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재판으로 불렸던 기후위기 소송에서 환경단체가 승리했다.

네덜란드 헤이그지방법원은 지난 26일 환경단체들이 세계 2위 석유회사 로얄더치쉘(이하 쉘)을 상대로 낸 기후위기 소송에서 2035년까지 30%를 감축하겠다는 쉘의 탄소 배출 감축계획이 “충분히 구체적이지 못해 앞으로 감축 의무를 위반할 수 있는 상황에 임박했다”고 지적하며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019년 대비 45% 감축하라고 명령했다. 쉘은 즉각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판결을 이끌어낸 ‘지구의 친구들(Friends of the Earth)’ 네덜란드 지부를 포함한 7개 환경단체들과 1만 7300명의 공동원고들은 2009년 쉘의 기업 정책이 파리협정 등 세계 기후 목표와 크게 상충된다며 탄소배출 감축 목표를 더 높일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금전 배상이 아닌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한 기업의 구체적인 사업방침 변경을 요구하는 소송이라는 점이 세계의 주목을 받는 가운데 지난해 12월 첫 심리가 시작된 지 6개월 만에 네덜란드 사법부는 사상 최초로 기업의 탄소감축 목표를 강제하는 판결을 내렸다. 

 

Scope3 단계 탄소배출 감축 의무까지 요구

환경단체들은 ‘기념비적 승리’, ‘역사적 전환점’이라며 이번 판결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번 소송을 지원한 로저 콕스(Roger Cox)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판사가 오염 책임이 있는 대기업에 파리기후협정을 준수하라고 처음 명령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구의 친구들 네덜란드 지부 도널드 폴스 대표는 “오늘 부로 기후소송은 전 세계 주요 대기업에 실질적 위협이 됐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로 탄소배출 비중이 높은 기업들에 대한 환경단체들의 압박과 소송은 전 세계적으로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결은 두 가지 점에서 주목된다. 첫째는 기후위기를 ‘인권’과 ‘미래세대’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이번 소송에서 환경단체들은 쉘의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과 더불어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을 보살필 ‘인권의무’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인권 문제로 접근하는 시각은, 2019년 대법에서 승소한 네덜란드 환경단체 ‘우르헨다’의 기후소송에서 비롯됐다. 우르헨다는 2013년 네덜란드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불충분하다며 소송을 냈다. 1심에서는 정부 정책의 위법성 여부가 초점이었지만 항소심부터는 인권 이슈로 전환해 결국 승소를 이끌어 냈다.

지난달 독일 헌법재판소의 ‘기후변화대응법’ 일부 위헌 결정에도 이런 관점이 드러난다. 독일 헌재는 “현 규정은 탄소 배출 감축 부담을 불가역적으로 2030년 이후로 미루고 있다”며 “이는 결국 미래 세대의 삶을 제약하고 그들의 자유를 잠재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둘째, 재판부가 “석유 채굴 과정에서 직접 배출한 탄소는 물론 소비자들이 석유·가스 등을 사용하면서 배출한 탄소까지 감축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한 점이다. 즉, 쉘이 직접 배출하는 탄소(Scope1)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이 사용과정에서 배출하는 탄소(Scope3)까지 감축의무를 적시한 것이다. ESG를 아주 잘하는 기업들도 Scope3 단계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려면 제품을 혁신하거나 고객들의 소비패턴을 바꾸는 캠페인을 진행하는 등 훨씬 강도 높은 실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탄소감축이 기업 생존과 직결

2017년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가 발간한 「Carbon Major Report」에 따르면 쉘은 1988년 이후 2015년까지 지구 온실가스 배출량의 71%를 야기했던 100대 기업 중 9위였다. 즉, 온실가스 배출 책임으로 보면 환경단체들의 소송을 당했다고 해서 억울해 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100대 기업 가운데 1위에 랭크돼 있는 중국 석탄 기업이나 2위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Aramco), 3위 러시아 가스프롬(Gasprom) 등이 환경단체나 국제기구의 압력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반면, 기후변화와 탄소중립 노력에 가장 적극적인 유럽 지역에 본사를 둔 쉘이 현재 직면한 상황은 가혹하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 9월말, 쉘은 ‘에너지 전환’을 위한 대대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2022년까지 직원 가운데 최대 9000명을 내보내고 이를 통해 25억의 달러 비용을 절감한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다음날 쉘의 주가는 25년만에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쉘이 공개한 대대적인 구조조정 계획이 역설적이게도 석유산업이 처한 심각한 어려움을 고스란이 드러낸 것이다.

쉘은 지난해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전체 매출의 90%를 차지하는 석유와 천연가스 사업의 비중을 60%로 낮추고, 재생에너지 기반 전력 사업의 비중을 30%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풍력, 태양광, 바이오연료, 수소 등 청정에너지에 연간 10~20억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다. 2018년 당시 환경단체들이 쉘에 소송을 예고하며 ‘화석연료 사업 탈피’ 요구를 했을 때 냉담하게 거절했던 것과 달리, 지난 4월에는 ‘2021년 에너지 전환 전략 (Energy Transition Strategy)’ 보고서를 통해 세부적인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 전략을 공개하기도 했다.

과거 글로벌 석유회사들이 이미지 개선이나 그린워싱을 위해 재생에너지를 선택했다면 이제는 석유 사업의 한계를 극복하고 말 그대로 기업의 ‘생존’을 위해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을 선택하고 있다.


※하인사(hindsight)님은...  

하인사님의 캐리커처
'하인사(hindsight, 필명)'는 뒤늦은 깨달음, 뒤늦은 지혜라는 뜻입니다. 기후변화, 지속가능성 모두 인류의 뒤늦은 깨달음이라는 의미이지요. 하인사님은 대기업 홍보팀에서 20년 가량 일했습니다. 회사의 지역사회 공헌활동을 기획하면서 CSR 업무와 인연을 맺게 됐으며, 회사 CSR 위원회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ESG 이슈에 대해 직접 부딪히며 고민했습니다. 2021년부터 <임팩트온>에서 【하인사의 이슈리뷰】를 매주 연재, ESG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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