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리 젤딘 EPA 청장 X(트위터)
사진=리 젤딘 EPA 청장 X(트위터)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오염 유발 기업을 대상으로 시행해 온 온실가스 배출량 보고 의무를 크게 축소할 방침이다. 

10일(현지시각) 미국 탐사보도 전문매체 프로퍼블리카(ProPublica)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규제 완화는 정유소, 발전소, 석탄광산, 석유화학·시멘트·유리·철강 제조업체 등 미국 전역 수천 개 시설 중 대다수를 보고 대상에서 제외시킬 것으로 보인다. 

EPA는 2010년부터 시행한 온실가스 보고 프로그램(Greenhouse Gas Reporting Program, GHGRP)을 통해 현재 약 8000개 시설의 이산화탄소와 메탄, 기타 기후 온난화 가스의 배출량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해당 자료는 미국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 수립과 국제기구 제출 자료로 활용됐다. 

 

“41개 산업부문 중 40개 부문에 대한 보고 의무를 폐지하라”

새로운 규정에 따라 보고 요건은 석유·가스 산업 내 일부 부문에 속한 약 2300개 시설에만 적용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미국 온실가스 배출량 통계의 정확성이 크게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EPA는 온실가스 보고 의무가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준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지난달 온실가스 보고 프로그램을 재검토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리 젤딘 EPA 청장은 해당 프로그램을 “기업에 과도한 부담”이라고 규정하며 “미국 기업과 제조업에 수백만 달러의 비용을 초래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미국 대선 기간 보수주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 주도로 작성된 정책 보고서 ‘프로젝트 2025’도 온실가스 보고 프로그램의 대대적인 축소를 권고했다. 보고서는 해당 프로그램이 중소기업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EPA는 온실가스 보고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을 점점 약화시켜 왔다. 기업들이 데이터를 제출하는 포털을 수주 동안 닫아놓거나, 3월에는 보고 마감일을 연기하기도 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주 대기·방사선국 수석 부국장인 아비가일 타르디프(Abigale Tardif)는 현재 41개 산업부문 중 40개 부문에 대한 보고 의무를 폐지하는 초안을 마련할 것을 지시했다. 타르디프는 EPA에 합류하기 전 마라톤 페트롤리엄(Marathon Petroleum)과 미국 석유화학단체 AFPM(American Fuel & Petrochemical Manufacturers)에서 로비스트로 근무했다. 

 

EPA “기업 부담 완화” vs 환경단체 “배출업체 특혜”

반면, 기후 전문가들은 미국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85~90%를 집계하는 온실가스 보고 프로그램이 여러 측면에서 기업에 오히려 도움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환경보호기금의 변호사 에드윈 라메어(Edwin LaMair)는 “많은 기업이 해당 데이터를 연간 지속가능성 보고서에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주주들에게 환경 개선 성과를 입증하거나 국제 보고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서도 온실가스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에너지부 차관보를 역임한 앤드루 라이트(Andrew Light)는 미국의 온실가스 보고체계 약화가 국제사회에 부정적 신호를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미국이 자국의 데이터를 수집·보고하지 않는다면 중국, 인도 등 개발도상국에 기후협력 의무를 요구할 명분이 약화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데이터가 손실되면 특정 산업 부문이나 개별 공장에서 얼마나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지 파악하거나, 배출량을 장기적으로 추적하는 일이 어려워진다. 세부적인 데이터는 책임 추적과 관리의 핵심 수단으로, 전문가들은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의 출처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 국가 전체 배출량을 줄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온실가스관리연구소 마이클 길렌워터(Michael Gillenwater) 소장은 “전 세계가 온실가스 보고체계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미국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며 “향후 기후정책 추진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려하는 과학자 연합의 기후·에너지 프로그램 수석 정책 책임자인 레이첼 클리터스(Rachel Cleetus)는 “온실가스 배출업체들에 면죄부를 주는 조치”라며 “데이터를 추적하지 않는다고 해서 기후 위기의 현실이 덜해지는 것은 아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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