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회계기준원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가 20일 서울 여의도동 소재의 금융투자협회에서 ‘자본시장 가치 제고를 위한 지속가능성 의무공시 토론회’를 열고 지속가능성 의무공시에 대한 정보 이용자들의 의견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다수 의견은 “지속가능성 정보를 사업보고서의 일부로 스코프3를 포함하여 2026년부터 공시를 시작하라”는 것이었다. ESG 공시는 정보 제공자인 기업과 투자자와 학계, 정부 등의 정보 이용자로 구성돼 있다.
한국회계기준원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이하, KSSB)는 지난 4월부터 8월31일까지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의 공개초안에 대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KSSB는 8월11일 기준으로 총 167건의 기업과 투자자, 학계의 의견을 받았다.
김은경 한국회계기준원 지속가능성기준실 실장은 설문에 대해 “기후 공시를 우선하고 보고기업을 재무공시와 동일하게 연결실체를 대상으로 하며, 스코프3를 함께 공개하자는 게 다수 의견”이라고 요약했다. 김 실장은 “8월 말까지 의견을 분석하고, 하반기에 최종 기준을 제정하며 2025년에는 기준 이행을 지원하기 위해 가이드라인과 교육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보 이용자 70%, 스코프3 포함한 의무 공시 2년 내 시작 요구
설문 연구를 진행한 손혁 계명대학교 회계학과 교수는 “이번 조사는 KSSB 공개초안에 대한 부정적인 기업 의견을 담은 기존의 설문조사들과는 큰 차이를 보이는데, 정책을 만들 때 정보 제공자인 기업의 의견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속한 정보 이용자의 의견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손혁 교수는 “현재 기업이 자발적으로 발행하고 있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유용성 수준은 10점 척도에서 4점 정도로 평가됐으며, 정보 이용자의 92%가 공신력 있는 통일된 기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KSSB 기준에 기반한 공시 정보의 이용처로는 동종산업 내에서 기업 간 비교정보를 획득하는 데 활용하고자 한다는 의견(30.77%)이 가장 많았고, 투자의사 결정(15.84%)과 스튜어드십 코드의 근거(15.38%), ESG 평가의 데이터포인트로 활용(25.79%)하겠다는 의견들이 있었다.
설문조사는 정보 이용자에게 유용한 지속가능성 정보는 무엇이고 이를 위해 어떤 형태로 공시가 이뤄져야 하는지를 물었다.
공시 범위는 재무제표의 보고기업과 동일하게 연결실체로 공시하도록 요구하는 KSSB 기준에 대해 89%가 동의했다. 공시 위치는 사업보고서가 58%, 지속가능성보고서가 23%, 사업보고서가 아닌 별도의 보고서가 16%가 나왔다. 정보 이용자 다수가 법정 공시를 요구하고 있음이 나타났다.
공시 시작 시점은 사업연도 2026년이 39%로 가장 많았고, 2027년(33%), 2028년(24%) 순으로 의견이 제시됐다. 보고 시기는 통상 3월 말인 연차재무제표 보고와 동시에 하자는 의견이 46%로 대다수였다. 배출권거래제의 명세서가 공개된 이후인 6월 말에 보고하자는 의견은 37%로 뒤를 이었다.
논란이 많은 스코프3 배출량 공시는 응답자의 73%가 의무화에 동의했다. 동의하지 않은 27%는 데이터 신뢰성 문제(54%)와 기업 수용가능성 문제(25%)를 이유로 제시했다. 스코프3 배출량 공시는 기업이 부담을 크게 느끼는 만큼 유예기간을 갖자는 의견들도 있었다. 유예기간은 공시 의무화 이후 1년이 23%, 2년 19%, 3년이 20%로 나타났다. 유예기간이 없이 공시 의무화와 동시에 진행하자는 의견도 10%가 나왔다.
ESG 공시 비용은 새 발의 피…준비된 녹색⋅전환 자금, 정보 공개로 선점
금융업계는 기업이 공시 비용보다는 정보 공개를 통해 확보할 수 있는 기회 요인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전윤재 KB금융지주 ESG사업부 부장은 “정보이용자인 금융회사 등 투자자는 기업이 공개한 ESG 정보를 통해 포트폴리오를 관리하여 투자 위험을 줄일 수 있다”며 “리스크 프리미엄이 줄어서 기업들은 예전보다 더 적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기회 요인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종원 NH아문디자산운용 채권리서치실 실장은 “공시 비용이 부담스럽다는 기업 의견들이 있지만, 기후 리스크로 인한 손실을 헷지(hedge)할 수 있는 보험료와 같다고 생각하면 좋다”고 말했다.
최종원 실장은 기후 리스크로 인해 기업 가치가 크게 떨어진 여러 사례를 공유했다. 그는 “미국의 3대 전력회사인 PG&E는 가뭄과 기온으로 송전소 배전선에서 불꽃이 튀어 산불이 났는데, 220억달러(약 29조원)의 배상금을 물게 됐다”며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본이 200억달러(약 27조원)인데, 이보다 더 많은 배상금으로 파산 위기를 맞았다”고 말했다. 그는 “자동차 제조기업 볼보에 납품하는 국내 자동차부품업체 한 곳은 2025년까지 RE100 계획을 제출하고 행동을 취하라는 요구를 받았는데, 대응하지 못해서 최종 납품 계약이 무산된 사례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최 실장은 “리스크 공개한다고 기업가치 떨어지기보다는, 투자자가 다른 기업과 비교가능성이 있고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적다고 판단하면 투자할 수 있다” 고 말했다. 그는 TSMC와 퓨마, 케링 그룹(Kering Group), 홀심(HOLCIM), 필립스와 같은 사례를 소개했다. 반도체 기업 TSMC는 홍수 피해로 인한 리스크와 대응 전략 및 이행 사항을 사전에 공시하여 투자자와 소통한 바 있다. 그는 “퓨마와 케링 그룹, 홀심, 필립스는 각각 환경에 관한 리스크를 화폐 가치로 평가해서 공개하는 ‘환경손익계산서’를 발간하고 있다”고 전했다.
임대웅 유엔환경계획 금융 이니셔티브(UNEP FI) 한국대표는 “우리나라는 공시보다 금융이 앞서나가고 있다”며 “이미 마련된 녹색 및 전환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공시를 빠르게 준비하는 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임대웅 대표는 “금융위원회는 지난 3월 420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2030년까지 녹색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했고, 민간 5대 금융그룹에서도 녹색만 135조원, 전환은 600조원가량의 자금이 마련되고 있다”고 말했다.
임 대표는 “공시 비용이 부담스럽다고 얘기하지만, 예컨대 ESG와 관련한 금리 할인이 0.8%라고 하면, 1조원을 들여 공장을 5년에 걸쳐 짓는다면 1년에 80억원씩 400억원이다. 국내에는 2% 이상 금리 할인이 들어간 금융 상품들도 존재한다”며 “공시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비용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말했다.
이인형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유럽연합은 택소노미 적격 경제활동으로 인한 기업의 매출액 비중이 크면 탄소중립 달성 성과가 크다고 평가하고 있다"며 "공공금융지원 정책도 한국의 녹색 택소노미 적합도가 높은 기업과 경제활동에 우선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패널들은 ESG 공시와 관련한 다양한 의견들을 내놓았다. 이동섭 국민연금공단 수탁자책임실 실장은 "국민연금은 ESG 정보를 의결권 행사, 인게이지먼트, 투자제한, ESG통합 네 가지 부문에서 활용할 수 있다"며 "특히 공시 정보를 바탕으로 자체 ESG 평가를 진행하여, 국내 주식과 채권 투자에 반영하는 ESG통합 영역과 문제 사항에 대해 기업과 대화하는 인게이지먼트를 중심으로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승재 서스틴베스트 부대표는 "ESG 정보는 앞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언어가 될 것"이라며 "많은 이해관계자가 활용할 수 있도록 ESG 공시 의무제도를 빠르게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규안 숭실대 교수는 “통일된 ESG 공시 기준과 인증 의무화가 정보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향상하며, 이를 통해 자본시장의 가치제고가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고, 김이배 덕성여대 교수는 “밸류업과 지속가능성 정보 공시 모두 기업가치 제고를 목표로 한다”며 “밸류업 공시와 지속가능성 공시의 조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나승호 한국은행 지속가능성장실 실장은 “한국은행은 기후 변화가 금융 안정을 저해할 수 있는 주요 위험 요인 중 하나”라며 “금융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위해선 지속가능성 정보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준혁 서울대학교 법학대학교 교수는 "KSSB 기준안을 냈지만 지켜야 할 법적 근거는 전혀 없고, 기업 부담을 줄이기 위한 면책조항도 법적 근거가 있어야 마련할 수 있다"며 "자본시장법 차원의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치연 금융위원회 공정시장과 과장은 "공시 기준에 대한 의견 수렴이 진행되고 있는데, 기준안이 확정된 이후 관계부처와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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