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토양, 지역사회 솔루션을 모두 고려한 종합 모델 만들 것

몽골의 사막이 숲으로 바뀌었다. 비영리 환경단체 (사)푸른아시아가 20년 동안 한 일이다. 온실가스는 나무가 아니라 토양에 대부분 저장된다. 나무는 탄소를 땅에 쌓아두고 가두는 '‘탄소뱅크’다. 특히 사막에 나무를 심으면 땅이 비옥해지고 탄소를 더 많이 격리시킨다. 푸른아시아가 시작한 ‘10억 그루 탄소뱅크’ 캠페인은 탄소흡수원으로서의 나무와 토양을 다시 보기 위한 캠페인이다. 임팩트온은 푸른아시아의 캠페인을 시리즈로 짚어볼 계획이다./ 편집자 주

애플이 지난달 25일(현지시각) 2030년까지 협력업체 공정에서 RE100을 달성하고 전체 탄소 배출량의 75%를 감축하는 전략을 발표했다. 팀 쿡 애플 CEO는 “기후변화 대응은 애플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이며, 지금이야말로 현재까지 발표해 온 약속을 행동으로 보여줄 때”라고 말했다.

오기출 푸른아시아 상임이사는 <임팩트온>과의 인터뷰에서 “국내 언론은 애플의 발표에서 청정에너지 전략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이들의 전략에는 에너지만 있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오 상임이사는 “애플은 땅을 살려 온실가스 흡수원을 확보하는 것과 공동체가 주도하는 기후 대응 전략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애플이 발표한 이 지속가능성 모델은 푸른아시아가 20년간 만들어온 모델과 같다”고 말했다.

오기출 푸른아시아 상임이사./푸른아시아 제공

Q. 푸른아시아는 토양의 탄소 흡수원을 마련하는 나무 심기 캠페인을 주도한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해야 할 텐데, 이와 관련해 주시하는 기업의 최근 행보가 있나.

애플이 최근 발표한 공급망 탈탄소화 전략을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애플은 200개 이상의 협력업체에 RE100을 달성하도록 요구하고 관련 지원을 제공하는 상황이다. 주의 깊게 살필 점은 애플의 전략이 단순히 청정에너지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플은 조림 사업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자연 기반 솔루션과 지역사회가 주도하는 기후 솔루션을 채택하겠다는 점을 함께 발표했다.

Q. 애플이 발표한 자연 기반 솔루션과 지역사회 주도 솔루션은 어떤 내용인가.

애플은 복원 기금이라는 탄소 제거 이니셔티브를 통해 세 건의 신규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애플은 국제보호협회(CI), 골드만삭스와 손 잡고 15만 에이커 규모의 지속가능성 인증을 받은 산림을 복원했고, 약 10만 에이커 규모의 자생림과 초원, 습지를 보호하기 위해 브라질과 파라과이의 산림 관리자 세 명에게 투자해왔다고 설명했다. 이 프로젝트는 2025년에 대기에서 100만미터톤(mT)의 이산화탄소를 제거할 것으로 예상한다. 애플은 2030년까지 75%를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는데, 나머지 25%를 자연 기반 솔루션에 의존하겠다고 했다.

지역사회 주도 기후 솔루션은 세계자연기금(WWF)과 함께 나미비아와 짐바브웨에서 ‘클라이밋 크라우드(Climate Crowd)’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애플이 지역사회와 협력하여 재생 가능 농법을 도입하고 천연자원을 고갈시키지 않으면서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겠다는 게 골자다. 중국에서는 중국녹색탄휘기금회와 함께 자연 기반 탄소 흡수원을 확보한다. 탄소 흡수원으로 적당한 지역을 탐색하고 산림 관리를 위한 모범 사례 발굴 및 지침을 개발하는 것이다. 2년간 체인지메이커와 사회 혁신가 그룹도 지원할 계획이다.

Q. 애플의 기후 행동 전략은 어떤 의미가 있나. 

애플이 탄소 흡수원과 지역사회 협력 솔루션을 강조함에 따라, 이것이 글로벌 표준이 될 것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미국은 공급망을 건드려서 탈탄소화를 이루겠다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기후변화 대응 규제를 담고 있는데, 공급망 생산 공장을 자국 내로 끌어들여서 해당 규제를 적용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미국은 IRA를 통해 3690억달러(약 505조원)를 에너지 안보와 기후 부문에 사용한다. 재생에너지에는 1800억달러(약 246조원)를 투자하고, 3분의 1인 600억달러(약 82조원)를 커뮤니티에 지원한다. 미국 정부가 재생에너지를 지역사회 커뮤니티를 통해 접근하겠다는 의미다. IRA 적용 대상인 기업들은 이런 흐름으로 탈탄소화 전략을 짜게 된다. 

애플은 기업단에서 이러한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다. 애플은 선구자 동맹(First Movers coalition)이라는 이니셔티브를 통해 자사의 탈탄소 전략을 공급망 전체에 확산·압박하는 방식을 취한다. 선구자 동맹은 미국, 인도, 일본 등의 정부와 자산가치가 8.5조달러(약 1경원)에 달하는 글로벌 대기업 50여 곳이 참여하는 이니셔티브이다. 애플이 탄소 흡수원과 지역사회 협력 솔루션을 들고나온 것은 선구자 동맹의 멤버와 그들의 공급망도 이 탈탄소화 전략을 채택할 가능성이 거의 확실시된다는 것을 뜻한다. 구글, BMW, 테슬라도 이런 방식을 채택할 것으로 예상된다.

Q. 국내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이 있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지난 5월 발간한 ‘한미 정상회담 주요 논의 내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미국에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직접 투자를 약속한 규모가 450억달러(약 56조원)이다. 미국은 한국에 2억2800만달러(약 28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이 200배 더 많이 투자하는 것이다. 지나 레이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은 우리나라 중소기업도 대기업과 함께 미국으로 진출하도록 요청했다. 국내 전기차 배터리 대기업들은 이미 해외로 생산 공장을 옮기고 있다. IRA에 영향을 받는 한국 기업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존 케리 미국 대통령 기후특사는 지난 5월 세계경제포럼(WEF)에서 특사로 참석한 나경원 전 의원과 면담을 하며, 국제사회의 기후 대응과 청정기술을 선도하는 선구자 동맹에 한국도 합류하라고 요청했다. 우리나라도 곧 선구자 동맹에 가입할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게 되면 토양과 지역사회 참여 솔루션을 반영한 탈탄소화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Q. 지역 차원의 접근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재생에너지 전략이 토양 오염과 지역사회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재생에너지 시설을 짓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토양의 탄소 흡수원이 파괴되면 탄소중립 목표에서 멀어질 수 있고, 지역사회의 일자리 감소 등 생활권에 피해가 발생한다면 지역사회는 재생에너지 발전 시설이 들어오는 걸 반대할 것이다. 애플이 말한 청정에너지, 탄소 흡수원, 지역사회라는 세 가지 요소는 함께 가야 한다.

지역사회 커뮤니티에 녹색 공동체를 만들지 않고서는 청정에너지를 생산하기 어렵다. 녹색 공동체는 지역사회의 이익과 필요를 잘 이해해야 한다. 기업이 단편적으로 접근해서는 주민 참여를 얻어내기 어렵다. 워킹그룹이 있어야 한다. 기업은 지역 커뮤니티 구성원, 현장 전문가가 포함된 NGO와 함께 워킹그룹을 구성하고 소통해야 한다. 

어부가 반대하면 풍력 발전시설은 들어가지 못하고, 농부가 반대하면 태양광 패널을 설치할 수 없다. 반대로 현장 전문가 조언 없이 지역사회 자율에 맡기고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정책도 효율성이 떨어진다. 지역과 기업이 모두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지속가능성 정책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푸른아시아도 20년 이상 실패를 통해 많은 고민을 해왔다.

Q. 푸른아시아는 오랜 기간 탄소 흡수원을 마련하는 자연 기반 솔루션을 실행해왔다. 지역 차원으로 접근하는 활동이 있나.

푸른아시아는 ‘토양(Land) 30, 해양(Ocean) 30, 기후 친구 30’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Land 30과 Ocean 30은 토양과 해양을 통해 온실가스를 30% 줄이자는 의미이다. 기후 친구 30은 기후와 관련된 교육을 제공하고 지역사회가 함께하도록 독려하여 온실가스를 30% 줄이겠다는 캠페인이다. 기후 교육기관은 강원도 지역에서 먼저 시작할 계획이다.

푸른아시아는 남해군을 기후 행동 일번지로 만들려고 한다. 남해가 지역사회 온실가스 감축 모델의 첫 사례가 되는 것이다. 이 모델이 완성되면, 다른 지역에서도 참고하여 커뮤니티 기반의 기후 솔루션을 만들 수 있다. 

Q. 남해군을 선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커뮤니티 기반 기후 솔루션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 궁금하다.

남해는 인구가 4만7000명 정도이고, 공동체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서 관심을 두게 됐다. 푸른아시아는 지난 9월 19일 열린 해군 기후위기대응 군민토론회에서, 남해기후위기군민행동을 포함한 지역 공동체들과 ‘범군민 기후행동위원회’를 만들어 남해를 기후행동 일번지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현재는 지역에서 협동조합을 만드는 등 모델을 주도할 공동체를 형성하는 단계이다. 

Q. 국내에는 이런 지역사회 기반 모델이 없나.

미국 뉴욕주나 클리브랜드주에서 지역 기반 모델이 진행되고 있다. 앞서 말했듯, 미국을 포함한 해외에서는 지역 기반 모델들이 만들어져서 실험되고 있다. 국내에는 이와 같은 시도가 많지 않다.

한 사례로, 안산시 시민참여형 태양광발전사업을 들 수 있다. 시민들은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을 설립해서, 민주적인 직접 참여 방식으로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짓고 전기를 팔아 수익을 배당하는 모델을 만들었다. 이 협동조합은 지역 유휴지나 건물 영농형 태양광, 도로에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하는 실무와 행정 처리를 담당한다. 현재는 자산을 축적해서 시민 배당과 상생협력대출을 할 수 있는 규모로 성장했다. 안산시는 시민참여형 에너지 협동조합을 전국 단위로 확산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Q. 남해의 기후 행동 모델이 이전 사례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남해군은 에너지만 고려한 기후 행동 모델을 실행하려는 게 아니다. 애플의 전략처럼 에너지, 토양, 지역사회 솔루션을 모두 고려한 종합 모델을 만들려고 한다. 푸른아시아는 20년간 공동체를 통해 기후 문제에 접근해왔다. 우리는 몽골에서 나무를 심어 토양을 살리고 이를 통해 탄소 흡수원을 마련함과 동시에 지역사회에 일자리를 제공하여, 인간과 자연 생태계를 함께 살린 경험이 있다. 이 역시 지역사회 공동체에 접근하여 주민들과 함께 일궈낸 결과다.

푸른아시아는 국내에 이런 종합 기후 행동 모델을 남해군에서 실현하고, GHG프로토콜의 LSRG 인증도 받을 계획이다. 남해군이 지역 기반 모델의 표준이 될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 푸른아시아가 LSRG 테스트 기관인 만큼, 남해 모델에는 글로벌 가이드라인인 GHG프로토콜의 요건을 더 잘 반영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IMPACT ON(임팩트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