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에너지 시장의 전망이 큰 폭으로 흔들리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 12일(현지시각) 발표한 ‘세계 에너지 전망(World Energy Outlook)’에서 2050년까지 석유 수요가 증가할 수 있다는 새로운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IEA가 불과 얼마 전까지 2030년 이전 화석연료 수요가 정점을 찍을 것이라는 전망을 유지해 온 만큼 이번 변화는 시장의 주목을 끌었다. CNBC는 13일(현지시각) IEA의 톤 변화로 인해 ‘피크 오일’ 논쟁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핵심은 IEA가 팬데믹 기간에 폐기했던 ‘현재 정책 시나리오(CPS)’를 다시 꺼내 든 점이다. 이미 시행 중인 정책만을 반영한 보수적 경로로, 이 경우 전 세계 석유 수요가 2050년 하루 1억1300만 배럴(2024년 대비 약 13% 증가)까지 증가할 수 있다는 분석이 IEA 보고서에 담겼다. IEA는 팬데믹과 에너지 위기를 거치며 해당 시나리오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수요 증가를 떠받치는 요인으로는 석유화학 수요 확대, 국제선 항공유 회복, 전기차(EV) 보급 둔화가 지목됐다. 특히 동아시아·동남아 지역의 석유화학 성장과 항공 수요 회복이 중요한 변수로 제시됐다.

 

IEA의 “피크 오일” 논란, OPEC·미국과 신경전 벌여와

IEA의 톤 변화에 산유국들은 반색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성명을 통해 “IEA가 에너지 현실에 기반한 분석으로 돌아왔다”며 “피크 오일이라는 잘못된 개념의 정점을 지났기를 바란다”고 환영했다. 그간 OPEC은 IEA의 조기 정점 가정이 “공포를 조장해 세계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든다”고 비판해 왔다. 미국 에너지장관도 “IEA의 기존 피크 오일 가정은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지난 12일(현지시각) ‘세계 에너지 전망(World Energy Outlook)’에서 석유 수요가 2050년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IEA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지난 12일(현지시각) ‘세계 에너지 전망(World Energy Outlook)’에서 석유 수요가 2050년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IEA

분석가들은 IEA의 변화가 단순한 정치적 영향이라기보다 ‘시장 데이터’의 축적을 반영한다고 본다. 유라시아그룹의 그레고리 브루는 “미국의 정책 변화와 EV 보급 둔화로 인해 석유 소비가 향후 계속될 것을 시사하고, 동아시아의 석유화학·항공유 수요가 늘고 있다”며 “IEA의 전환은 조만간 정점이 온다는 가정에 대한 시장의 회의론을 반영한다”고 해석했다.

 

기후 시나리오, CPS냐 STEPS냐 

IEA가 이번에 내놓은 전망은 '현재 정책 시나리오(CPS)'뿐 아니라, '명시된 정책 시나리오(STEPS)'도 있다. 명시된 정책 시나리오는 각국이 이미 공표한 목표와 정책을 반영하는 경로로, 이 경우 석유 수요는 2030년경 하루 1억200만 배럴에서 정점을 찍은 뒤 완만히 감소한다. CPS와 달리 전기차 확산 속도가 더 빠르게 가정되며, 수요 피크 타이밍과 이후 경로가 달라진다. IEA는 “여러 시나리오는 정책 선택에 따른 결과의 범위를 탐색하는 도구일 뿐 ‘예측’으로 오해해선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가스 시장 전망을 둘러싼 공방도 거세다. 미 에너지경제·금융분석연구소(IEEFA)의 그랜트 하우버는 “CPS는 미국 행정부가 현재 추세를 용인하는 일종의 ‘항복’ 시나리오처럼 보인다”며 “LNG 수요의 ‘거짓 여명’을 만들어 2035년까지 증설 명분을 제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STEPS만 봐도 같은 기간 수요-공급 균형이 빠르게 느슨해져 (화석연료) 잉여가 발생할 수 있다”며 했다. 

 

기후 목표와의 간극, 더 커졌다

IEA는 보고서에서 모든 시나리오에서 지구 평균기온이 1.5℃ 이상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과학계가 ‘최악의 기후위기’ 회피의 마지노선으로 제시한 임계값을 초과한다는 뜻이다.

석유 등 화석 연료의 지속적 소비가 극심한 기후 위기의 주요인이며, 빠른 에너지 전환 없이는 장기적으로 기후재앙을 막기 어렵다는 경고를 반복했다.

에너지리서치기관 라이스타드 에너지(Rystad Energy)의 라르스 니터 하브로는 “CPS 재도입은 톤의 변화이긴 하나, 피크 오일 논의의 대대적 ‘백트랙’으로 볼 일은 아니다”라며 “결론은 향후 정책의 실제 이행 속도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향후 피크 오일 전망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그 누구도 알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미국·중국·EU의 차량 전동화 정책과 보조금 재설계, ▲국제선 여객 수요 및 항공유 대체연료(SAF) 보급 속도, ▲석유화학 신증설(특히 아시아)과 수요 사이클, ▲가스(LNG) FID(최종투자결정)와 실제 수요 창출의 간극, ▲기후정상회담(COP) 협상 이후 국가별 온실가스감축목표(NDC) 업데이트 등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IMPACT ON(임팩트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