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가 확산되면서 시장에 전문가를 찾는 요구가 급증하고 있다. ESG에 회의적인 기업들까지도 전문가 고용을 늘리고 있어 기업, 경영 컨설팅 회사, 로펌 등 업계 전반에서 구인난을 겪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 세계 약 5분의 1 이상의 대기업들이 탄소중립이라는 목표를 내세우면서 ESG 성과를 내야 하는데, ESG 전문 인력은 수요만큼 많지 않아 채용 경쟁에 돌입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헤드헌팅 기업인 러셀 레이놀드 어소시에이츠의 사라 갤러웨이 공동 대표는 “(ESG 전문가의) 수요가 공급을 훨씬 웃도는 상황”이라며 더 나은 보상을 앞세워 관련 분야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에서도 ESG가 화두가 되면서 지난 3월 기업들은 앞다퉈 사외이사로 ESG 전문가 모시기에 나선 바 있다. 이전엔 비인기 전공이었던 준법, 환경 전문가 모시기에 나선 것이다. 예년에 비해 환경부 출신 고위 관료들을 기업에서 '모셔가는' 경향도 두드러졌다. 최근 효성그룹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된 전 환경부 김명자 장관, 포스코 사외이사로 임명된 기후변화센터 유영숙 이사장 등이다. 삼성전자는 환경부 1급 이상 고위직 가운데 대한LPG 협회 회장으로 재임했던 홍준석 전 기획관리실장을 고문으로 영입한데 이어 이윤석 전 기조실장도 고문으로 발탁했다.
전문가를 찾는 기업은 대폭 늘었지만 공급은 한정되다 보니 한 명의 사외이사가 두 곳 이상의 기업을 겸직하는 사례도 있었다. 한국가스기술공사 신규이사로 선임된 김보영 한양대 교수는 앞서 고려아연에도 선임된 바 있으며, CJ ENM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던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 역시 삼성물산의 사외이사로 겸직 중이다.
로펌과 컨설팅 업계, 신용평가사 등에서도 ESG 전문가를 끌어오기 위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특히 지난 몇 년 사이 ESG 분야가 성장해왔던 해외와 달리, 국내에선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초반까지 갑자기 ESG가 전 재계의 화두가 되면서 'ESG 인재 수급' 불균형이 극심한 상황이다. ESG 업무를 도입한 증권회사에서는 ESG 평가 경험이 있는 S사, K기관 등에서 초기부터 몸담았던 인력에서 억대 연봉을 줘가면서 모셔가고 있는 실정이다.
익명의 관계자는 “외부에서 거액의 연봉 제의가 연달아 오면서 인력 유출의 우려가 있는 건 사실”이라며 “올해 가장 주력하고 있는 부분은 내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인력 유출을 막는 것”이라며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ESG 분야에 오래도록 몸 담은 또 다른 관계자는 “실제 기업에서 연락이 많이 오는 건 사실”이라며 “환경대학원 출신 석박사들이 줄줄이 기업의 러브콜을 받고 있기도 하다”고 귀띔했다. 다만 ESG 열풍이 불다보니 ‘자칭 ESG 전문가’ 들도 시장에 많이 나오고 있어 옥석을 가리는 게 중요하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특히 2030년까지 코스피 상장기업 전체가 지속가능보고서를 발간하도록 'ESG 의무공시'가 확대되다보니, 지속가능보고서 제작 및 컨설팅 관련한 인력도 '구인난'을 겪는다는 게 현장의 후문이다. 지속가능보고서 외주 제작을 담당하는 L대표는 "원래 공급망 ESG 평가 관련한 일을 하다가, 지속가능보고서 제작을 도와달라는 기업이 많아 새롭게 보고서 제작까지 맡아서 하고 있다"며 "지속가능보고서 제작 경험을 가진 인력이 많지 않아, 인력 수급 불균형 현상이 향후 몇 년은 계속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해외선 사모펀드에서도 전문가 모시기에 주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IPO나 M&A와 같은 빅 이벤트에선 강력한 ESG 스토리가 경쟁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헤드헌팅 기업인 러셀 레이놀드 어소시에이츠의 사라 갤러웨이 공동 대표는 “사모펀드는 주로 ESG 대표나 최고지속가능경영책임자(CSO) 등 고위직 영입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재무정보 보고, IFRS 재단이 승기 잡아...
시장 확대에 신규채용 확 늘리는 회계업계
ESG 관련 공시 등으로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에 대한 감사가 늘어날 것이란 점에서 회계법인 등은 채용인원을 확 늘리고 있다. 글로벌 회계법인 PwC는 ESG 붐을 잡기 위해 향후 5년간 글로벌 인력을 18만4000명을 추가적으로 고용해 3분의 1 이상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속가능성 문제에 대한 자문시장을 확대하고, 미국과 아시아에 ‘신뢰 리더십 연구소’를 출범하는 등 기업 ESG 수요를 잡겠다는 것이다. PwC 밥 모리츠 글로벌 회장은 “고객들이 필요로 하는 것과 세계가 필요로 하는 것에 부응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FT는 이에 대해 “빅4 회계법인에서 ESG가 가장 큰 사업영역 중 하나가 됐다는 걸 의미한다”고 평했다. 영국 5위 회계법인인 BDO의 감사 부문 대표 스콧 나이트는 “(지속가능한 경영 성과에 대해) 철저히 검토하는 투자자들이 늘어나면서 ESG 요인들과 보고가 빠른 속도로 기업들의 필수 사항이 되고 있기 때문”이고 분석하기도 했다.
특히 최근 국제회계기준을 만든 IFRS 재단이 비재무정보 공시 표준화 주도권을 잡으면서, 회계업계에서 ESG 인력 수요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자문사 알바레즈마설의 ESG 컨설팅 대표 줄리 헤르크버그는 “어떤 시점이 되면 많은 국가들에서 ESG 정보의 보고를 의무화하는 규제가 있을 것”이라며 “그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이제는 그런 상황에 대비해야 할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올해 빅4 신입 회계사 채용 예정인원은 삼정 300명·삼일 250명·안진 200명·한영 200명 등 총 950명으로, 지난해 752명(삼정 271명·삼일 221명·안진 90명·한영 170명)보다 198명(26.3%) 늘어난 인원이다.
회계업계는 국내에서 ESG가 알려지는 시점부터 타 업계보다 빠르게 사업영역을 확장해왔다. ESG 경영 자문 및 지속가능보고서 검증 업무, ESG 채권 검증 사업 등 ESG 생태계에서 영향력을 늘려가고 있다. 익명의 관계자는 “앞으로 비재무정보 기준까지 회계업계에서 주도권을 잡으면, 비재무정보 보고-지속가능보고서 작성 자문-보고서 검증으로 이어지는 독식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