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한 여성 인재가 능력을 충분히 발휘해 차세대 리더로 성장하고,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조직문화를 함께 만들어 갑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최근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고 있는 여성 임직원들을 만났다. 이 부회장은 “유능한 여성 인재가 능력을 충분히 발휘해 차세대 리더로 성장하고,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조직문화를 함께 만들어 가자”며 여성 인재 확보와 육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부회장이 방문 배경에는 '젠더(Gender) 정책'을 고민하는 국내 기업들의 움직임과 궤를 같이 한다. 현재 국내 기업들은 여성이사를 구하느라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올초 개정된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이제 국내에서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인 상장법인은 이사회 이사 전원을 특정 성(性)으로 구성해선 안 된다. 개정안은 2년 간의 유예기간을 둬서 2022년 8월 시행할 예정이지만, ESG 평가사 등에서 여성이사 비율 정보를 요구하고 있어 기업들은 다급해졌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올해 신규로 여성 등기임원을 선입한 기업은 총 18곳이다. 구체적으로 △한진중공업 △미래에셋생명 △대상 △삼성에스디에스 △엔씨소프트 △삼성바이오로직스 △아모레퍼시픽그룹 △미래에셋대우 △포스코인터내셔널 △삼성SDI △세아베스틸 △삼성중공업 △대한항공 △삼성물산 △SK하이닉스 △KT △한화솔루션 △신한금융지주 등이다.
삼성전자 국내 여성 임원 비율 5.16%
삼성전자의 상황은 어떨까. 삼성전자가 펴낸 올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보면 의문을 짓게 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삼성전자 한국 본사 임직원 가운데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24.9%. 이는 전세계 삼성전자 법인을 모두 합한 글로벌 삼성전자의 여성 임직원 비중인 40.2%를 크게 하회했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 북미·중남미, 유럽, 동남아·서남아·일본, 아프리카, 중동 등 7개 권역 중에서 한국본사보다 여성인력 비중이 낮은 지역은 중동(14.0%) 권역이 유일했다. 동남아·서남아·일본 지역이 56.3%로 가장 높았고, 아프리카가 37.7%, 유럽 등 나머지 권역들은 35%였다.
여성 임원 비중도 글로벌 삼성전자의 평균을 밑돈다.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사외이사를 포함한 삼성전자 한국본사 임원 1065명 가운데 여성임원은 55명으로 5.16%만을 차지했다. 글로벌 삼성전자의 여성 임원 비중은 6.53%. 한국본사의 유리천장은 견고했다.CEO스코어의 조사 결과, 국내 20대그룹 중에서 지난해 삼성전자의 여성 임원 수는 55명으로 가장 많지만 여성 임원 비중은 CJ제일제당(17.3%), 신세계(15.8%), 롯데쇼핑(9.3%)보다 낮은 수준으로 밝혀졌다.
대신지배구조연구소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최근 ESG평가 등급 중 사회(S)영역은 3년간 B등급 이하를 기록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신지배구조연구소는 “삼성전자의 다양성 및 양성 평등 관련 점수는 전체 평균 업종 내 평균보다 살짝 높지만,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국내 기업 인식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
한국의 여성 사회진출의 벽이 타 국가보다 높다는 것은 몇몇 지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이하 WEF)은 매년 국가별 성별 격차를 조사해 성별격차지수(Gender Gap Index, GGI)를 공개한다. 0에 가까울수록 성별격차가 크다는 뜻인데, 2018년 기준 한국의 GGI 지수는 0.672로 전체 153개국 중 108위를 기록했다. 특히 한국은 GGI가 시작된 2006년보다 성별 격차가 더 악화됐다. 2006년 GGI 지수 0.616에서 2018년 0.672로 소폭 개선됐으나, 세계 순위는 92위에서 108위로 떨어졌다는 지점에서 타 국가의 성별 격차는 완화되고 있는 반면, 한국의 여전히 성별 격차 개선 노력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기업들의 노력도 미진하다. 블룸버그는 매년 성평등 증진에 기여한 기업을 선정, 자체적으로 성평등지수(Gender Equality Index, GEI)를 발표하고 있다. 올해 325개 기업이 편입되었지만, 한국에선 KB금융 단 한곳만이 선정됐다.
기업의 성평등 달성을 지지하는 글로벌 대표 이니셔티브인 여성역량강화원칙(Women's Empowerment Principles, WEPs)에 서명한 기업은 2020년 현재 기준으로 3444개지만, 한국 기업은 아모레퍼시픽, KB금융그룹, 풀무원, 유한킴벌리 등 27곳밖에 없었다. 한국 가입률은 중국(94개사), 베트남(46개사), 파키스탄(67개사)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유럽연합은 각 회원국에 대해 기업 내 여성이사 할당 비율을 3~40%로 늘이라는 요구를 하기도 했으며,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상장회사라면 여성이사를 필수적으로 두도록 법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