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미국 하버드 대학교 X(트위터)
이미지=미국 하버드 대학교 X(트위터)

석유·가스 업계의 기부가 대학 연구에 영향을 미치고 기후 변화 대응 노력을 저해한다는 내용의 연구가 발표됐다. 5일(현지 시각)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서구 대학들이 석유·가스 기업과의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엑손, 셰브론, BP, 셸 등, 10년간 미국 대학에 최소 9400억원 기부

5일 발표된 보고서 ‘고등 교육에서 화석 연료 산업의 영향력: 검토 및 연구 의제(Fossil fuel industry influence in higher education: A review and a research agenda)’는 석유·가스 업계의 지원이 고등 교육에 미치는 역할에 대한 선행 연구를 검토한 메타 분석 보고서다.

보고서는 대학과 석유·가스 기업의 관계가 연구에 편견을 조성하고, 기후 완화에 대해 입증되지 않은 해결책을 지원하며, 학문의 자유를 억제한 사례를 다룬 30여 개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보고서는 지난해 진보 성향의 싱크탱크인 데이터 포 프로그래스(Data for Progress)가 발표한 보고서를 인용하며, 엑손, 셰브론, BP, 셸 등 6개의 화석 연료 회사가 2010년부터 2020년까지 미국 대학에 최소 7억달러(약 9400억원)를 기부했다고 밝혔다. 또한, 컬럼비아 대학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가스 업계의 기부를 받은 대학 에너지 센터는 재생 에너지보다 가스 연료에 대한 연구가 더 유리하지만, 가스 업계 자금에 덜 의존하는 기관은 반대의 경향을 보였다.

보고서의 공동 저자인 마이애미 대학의 기후 책임 연구소장 제프리 수프란(Geoffrey Supran)은 “지금까지 발표된 연구들은 이 문제가 매우 심각하고 중요하다는 새로운 합의를 보여주고 있다”며 석유·가스 업계와 대학의 유착에 대해 훨씬 더 진지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화석 연료 연구 자금의 이해 상충이 연구 자금에만 국한되지 않고 학술직, 장학금, 교육 기회, 채용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연구 자금에 대한 기업 기부 내역 공개해야"

보고서는 담배, 제약, 식품, 설탕, 납 등 여러 산업에서 기업 후원이 학술 연구를 어떻게 왜곡했는지에 대한 많은 연구가 발표된 것과 달리, 화석 연료 산업의 이해관계가 고등 교육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부족했다고 지적하며, 대학들이 연구 자금에 대한 기업의 기부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의 공동 저자이자 이카루스 기후연구센터의 교수인 제니 스티븐스(Jennie C. Stephens)는 “(석유·가스 기업 지원의 영향은) 단순히 연구에만 국한되지 않고 화석 연료의 미래를 지속시키는 문화도 포함된다”고 말하며, "공익을 위한 공적 자금 대(對) 기업의 사적 이익을 위한 민간 산업 자금이라는 큰 그림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4월 미국 민주당 상·하원 의원들이 발표한 다년간의 조사 보고서인 '부정, 허위 정보, 이중 말하기: 기후 변화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빅 오일의 진화하는 노력(Denial, Disinformation, and Doublespeak: Big Oil's Evolving Efforts to Avoid Accountability for Climate Change)'는 주요 석유 회사들이 신뢰도와 전략적 목표를 강화하기 위해 대학들과 파트너십을 맺은 사례들을 다뤘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국 석유기업 BP는 프린스턴, 하버드, 터프츠 대학의 연구 계획이 ‘화석 연료에 대한 지속적인 의존'이라는 BP의 전략적 우선순위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평가했다.

 

프린스턴과 케임브리지, 화석 연료 회사와의 관계를 제한하겠다고 약속

 약 1000명에 가까운 학자들이 미국과 영국 대학에 기후, 환경, 에너지 연구를 위한 산업계 자금 수령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며, ‘화석연료 없는 연구(Fossil Free Research)’가 주관한 공개서한에 서명했다. 지난 2년 동안 프린스턴과 케임브리지는 화석 연료 회사와의 관계를 제한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여름 컬럼비아 대학은 학생들의 압력에 따라 화석 연료 자금이 지원된 연구의 영향을 고려하는 위원회를 구성했다.

대학들이 화석 연료 산업과의 관계를 끊거나 분리하는 움직임은 몇 년 전 학생들이 석유·가스 주식을 포트폴리오에서 제외하라고 요구했던 투자 철회 캠페인을 상기시킨다.

학생 시절 MIT에서 투자 철회를 이끈 수프란은 "학자들과 학생들이 대학이 석유 산업과의 자금 관계를 끊으라는 요구는 투자 철회 2.0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초 270명 이상의 MIT 학생과 교수진이 새로운 정책 센터인 기후 프로젝트(Climate Project)와 화석 연료 회사의 분리를 요구하는 서한에 서명했다.

분리에 반대하는 측은 화석 연료 산업과의 관계를 끊으면 연구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기후 변화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산업을 고립시키며, 학문적 담론을 양극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6월 스탠퍼드 대학의 위원회는 "화석 연료 산업과의 분리가 학문적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며 분리에 대한 반대 의견을 밝혔다. 다만, 안전장치를 마련할 필요는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석유 협회의 대변인은 “미국 석유·가스 산업은 기후 변화 해결책을 발전시키고, 증가하는 에너지 수요를 맞추며, 계속해서 저렴하고 신뢰할 수 있는 미국 에너지에 대한 접근을 보장하기 위해 전문가 및 조직과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IMPACT ON(임팩트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