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11일(현지시간) 투자자 그룹으로 구성된 ‘워크포스 디스클로저 이니셔티브(WDI, Workforce Disclosure Initiative)’가 건설·원자재 부문 상장사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공급망에서 현대판 노예제도가 있는지 확인하고 시정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이니셔티브는 운용자산이 총 7조5000억 달러(8438조원)에 이르는 대형 투자기관 56곳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슈뢰더스와 애버딘스탠더드인베스트먼츠, 피델리티인터내셔널, 영국성공회 기금 등의 굵직한 투자기관이 포함되어 있다.
사실, 현대판 노예는 국제사회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기업 공급망 이슈 중 하나다. 국제노동기구(ILO)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2500만 명의 근로자가 여전히 현대판 노예로 살고 있다고 한다.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는 현대판 노예가 노동력이 값싼 신흥 시장만의 문제가 아닌 선진국 시장에서도 발견되며, 전 세계에 공급망을 가진 글로벌 기업들도 이 문제를 피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지적했다. 특히 MSCI는 자사의 ‘ESG Controversies 프레임워크’를 토대로 현대판 노예와 관련된 기업 사례 238건을 발견(지난 1월 기준)했으며, 이중 87.3%가 선진국에 기반을 둔 기업과 관련이 있었다. 특히 사례 대부분은 미국 (34.5%) 기업이 차지했으며 그 다음으로 많은 지역은 유럽연합(27.7%) 순이었다.
MSCI는 열악한 노동 기준과 제조원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국가에 공급망을 가진 기업의 현대판 노예 취약성을 평가한 결과, 열악한 국가에 생산 의존도가 높은 기업일수록 현대판 노예 논란 발생이 더 크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MSCI는 어떤 기업이 공급망의 현대판 노예 리스크를 가졌는지를 평가했다. 평가에 따르면 대형유통기업 타깃(Target)과 테스코(TESCO), 월마크(Walmart), 코스트코(Costco), 스타벅스(Starbucks) 등 다양한 공급망이 전 세계에 분포한 기업들의 현대판 노예 리스크가 매우 높으며 즉각적인 문제 발생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기업의 현대판 노예 근절을 요구하는 투자자 목소리가 보다 확산되고 있다. 영국 투자그룹 래스본즈(Rathbone)는 영국 정부가 2015년 현대판 노예 금지법을 마련하고 연 매출 3600만 파운드(555억원) 이상의 기업들에 노예제 반대 성명서를 발표할 것을 의무화했지만, 지난해 22개사가 이를 지키지 않았다고 공식적으로 지적하며 압박했다. 또한, 지난해 5조8000억 호주달러(5104조원) 규모의 24개 호주 투자자로 구성된 IAST(Investors Against Slavery and Trafficking)는 호주 증권 거래소에 상장된 100개 기업에 서신을 보내 공급망에서의 노동 학대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압박했다. WDI도 2019년 ‘찾아서 고치고 지켜라(Find it, Fix it, Prevent it)’라는 캠페인을 출범하고 노예제 근절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초반에는 호텔, 관광업에 초점을 맞춰 캠페인을 진행했지만, 현재는 산업 범위를 넓히는 중이다.
한편, 국제인권연맹(FIDH)은 현대판 노예 근절의 투자자 영향력을 인정하며, 이를 위한 투자자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FIDH는 전 세계 기업 분석을 통해 기업의 인권 정책과 실제 현행 사이에는 여전히 차이가 존재한다며, 제조업 등의 산업군에서는 현대판 노예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투자자가 기업 포트폴리오 분석 시 정책과 현행의 일관성을 평가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포트폴리오 기업이 전세계 공급망을 맵핑하고 원자재를 추적하여 이 데이터를 공개하고 있는지를 검토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더불어 투자자가 기업이 공급망 노동 실태를 제대로 파악해 발견된 리스크에 적절한 조치와 대응전략을 수립했는지도 살펴볼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기업이 노동 실사 및 리스크 대응 과정에서 시민단체 및 이해관계자들과 의미적인 관계를 맺고 근본적인 현대판 노예 근절에 개입하였는지도 살펴봐야한다고 제시한다.
FIDH의 투자자를 위한 현대판 노예 근절 가이드라인은 아래 주소에서 확인 가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