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16일 인권경영 포럼을 열었다. 인권경영과 실사의무화법의 국내 현황과 과제를 논의하기 위해 학계와 실무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날 발표에선 EU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인권실사 의무화 움직임을 비롯, 국내에서 이미 이행중인 공공기관의 인권경영 의무화에 관한 개선방안, 민간기업으로의 적용 방안 등이 다양하게 논의됐다. 

 

이상철 교수

"인권 경영의 종착지는 민간 기업"

기획재정부 공공기관 상임감사 평가단장을 맡고 있는 부산대 공공정책학부 이상철 교수는 기조발제에서 인권경영과 기업 실사법에 대해 먼저 언급했다. 이 교수는 "기업실사 의무화법은 기업 전 공급망에 걸쳐 환경과 인권 침해 행위에 대한 자체 실사를 의무화하는 법"이라며 "인권경영의 종착지는 민간 기업이며, 공공 기관의 인권 경영은 시그널"이라고 설명했다. 공공기관의 인권 경영이 민간으로 확산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상철 교수는 "EU와 프랑스, 독일과 같은 유럽 국가들이 실사 의무화법을 차례로 통과시키는 움직임을 보인다"며 "국내에서는 LH 사건, 위험의 외주화 등으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인권경영과 실사법이 국내외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철 교수는 ▲국내외 공급망을 지닌 민간 대기업에도 인권경영 평가를 확산하고 ▲자율적인 인권경영 평가를 유도할 인센티브를 도입하고 ▲비계량지표도 활용하는 등 인권경영 평가를 고도화하며 ▲윤리경영, 준법경영, ESG경영 등 인권경영 평가에서의 개념과 범위를 명확히 하고 ▲중대성 평가 등 인권경영의 중요성에 따른 전략적인 접근을 하는 등의 5가지 제언을 했다. 

이상철 교수는 “LH 사건을 보면 한 직원의 일탈이 기관의 존폐를 결정할 정도로 인권평가는 공공기관 뿐만 아니라 민간기업의 생존 문제와도 밀접히 연관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실사 절차를 만들어서 인권 경영을 고도화하고, ‘중대성 평가’를 통해 먼저 해결해야 하는 인권 이슈를 찾아 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수 교수

"민간기업 인권 평가 제도화해야"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이상수 교수는 “인권경영이 글로벌 표준 규범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현재 법제도화 단계로 이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2017년부터 공공기관에서 인권경영이 자리잡고 이제는 민간으로 확산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상수 교수는 인권 경영의 확산을 위해 가장 효율적인 도구는 ‘평가’라고 했다. 이상수 교수는 현행 평가제도의 한계와 개선점을 논했다. 그는 “인권 경영은 글로벌 차원에서 합의가 이뤄진 개념으로,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2011)의 정의를 따른다”고 설명했다. 이 정의에 따르면, 기업은 인권 존중의 책임을 지고 인권 침해를 야기하거나 기여해서는 안 될뿐만 아니라, 그 범위가 공급망 전체로 확산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수 교수는 현행 평가 제도에서 보완돼야 할 점을 지적했다. 그는 "현재는 기관에서 인권 문제가 발견되면 평가에서 감점하기 때문에, 기관이 정보 공개를 하기가 쉽지 않다"며 "이 보다는 관리를 잘할 경우 보상을 줘서 평가가 인권경영 활성화에 도움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상수 교수가 제안한 인권 경영 평가지침, 출처=인권경영포럼 자료집)
(이상수 교수가 제안한 인권 경영 평가지침, 출처=인권경영포럼 자료집)

 

인권 경영 평가는 각 기관이 작성한 인권경영보고서에 따라 평가를 한다. 그는 “보고서는 꼭 들어가야 할 내용을 중심으로 힘들이지 않고 작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보고서가 인권 경영을 실행하는데 방해될 정도가 돼서는 안 된다”며 보고서에 꼭 들어가야 할 내용은 '어떤 인권 문제가 있는지'와 '어떻게 구제했는지'라고 했다.

 

송세련 교수

"인권경영과 기업 실사는 국제 동향 따라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송세련 교수는 “인권경영을 이행하기 위한 세계의 움직임이 지난 10년간 활발했다”고 말했다. 특히 인권경영 내재화를 위해서는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tional Action plan, NAP)를 잘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NAP는 인권경영 이행원칙을 확립하기 위한 도구로서, 2014년 '유엔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에서는 NAP 수립을 권고하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는 2018년 이미 제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안에 인권경영 항목을 편입해 인권 경영의 제도화와 피해 구제를 정책목표로 설정했다”고 밝히며 “공공기관에 인권 경영제도가 안착하기 위해 NAP에 3가지 사안을 포함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송세련 교수는 “인권 경영 매뉴얼의 3, 4단계에 해당하는 ‘인권침해에 대한 고충 처리’와 구제 절차 및 공시제도’가 일관돼야 하는 게 첫 번째”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그는 정부 부처 간 합의와 공시제도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하며 ‘공공 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제 11조’를 개정해 인권경영영향 평가 결과 보고서에 관한 공지사항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 교수는 “공공기관 경영평가 제도를 고쳐, 평가의 한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을 두 번째로 강조했고 세 번째로는 “제 3차 NAP에  OECD 한국 연락사무소(NCP)의 동료평가를 요청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NCP는 OECD의 규범을 각국에서 지키도록 하는 기관인데, 최근에 동료 평가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이를 참고해 한국 기업의 해외 사업 공급망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 요소에 대한 모니터링 체계를 확립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세련 교수는 “민간 기업으로 인권경영을 확산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실사를 제도화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프랑스, 독일 같은 나라들이 공급망 실사법을 차례로 통과시키면서 점차 글로벌 트렌드가 되고 있다”며 실사법 의무의 법제화가 국제적 동향임을 설명했다. 이어 송세련 교수는 “EU의 mandatory Human Rights Due diligence와 같은 법안과 OECD의 인권실사 가이드인 Due Diligence Guidance for Responsible Business’와 같은 국제 규범을 참고해 우리도 기업 인권 실사 의무를 법제화 해야 한다”고 했다.  

 

이은경 실장

기관, 기업 실무자 설문조사 결과... "구체적 가이드라인 달라"

유엔글로벌콤팩트(UNGC) 한국협회 이은경 실장은 "OECD 다국적 기업 가이드라인에서부터 ILO(국제노동기구), 유엔글로벌콤팩트,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지침(UNGPs)처럼 글로벌 가이드라인이 마련돼 왔다"며 "하지만 한국 기관과 기업 실무자 설문조사 결과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어서 어렵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밝혔다.

이은경 실장은 기관과 기업의 인권 경영 관련 실무자 250명을 대상으로 인권경영 현황과 평가 지침 및 보고서에 대한 의견을 조사했다. 이에 따르면, '운영과정에서 잠재해 있는 인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66.7%가 "예"라고 답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인권경영에 대한 항목과 배점이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69%가 "예"라고 답했다. 또 인권경영 보고를 독립적인 보고서 형식으로 인권 경영 보고하는 것을 의무화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60%가 '긍정적'으로, 40%가 '부정적'으로 응답했다. 

이은경 실장은 “실무자들은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것 ▲인권경영 범위가 너무 넓은 것 ▲보고 업무가 너무 많아서 인력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고 밝혔다. 이은경 실장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나 매뉴얼, 표준자료 및 우수사례와 성과 등을 제공해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UNGC에서 ‘기업과 인권 지침서’라는 실사 가이드라인을 발행했다며 기관과 기업 실무자들이 참고하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UNDP 최성은 전문관

"국제 인권 경영 이행 속도 빨라... 아시아, 해결 과제 있어"

유엔개발계획(UNDP) 기업과 인권 아시아 프로젝트 최성은 전문관은 “아시아를 포함한 세계의 인권 경영 이행 움직임이 굉장히 활발하다”고 말했다. “아시아는 태국, 일본 한국이 이미 NAP를 채택했으며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몽골, 미얀마, 파키스탄, 베트남 7개 국가가 초안을 작성 중이거나 NAP 개발을 약속했다”며 아시아도 인권경영 채택을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최성은 전문관은 아시아 지역에서 해결해야 할 8가지 격차와 도전과제를 언급했다. 

해당 과제는 ▲권리 보유자들을 위한 가시적 성과 부족 ▲다른 사회/인권 운동과 단절 ▲ 기업과 인권의제 진전이 필요한 아시아 지역 국가 수가 많음 ▲표면에 그친 인권 실사 ▲인권 옹호자에 대한 위협과 살해 ▲NAP 및 인권 정책과 일치하지 않는 법률 ▲코로나 19로 인한 진전 속도 저하, 중단 등이다. 

 

인권 경영과 기업 실사 토론

"어떤 문제와 분야를 봐야 하나"

기획재정부 준정부기관 경영평가단 간사를 맡고 있는 김창완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는 “인권경영이 단순히 선언에 머무르면 안 되고 내재화해서 실제 정책이나 기업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ESG경영처럼 기업과 기관이 사회적 투자 규모를 늘리고 위원회를 만들고 하는 것처럼 실제 움직임이 뒤따라야 하고 국민 눈높이에 부합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속가능연구소 소장을 겸임한 김민석 한국 준법진흥원 원장은 “기업과 기관이 인권 실사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달라고 하는데 사실은 이미 다 나와 있다. 다양한 원칙들이 있는데 ISO 26000을 실무자들이 읽어볼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ISO 26000은 국제표준화기구(ISO)가 제정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 국제 표준이다. 김민석 원장은 “ISO 26000에서 기업 실사 체크리스트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것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체크리스트에는 실사 기준 보유 여부, 전문성과 독립성, 수준, 범위, 프로세스에 무엇을 포함하고 있는지 등을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그는 “기업과 기관이 ISO 26000, UNGC와 같은 실사 가이드라인을 잘 참조해야 한다”고 했다.

글로벌 ESG 학회 간사를 맡고 있는 휴먼아시아 기업과 인권 정현찬 정책연구 팀장은 “디지털, 신기술 산업이 많아지는데 이를 관리할 인권 영향 평가는 국내에서 아직 논의되지 않고 있다”며 덴마크의 ‘인권영향평가’를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정 팀장이 말한 ‘인권영향평가’는 덴마크인권위원회(Danish institute for Human Rights, DIHR)에서 2020년 11월에 공개한 ‘디지털 활동에 관한 인권영향평가 지침 (Guidance on Human Rights Impact Assessment of Digital Activities)’을 지칭한다. 정현찬 팀장은 “신기술 분야 관련 영향평가는 ‘프라이버시 영향평가’, ‘알고리즘 영향평가’처럼 분야별로 전문화된 것이 많지만 신기술 분야 인권 문제는 어느 한 분야만 해결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종합 영향 평가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공익인권변호사 모임 희망을 만드는법과 기업과 인권네트워크 소속 김동현 변호사는 “인권경영과 기업의 실사 의무화를 법 제도로 만들기 위해서는 개념이 명확하게 정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현 변호사는 “Human Rights Due diligence(인권 실사)는 기업 법무에서 사용되어온 due diligence(실사)의 개념을 차용한 것이지만, 이 두 개념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Human Rights Due diligence는 식별-예방 및 완화-소통이라는 실사의 ‘반복 과정’을 기업의 일반적인 경영시스템에 포함하는 것인데, 기업 실사는 특정 사안의 위험을 파악하기 위해 수행되는 ‘일회성’ 실사를 의미한다”며 두 개념 간 차이를 밝혔다. 김 변호사는 “법제화를 위해서는 명확한 개념 합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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