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지속가능한 기업 중 하나로 알려진 스위스의 시멘트 대기업 라파르주 홀심(Lafarge-Holcim)이 인도네시아 주민들에게 기후소송을 당했다. 주민들은 홀심이 배출한 탄소가 기후위기 가속화의 원인을 제공했으며, 이에 해수면 상승과 홍수로 생계를 잃을 위험에 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풀라우파리 섬 주민 4명은 지난 30일 홀심 본사가 있는 스위스 추크에서 홀심을 상대로 기후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 중 한 명인 마스마니아 씨는 “기후위기로 우리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며 “책임자들이 이제는 조치를 취하길 바란다”고 했다.
소송을 제기한 주민들은 섬에 살고있는 1500명의 주민이 탄소 배출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해수면 상승과 홍수로 인해 생계를 잃을 위험에 처했다고 주장했다. 풀라우파리 섬은 지난해 5차례 홍수를 겪었고,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물에 잠길 위험에 처해있다. 이들을 대변하는 스위스의 기후 비영리단체 헥스(HEKS)는 지난 11년간 표면적의 11%를 상실했다고 밝혔다.
해수면 상승과 홍수는 주민들 생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원고 중 한 명은 영상 자료를 통해 홍수가 우물에 영향을 미쳤고 파파야와 바나나 나무를 훼손했으며, 수송을 위해 사용되는 오토바이에 녹이 슬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스위스 법에 명시된 경제 발전에 대한 권리를 포함한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한다.
소장에 따르면, 주민들은 홀심에게 오염에 대한 책임을 지고, 기후 피해에 대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섬에서 발생한 피해에 대해 보상금을 지급하고, 홍수 방지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개인 피해액으로 100프랑, 도덕적 피해액으로 1000프랑, 홍수 방지 대책을 위한 자금 2500프랑 등 총 3900달러(약 481만원)을 청구했다. 이는 피해액의 0.42%에 불과한 금액이다.
주민들은 2015년에도 홀심에 피해 보상을 요구한 바 있다. 2015년 홀심이 프랑스 시멘트 기업 라파르주와 합병할 당시 홀심에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 조정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조정 절차에서 홀심은 답하지 않았다. 이후 2019년 홀심은 인도네시아 현지 회사인 시멘 인도네시아에 자사의 사업장을 매각했다.
홀심이 인도네시아에서 직접 사업을 진행하고 있진 않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간접적인 피해를 미치고 있다고 봤다. 비영리 싱크탱크 기후 책임 연구소(Climate Accountability Institute)에 따르면, 1751년 홀심이 설립된 이후 대기로 배출한 탄소는 전 세계 화석연료 및 시멘트 배출량의 0.42%를 차지한다고 봤다. 피해를 미친 만큼 피해액을 산정한 것이다. 또 SBTi 승인을 받은 넷제로 계획을 밝힌 기업에게 탄소 배출량을 보다 신속하게 감축하라고 요청했다.
라파르주 홀심은 세계 지속가능발전 기업위원회(WBCSD) 멤버로, WBCSD 선정 세계에서 가장 지속가능한 기업 중 하나이기도 하다. 또 18개 주요 시멘트 생산업체가 모인 시멘트 지속가능성 이니셔티브(CSI)의 창립 멤버 중 하나다. 홀심은 2018년 대비 시멘트 1톤당 25% 탄소배출량 감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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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심은 이번 기후 소송에 대해 “기후 조치는 우리 기업의 최우선 순위”라면서도 “단일 기업에 초점을 맞춘 소송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기후 위기 문제를 해결하는 효과적인 행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스위스 기후 비영리단체 헥스의 이반 메일라드는 “홀심은 자사의 시멘트가 친환경이라고 주장하지만, 자세히 분석하면 충분한 노력을 들이지는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고 했다.
개인과 활동가들이 오염원에게 책임을 묻거나 정부와 기업이 배출량 감축에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후 소송은 최근 몇 년간 급증했다. 런던정경대학원 그랜텀 연구소에 따르면, 1986년 이후 기후소송으로 분류된 2000여 건의 소송 중 475건(23.75%)이 2020년 초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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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관련 소송은 인권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스위스 여성 그룹은 유럽 인권 재판소에 “국가가 탄소 배출량을 빠르게 감축하지 않아 폭염이 빈번해졌고, 건강에 위험을 미치고 있다”고 정부를 고소한 바 있다.
지난 2016년 페루의 농부인 사울 루시아노 리우야는 독일 에너지 기업 RWE를 상대로 기후 소송을 진행했다. 세계 10위 탄소 배출자인 RWE가 기후위기에 전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페루의 빙하호 범람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리우야 씨는 홍수 예방에 쓸 비용을 2만 유로(약 2700만원)을 요구했다. 페루의 기후 소송은 기후 파괴와 주민들의 피해 간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위해 이번 소송에서도 벤치마킹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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