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지배구조연구소는 30일 ‘독일의 공급망 실사법 제정과 대응방안’ 보고서에서 우리 기업과 정부가 유럽발 실사법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제안했다.  

유럽에서는 영국의 현대 노예법(2015), 프랑스의 실사 의무법(2017), 네덜란드의 노동 실사법(2019)에 이어 강력한 제재를 포함한 독일의 공급망 실사법이 제정됐다. EU도 공급망 실사 통합법을 준비 중이다. 

EU에 진출했거나 교역하고 있는 기업은 공급망 실사법에 영향을 받는다.

 

글로벌 공급망 실사법 트렌드

국제기구 원칙과 지침이 각국 의무화법으로...

2021년 6월 독일의 공급망 실사법(‘공급망에서의 인권 침해 방지를 위한 기업 실사에 관한 법률’)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인권 보호 상태 개선을 목적으로 2023년 1월 시행된다.

공급망 실사법 논의는 UN과 OECD 같은 국제기구 차원에서 2010년부터 논의 돼 왔고,  EU는 통합된 실사법을 준비 중이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2011년에 ‘유엔 기업과 인권에 관한 이행원칙(UN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 UNGPs’)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 원칙에 글로벌 공급망에서 인권을 보호할 국가의 의무와 기업의 책임이 정의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976년 합의한 다국적 기업 가이드라인(Guidelines for Multinational Enterprises)’를 2011년에 개정해 ‘인권’장을 추가했다. 이어서 ‘분쟁지역에서의 책임 있는 광물 공급망을 위한 실사 지침(Due Diligence Guidance for Responsible Supply Chains of Minerals), 2018년에는 ‘책임 있는 기업 행동을 위한 OECD 실사 지침(OECD Due Diligence Guidance for Responsible Business Conduct)’를 발표했다.

지난 7월 EU는 기업 공급망 상의 인권침해 및 강제노동 위험성 평가 가이드라인을 발간했다. 이 가이드라인은 OECD의 실사 프레임워크를 토대로 실사 수행 6단계 프로세스도 제시했다. 

국제기구에서 발표한 실사법은 법적 구속력과 강제성이 없었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논의를 바탕으로 국가마다 실사법을 입법하고 발효하기 시작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공급망 투명성 법률’, 영국은 ‘현대 노예법’, 프랑스는 ‘실사 의무법’, 네덜란드는 ‘아동 노동 실사법’, 노르웨이는 ‘투명성 법률’을 입법, 발효해 실사법에 강제성을 부여했다. 

 

NAP로 시작한 독일 공급망 실사법

강력한 규제와 상세한 이행사항 담았다

각국의 공급망 실사법 중 강력한 규제와 이행을 위한 세부내용이 상세한, 독일의 공급망 실사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업이 이 법을 위반하면 매출액 기준에 따라 벌금이 부과되고, 심각한 의무 위반이 확인된 기업은 최대 3년간 공적 조달 사업에서 제외되는 행정 제재를 받을 수 있다. 국가사업에서 3년 동안 제외되는 것은, 특히 국가사업 의지가 높은 산업군, 혹은 화석연료 기업 등 에너지 전환이 필요한 산업군에 특히 치명적일 수 있다. 

 독일의 공급망 실사법은 지난 3월 독일 정부의 승인을 받고, 6월 독일 국회를 통과했다. 국회에서 찬성 412표, 반대 159표, 기권 59표로 채택됐다. 메르켈 총리를 필두로 보수당인 기독교민주연합에서 강력한 기업 규제를 포함한 법이 통과된 것은 10년 정도 실사법 논의와 기반이 마련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독일은 2011년 UNGPs를 채택하고 이를 이행하기 위해 ‘기업과 인권을 위한 국가행동계획(National Action Plan,NAP)을 도입했다. NAP는 UNGPs처럼 기업이 자발적으로 공급망 실사를 하도록 유도하지만, 2018년 3월 독일 주요 정당들은 NAP 이행 정도를 조사하고, 목표 달성이 어렵다고 판단될 때 구속력 있는 법적 규제를 하겠다고 합의했다.

2019년과 2020년에 NAP 이행률을 두 차례 조사한 결과 이행률이 낮아서, 자연스럽게 공급망 실사법 제정 절차가 시행됐고 6월에 발효됐다.

독일의 공급망 실사법에 따라 기업은 ▲ 위험 관리 ▲ 위험 분석 ▲ 정책 성명 및 예방 조치 ▲ 시정조치 ▲ 문서화 및 보고 의무를 갖는다. 평가 대상은 자체 사업영역, 직접 공급업체, 간접 공급업체로 나눠 이행사항이 다르다.

자체 사업영역은 문제 발생시 즉시 시정하고, 직접 공급업체는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우면 최소화 및 방지를 위한 구체적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간접 공급업체는 해당 기업이 간접 공급업체의 위반 가능성을 인지한 경우에만 의무를 적용하게 돼 있다.

실사법 적용 대상은 독일에 본사, 주요 지사, 관리 또는 법정 소재지가 위치하며, 해외 파견 직원을 포함해 독일에서 3000명 이상을 고용한 기업이다.이는 2023년에 적용되고 2024년에는 대상이 1000명 이상 고용 기업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국내기업은 실사 내부 프로세스, 정부는 입법 필요

관건은 속도다

대신지배구조연구소는 유럽 전역에 10000명 이상 종사자를 보유한 삼성전자, 현대차 등 글로벌 기업은 독일 공급망 실사법이 규정하는 실사 수행 주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대신연은 특히 2024년에 법 적용 대상이 약 4배 증가하기 때문에, 중대형 규모 기업도 실사법 대응 준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공급망 실사법 적용 대상 기업의 협력사인 중견・중소기업도 직접, 간접 공급업체로 연관되기 때문에 준비가 필요하다는 게 대신연의 설명이다. 대신연은 법에서 제시한 인권 관련 의무 사항 이행 전략을 수립하고 내부 점검 프로세스를 완비해야 한다고 말했다.특히 공급망 실사법 준수 체크리스트와 같은 방법을 차용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대신연은 독일뿐만 아니라 실사법을 시행하는 다른 국가 또는 통일 법안을 준비한다고 발표한 EU를 고려해, 적용 대상 기업이 확대될 것이므로 국내 기업의 대응 준비가 시급할 것으로 전망했다.

대신연은 유럽을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 실사 법안이 제정 및 이행되고 있고 전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다고 봤다. 우리나라도 실사법 입안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대신연은 강조했다. 대신연은 우리나라는 지난 4월 국제노동기구(ILO) 3개 핵심협약에 추가로 가입하는 등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노동권 및 인권 보장을 달성하고자 노력하고 있는데, 글로벌 시류에 맞추기 위해서는 더욱 더 적극적인 행동이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한국도 인권실사 입법 관련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8년 제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안에 인권경영 항목을 편입해서 인권 경영의 제도화와 피해 구제를 정책 목표로 세운 바 있다. 제3차 NAP는 2022년에 종료되기 때문에 제4차 NAP에 실사 관련 내용이 추가될지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6월 30일 법제처는 인권위와 ‘인권정책기본법 제정법률’ 입법예고를 했다. 법제처는 입법예고에서 NAP 이행이 미비해 이를 해소하겠다며, 독일 공급망 실사법 입법 배경과 유사한 제정 이유를 밝히고 있다. 법안 제21조에서 23조에는 기업의 인권존중책임 규정 도입을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 단체는 기업의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정책 등을 마련하고 인권존중책임 실천을 장려해야 한다. 기업은 인권존중책임을 실천해야 하고, 기업활동으로 인한 인권침해 피해자에 대한 권리구제 수단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부는 기업의 인권존중 증진을 위한 지침과 정보공개 표준 등 마련에 있어 국가인권위원회에 의견 및 협력을 요청할 수 있다고 인권정책기본법은 밝히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처럼 인권실사 관련 입법 움직임이 보인다. 대신연이 지적한 대로, 문제는 얼마나 빠르게 글로벌 입법 시류에 대응하느냐인 것으로 보인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IMPACT ON(임팩트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