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5년부터 내연기관 신차 판매 금지 법안을 시행하려던 유럽연합(EU)의 계획이 좌초될 위기다. 자동차 강국 독일과 이탈리아 등 반(反)연합군이 가세하면서다. EU 이사회 순환의장국인 스웨덴은 7일로 예정된 법안 투표를 무기한 연기했다. 3자 협상에서 도출된 최종 타협안이 부결되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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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언론 유랙티브에 따르면 지난 3일 EU 이사회 순환의장국인 스웨덴의 다니엘 홀름베리 대변인은 트위터를 통해 “7일로 예정됐던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 중단 법안과 관련한 투표를 연기한다”면서 “적절한 시기에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시기를 명확히 공지하지 않으면서, 무기한 연기한 셈이다.

EU 이사회와 유럽의회, EU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10월 3차 협상을 통해 2035년부터 27개 회원국에서 판매되는 모든 신차의 탄소 배출량을 100% 감축하는 법안에 합의했다. 내연기관차 퇴출을 계획한 것이다.

문제는 EU 이사회에서 불거졌다. 자동차 강국인 독일과 이탈리아가 갑자기 반대 의사를 표시하면서다. 통상 새 법안이 시행되기 위해선 3자 협상 타결 후 EU 이사회와 유럽의회의 최종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독일과 이탈리아 등 내연기관차 퇴출 반대 연합군들이 줄줄이 반대·기권 의사를 표시하면서 표결에 난항을 겪게 됐다. 

독일·이탈리아는 합성연료(e-fuel)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차에는 예외조항을 둬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물을 전기 분해해 얻은 수소를 탄소와 혼합해 제조한 연료인 합성연료는 탄소 감축 효과가 있다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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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볼커 비싱 교통부 장관은 “EU 집행위가 합성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 신차 판매에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3자 협상 결과를 승인하는 표결에 기권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그동안 EU의 내연기관차 퇴출에 강한 반감을 표했던 이탈리아 또한 표결 연기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탈리아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인프라 교통부 장관은 일찍이 “내연기관 신차 판매 금지는 전기차 시장을 선점한 중국 자동차 회사에 선물을 안겨주는 꼴이며 유럽의 자살행위와 다름없다”며 반대를 주장한 바 있다.

이탈리아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이탈리아 정부는 생산과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피하려면,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전환을 신중히 계획해야 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했다. 이탈리아는 이번 법안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독일, 프랑스와 연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독일과 이탈리아를 필두로 폴란드, 불가리아, 체코 등도 법안 시행에 반대하면서, 법안이 아예 좌초될 위기에 놓이자 의장국인 스웨덴은 표결을 무기한 연기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탈국이 증가하면서, 의결 정족수 미달로 법안 표결이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EU 이사회에서 법안이 최종 통과되려면 27개 회원국 중 55%에 달하는 15개국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유럽의회 내부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AP 통신에 따르면 유럽의회 최대 정당인 우파 성향 유럽국민당(EPP)은 해당 법안이 혁신을 막고 수천개 일자리를 없애 유럽의 중추인 자동차산업의 쇠락을 초래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EPP도 합성연료 사용 내연기관차를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체코의 보수정당인 시민민주당 소속 알렉산드르 본드라 유럽의회 의원은 현지언론 유랙티브에 ‘왜 내연기관 신차 판매 금지가 잘못된 법안인가’라는 기명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다. 본드라 의원은 “물론 전기차로의 전환은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본말이 전도돼 무모하게 집행되지 않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법안이 통과되면 EU 소비자와 EU 전체에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본드라 의원은 ▲리튬 가격 인상으로 전기차 가격 상승 ▲충분하지 못한 전기 그리드 ▲전기차 배터리 필수품인 코발트와 리튬으로 촉발되는 자원전쟁 ▲탄소중립 사회로의 급격한 전환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를 들며 신차 판매 금지 법안에 반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3자 협상에서 도출된 최종 타협안이 EU 이사회에서 부결되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라고 업계는 지적하고 있다. 다만 EU 폰 데어 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집행위는 기술적 개방성 원칙을 지지하지만, 모든 회원국이 합의한 기후정책 목표와 균형이 필요하다”며 다소 모호한 입장을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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