based Target initiative)의 1.5℃ 시나리오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2019년 기준연도 배출량인 3746만 톤의 67.2%를 2035년까지 감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발제를 맡은 김태한 Kosif 수석연구원은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2040년에 기금이 최대치로 적립되고, 2055년에 모두 소진되므로 국민연금의 현행 기금 구조에서 아무런 기후 행동을 하지 않아도 2050년에 넷제로는 저절로 달성된다”고 말했다. 즉, 국민연금의 자금이 고갈되어 더 이상 온실가스 고배출 기업에 투자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는 의미다. 

김태한 수석연구원은 “국민연금의 고갈 문제는 연금수급시기를 늦추거나 납부액 증액 혹은 수령액을 줄이는 방법보다는 연금의 운용 수익을 늘려서 해결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익률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기후변화 리스크의 관리가 중요하므로 넷제로 목표를 빠르게 수립하고 우수한 로드맵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국민연금의 금융배출량을 산정한 후즈굿 윤덕찬 대표는 “국민연금의 넷제로 달성의 첫걸음은 측정에서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윤덕찬 대표는 “국내 금융사들은 TCFD보고서를 통해 금융배출량을 발표했지만, 데이터의 질을 나타내는 데이터 스코어는 발표하지 않았다”며 “후즈굿은 데이터 스코어 A와 B 정도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추정이 아닌 실제 배출량을 바탕으로 금융배출량을 산정했다”고 덧붙였다.

금융배출량 상위 10개 기업/Kosif 제공
금융배출량 상위 10개 기업/Kosif 제공

조사결과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금융배출량은 에너지(42%)와 소재(42%)에서 대부분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민연금이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는 한국전력의 배출량이 많고, 시멘트, 철강 등의 고배출 산업의 기업에도 투자하고 있음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이 넷제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주주행동주의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김태한 수석연구원은 “국민연금은 국내에 1000개 이상의 기업에 지분을 보유한 유니버설 오너(Universal Owner)로서 개인투자자처럼 지분 거래를 할 수 없으므로 적극적인 주주관여 활동(Engagement)으로 기업 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한 수석연구원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일관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는데, 이는 넷제로와 관련한 판단 기준이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해외 투자자, 주주관여 활동 활발…정관에 ‘권고적 주주제안’ 넣어야

배희은 AIGCC 투자관행 이사는 해외 연기금들은 넷제로에 대한 선언, 계획, 이행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현황을 전했다. AIGCC(Asia Investor Group on Climate Change)는 자산규모의 총합이 35조원에 달하는 70여 개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넷제로 목표를 설정하도록 돕는 단체다. 

배희은 이사는 “국민연금 운용자산의 절반 정도인 캘리포니아교직원연금(CalSTRS·캘스터스)은 기후금융 투자를 2005년에 했을 정도로 선도적이었다”며 “투자의 3분의 1은 대체 투자이며 대체투자의 상당 부분을 기후 솔루션에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캘퍼스(CalPERS)는 미국 최대의 공적 연금으로 네 가지 넷제로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캘퍼스의 4대 넷제로 전략은 옹호 활동(Advocacy), 주주 관여(Engagement), 통합(Integration), 파트너십(Partnership)이다. 

배 이사는 “캘퍼스는 옹호 활동을 통해 기후 리스크를 관리하고 있음을 대외적으로 알리고, 주주관여 활동을 통해 기업의 넷제로 경로를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전략을 세우며 투자 프로세스에 ESG를 반영하는 통합, GFANZ나 PRI, CA100+와 같은 투자자 이니셔티브에 가입하는 파트너십을 통해 넷제로를 달성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세종 플랜 1.5 변호사는 해외에는 많은 주주관여 사례들이 있으나 국내에서는 관측되지 않는 이유로 정관에 기후 관련 주주제안을 허용하는 내용이 없다는 점을 꼽았다.

윤세종 변호사는 미국에서는 코스트코, 필립스66, JP모건과 시티뱅크, 엑손모빌에 관한 투자자 관여활동을 주주 행동주의의 대표 사례로 꼽았다. 주주들은 각 회사에 ▲탄소중립 목표 채택(코스트코) ▲탄소중립 이행 계획 공시(필립스66) ▲화석연료 투자 중단 정책(JP모건, 시티뱅크) ▲이사 선임에 대한 주주제안을 했다. 

그는 “한국의 상법은 주주제안을 크게 제한하고 있는데, 일본은 우리의 상법과 비슷하지만 석탄 투자를 계속하는 은행에 기후 환경단체의 안건이 제안되고 기관투자자들이 찬성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며 일본의 사례를 소개했다.

일본의 미즈호은행, MUFG, 스미토모는 주주들이 파리협정에 부합하는 경영 전략을 요구하는 주주제안을 했고 이 안건은 표결까지 이어졌다. 윤 변호사는 “이 안건이 통과하지는 않았지만 상당수의 주주들이 찬성한다는 의사를 밝힘으로써 기업과의 협상에서 상당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세종 변호사는 “한국은 주주제안을 하려면 상장기업을 기준으로 볼 때 0.5%로 이상을 모아야 하며 시총이 1조원 이상인 코스피 200을 기준으로는 최소 50억원 정도의 지분을 보유해야 주주제안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다른 국가에 보다 법적 진입장벽이 높으므로, 주주제안의 기준이 되는 정관의 변경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윤 변호사는 “개별 기업이 정관에 기후변화 리스크에 대한 주주제안을 허용하는 조항을 넣을 수 있고, 이게 부담스럽다면 주주제안이 통과되더라도 권고의 효력만 가능하다고 하는 ‘권고적 주주제안’을 포함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주주제안과 환경 정보 부족…국민연금의 책임 vs 법과 환경의 문제

패널토론에서는 국민연금의 2040년 넷제로 달성과 방안을 두고 치열한 토론이 벌어졌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은 다른 글로벌 5대 연기금과 비교해서 기후 리스크 관리를 위한 ‘금융배출량’, ‘주주관여’, ‘넷제로선언’ 투자 목표’, ‘공동 행동’ 부문에서 대응 속도가 느리다”고 평가했다. 

송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은 TCFD를 지지하여 금융배출량을 측정해야 하고, 최근 한전에 대한 지분율을 줄였는데 포트폴리오를 변경하기보다는 주주관여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오 Kosif 사무국장은 “한국투자책임포럼이 조사한 결과 국민연금은 환경과 관련한 정보 입수율이 50%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부족한 정보로는 투자의사 결정에 있어서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종오 사무국장은 “국민연금은 부족한 정보 입수율에도 기업에 정보 공개 요구를 하지 않는다”며 “포트폴리오가 노출될 수 있다는 이유를 제시하지만, 투자 수익에 문제가 발생하면 국민에 대한 수탁자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토론자들이 국민연금의 2040 넷제로 달성 방안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임팩트온
토론자들이 국민연금의 2040 넷제로 달성 방안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임팩트온

원종현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상근전문위원은 “국민연금은 ESG에 관한 각 문제에 대한 안건이 나오면 적극적으로 찬성하려는 입장이지만, 안건이 없고 소수 주주로서 주주제안을 해도 90% 이상 통과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주제안이 상법상 기업경영참여 주주권이 되면, 국민연금이 해당 기업의 주식을 통해 얻는 이익을 회사에 반환해야 하므로 조심스럽다”며 “적극적인 주주제안을 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원종현 전문위원은 “국민연금은 유니버설 인베스터로서 ESG에서 기후뿐만 아니라 사회와 거버넌스도 고려하고 있으며, 수탁자 책임을 다하기 위해 ESG를 좋은 도구로 사용하지만 ESG 펀드를 수익률의 측면에서 3년 평가를 해보면 다른 펀드에 비해 성과가 좋지 않다는 점이 딜레마”라고 짚었다.

손석호 한국경영자총협회 사회정책팀장은 “국민연금이 넷제로를 선언한다는 의미는 포트폴리오 내의 기업들이 모두 넷제로를 해야 한다는 뜻”이라며 “방향성은 지지하지만 2040년이라는 기간은 너무 이르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손석호 팀장은 “국민연금은 수익성을 제1원칙으로 하고 환경, 에너지, 산업, 기업, 국가 정책을 모두 고려해야 하지만 ESG가 목적은 아니다”라며 “넷제로는 기업에 있어서 큰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일로 해외 연기금이 설정한 2050년 넷제로가 아닌 2040년 넷제로 목표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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