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기업과 각국 정부의 강한 압박 속에서 지속가능성 규제 완화 여부를 두고 치열한 논쟁에 휘말렸다.
26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규제 완화 기조가 EU에 미치는 영향을 둘러싼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규제 과도해 투자 위축”…기업·정부 완화 요구 잇따라
미국 정유업체 엑손모빌(ExxonMobil)은 최근 EU 규제가 기업 투자를 가로막고 있다며 개정을 촉구했다. 필립 뒤콤(Philippe Ducom) 엑손모빌 유럽 대표는 FT와의 인터뷰에서 “회사가 수소·탄소 포집 기술 등에 배정한 300억유로(약 45조원) 중 유럽에서 투자될 금액은 거의 없다”며 “EU의 규제는 불필요하고 과도하며 비용이 많이 든다”고 지적했다.
유럽 대기업 모임인 유럽라운드테이블(ERT) 역시 최근 입장문에서 기후변화 대응 및 기업 행동 개선을 위한 EU 규제가 기업 경영을 지나치게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ERT는 “보고 범위와 공시 요건이 불분명하며, 복잡하고 애매한 정의가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우려는 최근 열린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도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다수의 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에게 기업들의 규제 부담을 조속히 완화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유럽이 매일 경쟁력을 잃고 있다”며, “현재 유럽은 투자 불가능한 시장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지속가능성 보고 규제 간소화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지만, 기업과 각국 정부는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미국이 감세 및 규제 철폐 정책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유럽의 경쟁력 확보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프랑스 정부는 최근 “규제 전반에 대한 대규모 중단(massive regulatory pause)”을 촉구했으며, 독일 올라프 숄츠 총리는 이달 초 EU 집행위에 서한을 보내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CSRD) 시행 연기와 규제 완화를 요구했다.
EU, 보고 의무 25~35% 축소 추진…예측 가능성 훼손 우려도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WEF 영상 연설에서 “EU의 규제는 지나치게 번거롭다”며 “EU의 세금·무역 정책 역시 문제가 많다”고 비판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도 “기업들이 불필요한 행정 절차로 인해 유럽 내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고 인정하며, “지속가능 금융과 기업 실사(due diligence) 규제에 대한 광범위한 간소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U 집행위는 2월 중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CSDR), 공급망 실사(CSDDD), 택소노미 관련 3대 주요 지침의 개정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초안에 따르면 대기업의 보고 의무를 25%, 중소기업의 보고 의무를 35% 줄이는 방안이 포함될 전망이다.
그러나 EU 내부에서도 개정에 대한 이견이 크다. 일부 회원국들은 기업들이 이미 새 규제에 맞춰 대비를 마친 상황에서 추가 변경이 예측 가능성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EU 고위 외교관은 “변화가 필요하지만, 동시에 기업들이 예측 가능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국발 압력이 지나치게 작용할 경우 EU의 지속가능성 정책이 크게 후퇴할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케임브리지 지속가능성리더십연구소(CISL)의 마틴 포터 이사장은 “광범위한 규제 단순화가 기업들이 이미 투자한 지속가능성 정책을 무효화할 위험이 있다”며 “이는 지속가능성을 유럽 경제의 경쟁력으로 삼으려는 EU의 전략과 충돌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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