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 국제기구 '월드 벤치마킹 얼라이언스'(WBA, World Benchmarking Alliance)는 "전 세계 정유사들이 탄소 예산을 2037년 이내 모두 소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WBA는 CDP(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와 ADEME(프랑스 환경 에너지 관리청)와 협력해 저탄소전환 평가(ACT, Assessing low Carbon Transmission) 방법론을 통해 100곳의 석유 및 가스 기업들의 탄소 감축 노력을 평가했다. 지구 온도를 1.5도 낮추겠다는 파리 협정 목표 성과를 바탕으로 기업에 개별 등급을 매겼다. 2050년까지 순배출량 제로(Net Zero) 시나리오와 석유ㆍ가스 기업을 평가한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전 세계 민간, 국영 및 상장 석유기업이 평가대상에 포함됐다. 이들 기업들은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석유ㆍ가스 생산량을 늘렸으며, 산업과 인간 활동을 위해 필요한 전체 탄소 예산의 약 80%를 차지할 정도였다. BP, 쉐브론, 코노코필립스, 에니, 엑손모빌, 쉘, 토탈에너지 등 7개 석유 대표 기업이 13%를 차지한다.
WBA는 기업들이 탄소 예산을 2037년까지 모두 소비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19년부터 2050년까지 탄소 감축을 위해 필요한 탄소 예산을 추정했다. 하지만 기업들이 앞으로 석유 생산 속도를 조정하지 않으면 이 예산은 15년 이내 소모될 예정이다.
WBA는 "현 상황으로는 파리협정 목표를 달성할 수 없을 뿐더러 100개 기업 모두 석유 탐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사를 중단하기로 한 기업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WBA는 석유 기업의 데이터 공시 문제도 지적했다. 대부분의 기업은 직접 배출량에 해당하는 스코프(Scope) 1, 2 배출 데이터만 주로 공시하고, 공급망 협력업체들까지 포함하는 Scope3는 공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갤프, 렙솔, 에퀴노르 등 3분의 1만 배출권 정보를 공개한다. 엑손모빌(ExxonMobil)의 2019년 스코프3은 캐나다 전체보다 높았으며, 사우디 아람코의 스코프 1-3 배출량은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의 총 배출량보다 많았다.
기업들은 넷제로 전환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신기술'을 석유산업의 미래로 꼽았지만 아직 연구개발을 실천한 기업은 드물었다. 평가 대상기업의 절반 이상이 R&D 지출을 공시했지만 2019년 저탄소 기술에 대한 투자를 공시한 기업들은 17개사에 불과하다. 2024년까지 저탄소 투자 계획을 밝힌 기업들은 훨씬 더 적었다.
WBA의 탈탄산화 및 에너지 전환 리드 담당자인 비키 신(Vicky Sins)은 "모든 기업, 정책 입안자 및 투자자는 탈탄소화와 에너지 전환 목표에 우선 순위를 정해야 하지만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며 "석유 및 가스 기업은 새로운 에너지 생산 시대로 전환하는 기로에 서 있지만 저탄소 투자 등 시급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넷제로 전환 노력을 위한 상위 10위 기업들은 에니(Eni), BP, 토탈(Total), 에퀴노르(Equinor), 쉘(Shell) 등 유럽 기업이 대다수였다. 지속가능한 연료소재를 보유한 네스테가 1위를 차지했으며, 프랑스 시설 기업 엔지(Engie)가 2위를 차지했다. 엔지는 배출 목표를 세워 연간 최대 4GW의 재생에너지를 추가할 예정이다.
CDP의 니콜레트 바틀렛(Nicolette Bartlett) 전무이사는 연구 결과에 대해 "지구 온난화를 1.5로 제한하기 위해 전 세계 석유 및 가스 산업의 성과는 아직 미흡하다"며 "기업들은 기후 목표 달성을 위한 데이터를 공개하고 기후 공약 실천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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