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산림전용방지법(EUDR)의 본격 시행을 앞두고, 기업의 행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보고 기준을 완화하기로 했다. 

이번 개정은 회원국, 교역국, 산업계의 의견을 반영해 마련된 것으로, 기존에는 상품별 선적마다 실사보고서를 제출해야 했지만 앞으로는 연 1회 보고로 대체해 행정 절차를 간소화한다는 방침이다. 

EU는 오는 6월경 각국의 산림 파괴 위험도를 고위험· 보통·저위험으로 분류하고, 저위험국 수입품에는 보다 완화된 규제를 적용할 예정이다. 

제시카 로스월(Jessika Roswall) EU 환경위원은 지난 16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이번 조치는 EUDR 규제의 목적을 유지하면서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 교역국과 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며 “기업들은 행정비용을 약 30%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UDR 적용 앞두고 기업 행정 절차 부담 완화 목적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EUDR은 산림 훼손 우려가 있는 품목의 EU 수입을 제한하는 규제다. 대두, 팜유, 코코아, 소고기 등 7개 주요 원자재뿐 아니라 가죽, 초콜릿, 가구, 인쇄지, 목탄 등 가공 및 완제품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법안은 2023년 6월 발효됐지만, 산업계와 주요 교역국의 반발로 인해 당초 예정됐던 2024년 12월 시행 일정은 1년 연기됐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2025년 말까지, 중소기업은 2026년 6월 말까지 유예 기간이 주어졌으며 2025년 12월 30일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팜유 수출 비중이 큰 인도네시아는 해당 법안이 “자국 경제에 큰 타격을 미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해왔다. EU 집행위도 “입법 직후 곧바로 시행을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었다”고 인정했다. 

이에 따라 EU 집행위는 규제 시행 일정을 조정하는 한편, 기업들의 준비 부담을 덜기 위해 행정 절차를 간소화하는 조치도 함께 도입했다.

 

보고 기준 연 1회로 완화… 동일 제품 재수입 시, 보고서 재활용도 가능

가장 큰 변화는 실사보고서(due diligence statement) 제출 방식이다. 기존에는 제품 선적(batch)마다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해야 했지만, 앞으로는 연 1회 보고로 대체할 수 있게 된다. 동일한 상품을 반복 수입하는 경우, 기존 보고서를 재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 보고 빈도와 서류 작성에 드는 부담을 줄였다.

특히 대기업의 경우, EU 시장에 동일 제품을 재수입할 때는 기존에 제출한 산림영향 보고서(deforestation impact statement)도 그대로 반복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공급업체로부터 받은 보고서의 참조번호만 자체 보고서에 기입하는 방식으로도 보고 요건을 충족할 수 있다.  

또한 EU는 2025년 6월 30일까지 각국을 산림 벌채 위험도에 따라 ▲고위험 ▲표준 위험 ▲저위험 국가로 분류할 예정이다. 이 분류에 따라 저위험 국가에서 수입되는 제품에는 보다 간소한 준수 요건이 적용되며, 고위험 국가로 분류된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강화된 실사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거래 국가의 위험도에 따라 실사 방식과 절차 난이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EU, "보고 기준 완화하지만 규제 목적은 유지"

이번 조치는 유럽 정치권과 산업계의 요구를 일정 부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유럽의회 내 보수 성향의 유럽국민당(European People’s Party)과 극우 정당들은 EUDR이 기업과 교역국에 과도한 부담을 지운다며 법 개정을 요구했다. 

이에 EU 집행위원회는 법 개정보다는 시행령과 가이드라인을 조정하는 방식의 간접적인 완화 조치를 택했다. 즉, 규제의 근본 취지와 체계를 유지하면서 기업들이 현실적으로 이행 가능한 수준의 유연성을 확보하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이러한 조치가 제도의 실효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보고주기, 제출방식 등 행정 절차를 간소화하면 그만큼 감시와 집행도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비영리단체 VOICE 네트워크의 대표 안토니 파운틴(Antonie Fountain)은 “이번 조치는 이는 곧 감시·감독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어, 규제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한편, 미국산림·제지협회(AF&PA)는 지난 2월 "EUDR이 미국 기업에 불필요한 비용만 안기고 있으며, 공급망 전체 추적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반발했다. 일부 단체는 미국을 ‘저위험 국가’보다 더 완화된 ‘무위험 국가(no risk)’로 지정해 달라는 요구도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U는 이를 수용하지 않고 기존 규제 목표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집행위는 “산림 보호라는 제도의 핵심 목표는 흔들림 없이 추진될 것”이라며, “법의 목적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유연성을 적용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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