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로 공시 의무화가 다가오면서, 기업들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분주한 상황이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이 27일 개최한 ‘기후변화와 금융공시 세미나’에 모인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환경정보공개제도와 녹색 택소노미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환경정보공개제도는 2009년 GRI 표준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제도다. 기업은 이 제도가 제시하는 기준에 따라 환경 정보를 공개해 왔다. 이 정보는 환경부 산하의 환경산업기술원이 운영하는 환경정보공개시스템에서 연도별로 열람할 수 있다.
이렇게 공개된 정보는 녹색 기준에 따라 무엇이 녹색 경제활동인지를 구분한다. 기업은 이 구분 기준에 따라 녹색 경제활동의 성과를 측정하게 된다. 그 기준이 녹색 택소노미다.
정부는 국내 환경을 고려하여 글로벌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에 대한 정합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관련 제도들을 개편하고 있다. 세미나 발제자인 환경산업기술원 ESG경영지원실 이현주 책임은 “글로벌 3대 공시 기준에 대한 정합성을 고려하여 환경정보공개 기준을 단계적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정보공개제도, 글로벌 공시 정합성 맞춰 개편
최근 환경부는 환경정보공개제도의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현주 책임은 개편안의 주요 변경사항을 소개했다.
기존 정보공개 기준은 6개 산업의 업종별 지침을 제시했었다. 개편안은 이를 산업공통 기준과 산업기반 기준 2개로 단순화했다. 이현주 책임은 “ISSB가 산업공통과 산업별 기준으로 구분한 것을 참조했고, 추후에 산업별 중대성 이슈를 고려해서 특화항목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보의 공개 단위는 사업장 단위에서 법인 단위로 2024년 시범사업을 거친 후 변경될 예정이다. 이는 향후 금융위가 발표할 지속가능성 공시가 법인 단위로 정보를 공개하므로 해당 제도와의 통일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이현주 책임은 “변경사항 중 특히 공개 항목에 주목해야 한다”며 “현재 제도에서 기후 공시의 대표 지표인 온실가스 배출량이 자율공시로 되어 있는데, 이를 의무공시로 변경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역시 글로벌 공시 제도들이 요구하는 공개 항목을 반영한 결과다.
그는 “환경산업기술원이 이번 개편안과 더불어 기후 공시 대응을 위해 지원 방안들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환경산업기술원은 기업들이 어려워하는 스코프3의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을 돕기 위해 업종별 가이드라인을 발간하고 있다. 환경산업기술원은 우선 이차전지 업종의 가이드라인을 연말까지 발간할 계획이다. 이현주 책임은 “이차전지 산업 다음에는 필요도에 따라 업종별 가이드라인을 단계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환경산업기술원은 환경성 평가 결과를 협약을 체결한 금융기관에 제공하고 있다. 환경산업기술원은 환경 데이터베이스를 평가해서 자체 등급을 매긴 후 제공했다. 이현주 책임은 “한국적 맥락에 따라 환경정보의 중요성을 정리한 ‘한국형 중요도 맵’을 마련하고 있다”며 “ESG 공시대응 시 중대성 판단의 기초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택소노미 ‘적격’ 공시는 유럽이 압도적…
아시아, 녹색경제활동 공시 잠재력 높아
한국형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는 EU 택소노미를 기반으로 만들었고 3년에 한 번 개정된다.
한국형 택소노미는 EU의 체계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구성에서 차이가 있다. EU택소노미는 경제활동을 녹색인지 아닌지 두 가지로 분류한다. 한국형 택소노미는 녹색, 전환, 비녹색으로 구분하여 일명, 신호등 체계라고 불린다.
조민경 환경산업기술원 녹색투자지원실 전임연구원은 “녹색 택소노미는 74개 경제활동 중 67개를 녹색 부문, 7개를 전환 부문으로 분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환 부문은 블루수소 제조와 LNG 발전 등 탄소중립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환 리스크를 완화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포함하고 있는 산업들을 지칭한다.
블룸버그 코리아의 최혜인 ESG 데이터 스페셜리스트는 “EU는 법이라서 녹색 아니면 비녹색으로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만, 아시아 지역은 전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신호등 체계를 채택한다”고 설명했다.
택소노미는 녹색 경제활동임을 판정하기 위해 기술선별기준(TSC, Technical Screening Criteria)에 부합하는 지 여부를 확인한다. 최혜인 스페셜리스트는 “아시아 지역의 택소노미가 제시하는 전환 부문에 대해서는 TSC로 명확히 검증하지 않고 큰 방향성을 제시하는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택소노미 기반의 정보 공시량은 유럽이 압도적으로 많다. 최혜인 스페셜리스트는 “블룸버그 터미널이 보유한 1만 2667개 기업의 데이터를 분석해 본 결과, 공시 비중의 99%를 유럽이 차지한다”고 말했다.
유럽이 아닌 국가들은 공시 비중이 낮지만, 녹색 경제활동의 규모는 작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택소노미에 적격한 경제활동 추정치를 계산했을 때는 유럽이 31%, 아시아태평양(APAC)이 35%, 라틴 아메리카가 33%가 나왔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아시아 지역에서 택소노미 기반의 공시가 개선되면, 녹색 경제활동 규모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다.
아시아 지역에서도 택소노미 적격 공시에 관한 모범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최혜인 스페셜리스트는 대만의 3대 이동 통신사 중 하나인 위엔촨 FET(Far EasTone Telecommunications)의 사례를 소개했다. 해당 기업은 녹색 경제활동의 성과를 EU택소노미와 대만의 택소노미에 적격한 핵심성과지표(KPI)를 바탕으로 각각 공시했다.
한국도 모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최혜인 스페셜리스트는 “한국은 택소노미 기반의 공시량이 선도적이고, 역시 좋은 공시 사례들이 관찰된다”고 강조했다. 국내 건설기업 H사는 대만의 통신사처럼 EU택소노미와 K택소노미의 적격 매출에 관한 KPI를 각각 산정했다. H사는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서 두 분류체계를 결합하여 내부 택소노미를 만든 후 이를 기준으로 한 KPI도 공시했다.
그는 H사의 사례를 “매우 희귀하고 놀라운 모범 사례”라고 평가하며, “한국 기업들이 이런 시도를 확대하고 공시 정보의 신뢰성을 계속해 보완해 나간다면, 국제사회에서 공시를 선도할 수 있는 위치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다가오는 ESG 공시 의무화…한국 기업은 어떤 기준에 대응해야 하나
- ESRS 대응 어떻게 하나…유럽 현직자들의 생각은?
- ESG공시 의무화 26년 이후로 연기…공시 지침 언급은 없어
- ESG공시 의무화 연기 두고 시끌시끌…ESG 현장 목소리는?
- 녹색분류체계 기반 공시 서둘러야…녹색금융 국제콘퍼런스 열려
- ESG 공시 플랫폼 봇물 터졌다…원스톱 솔루션으로 공시 관행 개선할까
- 유럽연합, 세계 최초로 녹색채권 표준 승인
- 독일, 독자적인 택소노미 출시
- 핵심광물, 택소노미 포함? 9월엔 세계 최초 장관급 회담도 열려
- EU의 30대 은행, 원자력을 녹색ㆍ지속가능채권에 포함시킨 곳 없어
- ISSB 공시 표준 최종안 발표…상호운영성 고려해 용어만 미세조정
- 연간 10조달러 경제, 키워드는 ‘자연’...생물다양성, 3년 안에 타석에 선다
- 싱가포르 기후 공시 수준, 글로벌 TCFD 평균보다 떨어져
- EU, ESRS 부문별 표준 채택일 2년 연기… 기업 부담 경감 목적
- 글로벌 4개 주요 은행, SBTi 목표 달성 포기하고 NZBA 따른다
- TCFD 출범 후 8년…글로벌 기업들의 공시 현주소
- LG엔솔의 공급망 관리 비결…2024년 ESG 키워드 ‘공시와 공급망 실사’
- 2024년 주목해야 할 글로벌 지속가능성 지침 일정
- 환경부, 1월부터 순환경제 규제특례(샌드박스)제도 시행
- 환경부,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기업에 1202억원 규모 탄소중립설비 지원
- 호주 정부, 기업의 기후공시 의무화하는 신규 법안 초안 발표
- 홍콩, 택소노미 발표…EU, 중국 택소노미와의 상호 운용성 고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