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또 한 번 현대자동차의 전기차 ‘코나EV’가 불에 탔다. 대대적으로 코나EV 폭발 사고가 보도된 데는 미흡한 사고 대처나 번번한 사고로 ‘흉기차’라는 오명을 얻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전기차·수소차로 ‘포스트 코로나’ 산업을 이끌어가며 꾸준한 주가상승을 보여 왔기 때문에 그 관심이 더 커진 것이다. ‘코나EV’ 화재가 이전의 리콜 사태보다 현대자동차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아본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새로운 먹거리 ‘전기차’
탄소규제가 ‘천지개벽’ 일으킨 유일한 시장
탄소국경세, 온실가스 배출 감소, 은행권의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 위협 등 기후변화로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다양하게 나오고 있지만 자동차 업계만큼 그 영향이 크게 미치는 업계는 없었다. 코로나19의 대유행 이후 전기차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면서 자동차 업계는 타 업종에 비해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빠르게 찾을 수 있었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유럽 대륙 전기차 판매량을 전년과 비교해보면, 올해 4~5월을 제외한 나머지 달에서 전년 대비 2배 가까운 판매량 상승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7월의 경우 지난해에 비해 3배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서유럽 승용차 시장과 비교하면 전기차 시장의 확장세를 확인할 수 있다. 동유럽을 제외한 유럽연합(EU) 14개 가입국, 유럽연합과 FTA 존을 구성하고 있는 3개 국가(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위스), 최근에 유럽연합을 탈퇴한 영국 등을 합한 18개 국가를 '서유럽'으로 묶었다.
올해 3~5월 판매량은 전년 대비 폭락했다. 반면 전기차의 경우 4~5월, 전년과 비슷하게 판매됐다. 전기차 판매량이 전년 대비 2~3배가 상승한 6~7월의 경우 승용차 판매량은 지난해에 비해 덜 팔렸다. 코로나 19 속 승용차는 타격을 입은 반면 전기차 판매량은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전기차 시장이 커질 수 있었던 이유에는 EU의 강력한 규제가 있었다. EU는 2018년 말 2021년부터 10년간 승용차 배기가스를 37.5% 줄인다는 강력한 탄소 감축 목표를 제시했다. 당시 유럽 자동차제조협회(ACEA)도 성명을 내고 "높게 설정된 CO2 배출감축 목표치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면서 "2030년 목표치에 대해 개탄한다"고 밝혔지만, EU는 올해 더욱 센 감축 목표를 제시했다. 2030년 배기가스 감축 목표량을 1990년 배출량의 ‘최소 55%’ 이상으로 확대하면서 본격적으로 전기차 시장이 커지기 시작했다.
EU의 강력한 규제에 PSA, 볼보, BMW 등 자동차 제조사들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업체가 2019년 전기차 판매율이 5%이하인데 반해 2021년을 기점으로 전기차 판매율을 확 끌어올릴 전망이다.
전 세계 전기차 시장도 더 커지고 있다. 올해 전기 자동차의 유럽 시장 점유율은 10%에 도달한 데 이어 내년에는 15%로 늘어날 전망이다. 아예 내연기관 퇴출을 목표로 삼는 나라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네덜란드와 노르웨이는 202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허용하지 않을 계획이다. 영국이 2035년, 프랑스는 2040년을 목표로 삼았다. 미국 최대 자동차 시장인 캘리포니아 주는 2035년부터 내연기관 신차 판매 금지를 선언했다. 내연기관차가 내뿜는 배기가스는 공기 질을 악화시키는 주범으로 지목돼 왔고 이로 인한 기후 변화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지경에 이르면서 서서히 퇴출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당장 전기차 시장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2013년 양산형 수소차인 투싼 FCEV를 세계 최초로 생산하면서 미래먹거리로 ‘수소차’를 내세웠던 현대자동차도 부랴부랴 전기차 라인에 뛰어들게 됐다.
내연기관의 종말 선언한 국가들
현대차, EU에 벌금만 3조원 내야할 수도
탄소 배출을 감축한다는 추상적인 목표가 자동차 업체들을 움직인 건 아니었다. EU의 강력한 배기가스 규제 시행으로 당장 내년부터 벌금 폭탄 고지서를 받을 수 있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EU는 내년부터 역내에서 자동차를 판매하는 모든 제조사에 대해 일괄적인 탄소 규제에 나섰다. 한 해 동안 판매한 모든 차량의 탄소배출량이 '평균 95g/km‘를 넘지 말아야 하며, 기준을 초과한 업체는 g당 95유로(약 12만8000원)의 벌금을 내도록 강제했다.
영국 컨설팅 업체 PA컨설팅그룹에 따르면 자동차 업계가 내연기관차를 버리지 않았을 때 받아들 벌금은 약 147억 유로(약 19조7338억원). 탄소배출을 적게 하는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차량을 더 많이 판매하는 방안을 선택하지 않으면, 벌금을 피해갈 수 없다고 전망했다.
이에 대부분의 자동차 업체는 발 빠르게 대응했다. 유럽 환경단체 ‘교통&환경’(T&E)에 따르면 PSA와 볼보, FCA, 테슬라, BMW은 2020년 상반기 판매량을 기준으로 EU 배출량 목표를 이미 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르노 '닛산', 토요타 그룹 '마쓰다' 등은 km당 2g을 넘겼지만, 기준을 거의 충족했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은 기준에 한참 모자랐다. 현대차는 7g, 기아차는 3g이나 초과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도 한 대당 약 90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하는데, 내년부터 더 빡빡해진 배출가스 측정방식 사용으로 현대차는 더 많은 벌금을 물어야 할 지경에 처했다. EU는 내년부터 유럽연비측정방식(NEDC)에 따라 측정하던 탄소 배출량을 한층 강화된 시험 방법인 국제표준 배출가스 측정방식(WLTP) 방식으로 변경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국제표준 배출가스 측정방식에 따르면 현대차는 평균 탄소배출량은 140.4g/km, 초과 배출량은 45.4g에 달한다. 한 대 당 약 580만 원 가량의 벌금을 물어야 하는 것이다.
2019년 현대차의 유럽 판매 자동차 대수는 53만6106대. 초과 배출에 따른 벌금액은 23억 1222만 5178유로(한화 3조1533억원)에 달한다. 현대차는 벌금으로만 2019년 영업이익(3조6847억 원)의 85.6%에 달하는 금액을 내야할 수도 있다.
이런 현실에 현대차는 전기차에 사활을 걸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김흥수 현대차 상품전략사업본부장(전무)은 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내연기관 퇴출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이렇게 답했다. 김 전무는 “전기차를 더 많이 팔고 제품 믹스를 조정하는 등 대응을 하고 있다”며 “(전기차 전환을)빨리 진행해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전략인 만큼 사활을 걸고 있다”고 답했다.
사활 걸어야 할 시기에 반복되는 ‘코나EV 화재’
충당금 반영으로 ‘신뢰 회복’ 나서려는 현대차
전기차에 사활을 걸어야 할 시기에 반복되는 코나EV 차량 화재는 현대자동차에게 이전 사고와는 비교할 수 없는 충격이다. 이례적으로 발 빠른 리콜 결정을 내린 여기에 있다. 2018년 출시된 이후 14건의 화재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5월과 8월, 울산 현대차 공장 생산라인에서 2차례 화재 발생 이후 2019년 5차례(캐나다, 오스트리아 등 2곳 포함), 올해 국내에선 7차례 화재가 발생했다. 특히 최근 한 달 동안 세 차례나 화재가 일어나며 소비자는 코나EV의 안전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수차례 화재가 발생하자 현대차는 전 세계에서 코나EV(Kona) 전기차 SUV 약 7만7000대를 대상으로 대규모 리콜을 단행했다. 유럽 3만7366대, 미국 1만1137대, 중국과 인도 등에서 3000여 대 등 총 5만1000여 대다. 지난 상반기(1~6월) 해외 시장에서 코나EV 일렉트릭이 7만7748대 팔린 점을 감안하면 판매 물량의 70%가량을 리콜하는 셈이다. 국내에서도 2만5664대를 리콜하기로 결정했다.
3분기에 총 3조4000억원의 충당금을 적용한 이유도 이같은 신뢰회복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정의선 회장 체제 시작 단계, 그리고 전기차 원년인 내년이 오기 전 2015년부터 문제가 된 세타2 직분사(GDi) 엔진 논란을 해소하고 적자를 털고 가겠다는 것이다. 현대차 2조1300억원, 기아차 1조2600억원으로 상정된 충당금은 세타2 GDi 엔진이 장착된 소유주에게 엔진 진동감지 시스템(KSDS) 적용을 확대하고 엔진에 대해 평생 보증을 해주기로 한 비용이다. 각 사 시가총액의 5.2%(2조1000억원), 6.7%(1조3000억원)에 해당한다. 세타2 GDi엔진을 장착한 차량은 2015년부터 차량이 주행 중 멈추거나 화재가 발생하는 사고가 생기기 시작했다. 충당금 반영을 계기로 최근 불거진 코나EVEV의 품질이슈를 다소 진화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현대차가 넘어야 할 산은 남아있다. 현대자동차와 국토교통부는 코나EV 화재 원인으로 배터리를 지목했지만, 배터리 제조사인 LG화학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재의 직접 원인이 배터리 셀(cell) 결함으로 밝혀질 경우, 현대자동차는 이번 대규모 리콜에 따른 손실에 대한 구상권을 LG화학에 청구하면서 코나EV의 안전성 책임 논란에서도 한 발 뺄 수 있다. LG화학 또한 볼보, GM 등 글로벌 자동차업체에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는터라 양사간 공방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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