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재무보고위원회(FRC, Financial Reporting Council)는 공급망 인권실사법인 ‘현대판 노예제(Modern Slavery) 법안’의 준수 여부를 기업들이 성실하게 공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FRC는 25일(현지시각) 노예법의 규제 당국인 '반노예 커미셔너'(The Independent Anti-Slavery Commissioner)와 랭커스터(Lancaster) 대학과 함께 영국 기업 100곳의 연례보고서 표본을 분석한 연구를 발표했다.
영국에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이라면 공급망 인권 위험을 별도의 성명서로 작성해 온라인으로 공개하게끔 되어 있다. FRC는 “공시기업 중 3분의 1 정도만 내용을 명확하게 공개했다”며 공시 정보의 질을 지적했다.
현대판 노예제 방지법…위반 시 강력 처벌
사라 손튼 반노예 위원은 “현대판 노예제는 연간 약 1500억 달러(188조 원)의 비용을 발생시키는 극악무도한 범죄”라며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전 세계에 4000만 명 이상의 노예가 있으며, 그중 2500만 명이 강제 노동을 하고 있고, 4명 중 1명은 어린아이”라고 지적했다.
영국은 이 문제에 대응하고자, 현대판 노예법(Modern Slavery Act of 2015)을 제정했다. 이 법의 54조는 자산 3600만 파운드(573억 원) 이상의 기업은 운영 및 공급망에서 노예제 근절에 관한 온라인 성명을 작성하도록 요구한다.
현대판 노예제 방지법을 위반하면 개인에게는 실질적인 구금이, 기업에는 상당한 액수의 벌금이 부과된다. "기업들은 법에 따라 온라인 성명을 발표하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사업 보고서에는 제대로 담지 않고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영국의 공시법에는 기업지배구조 코드와 회사법이 있는데, 기업들은 이 법에 따라 사업보고서를 작성한다. 기업지배구조 코드는 현대판 노예제도나 인권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조항은 포함하지 않지만, 사업 성공에 관한 기회와 위험을 고려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설명해야 한다.
회사법 2006(the Companies Act)은 172조에서 임원들이 직원의 이익을 고려하고, 공급업체와의 적절한 관계를 조성하여 높은 비즈니스 행동 표준을 유지하도록 규정한다. 모든 대기업은 2019년부터 앞서 언급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전략을 별도의 보고서로 발간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인권 문제, 사업 보고서 미반영 …사업 리스크로 안 봐
하지만 FRC는 "현대판 노예제 이슈가 사업보고서에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고 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업의 52%가 현대판 노예제 이슈를 연례보고서에서 언급했다. 기업의 목표, 문화, 전략에 이 문제를 반영해서 언급한 경우는 42%에 해당한다.
노예제 방지 성과 지표를 제시한 기업은 18%, 주요 위험과 불확실성에 반영한 기업은 14%로 나타났다. 현대판 노예제가 사업에 미칠 장기적인 영향을 설명한 기업은 2%에 불과했다. 공급망 인권 리스크를 해결하는데, 이해관계자가 참여했다는 기업은 9%였는데, 세부 방안을 기재한 기업은 2%였다.
FRC는 기업이 인권을 비롯한 사회(S) 문제를 여전히 사업의 주요 위험요인으로 보지 않는다고 연구 결과를 해석했다. 기업이 정보를 공개하면서, 평판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투자자가 투명성을 요구하고, 정부가 규제를 강화하면서, 이 이슈가 실질적인 문제로 다가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FRC는 기업이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첫 단계가 정보 공개라고 말했다.
한편, 영국 국회의원들이 모인 APPG ESG는 최근, 현대판 노예제와 관련한 공시를 활성화하려면, 처벌을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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