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의 간헐성과 기후기술의 복잡성이 높아지면서, 전력망 운영과 탄소저감 기술 전반에서 연산·시뮬레이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NREL)는 1일(현지시각), 양자컴퓨팅이 이러한 고난도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실질적 효용성을 검증할 표준 테스트 모델 개발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NREL 연구진 케일럽 로텔로 박사 / NREL
NREL 연구진 케일럽 로텔로 박사 / NREL

양자컴퓨터는 기존 컴퓨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한다. 기존 시스템이 전기가 흐르느냐(1), 흐르지 않느냐(0)에 따라 비트 단위로 연산을 수행하는 반면, 양자컴퓨터는 '큐비트(Qubit)'라 불리는 단위를 사용한다. 큐비트는 양자역학의 중첩(superposition) 특성에 따라 0과 1 상태를 동시에 갖는 것이 가능하다. 여기에 여러 큐비트가 얽힘(entanglement) 상태로 연결되면, 하나의 회로 안에서 수많은 경우의 수를 동시에 고려하며 계산을 진행하는 ‘양자 병렬성’이 구현된다.

예를 들어 3개의 큐비트만으로도 최대 8개(2³)의 상태를 한 번에 반영해 계산할 수 있어, 고전 컴퓨터가 순차적으로 시도해야 하는 시나리오를 동시에 병렬적으로 탐색할 수 있다. 실제 계산에서는 측정 순간 하나의 결과만 도출되지만, 연산 과정에서는 모든 가능한 해를 동시에 고려하며 최적의 답을 빠르게 수렴하는 것이 양자컴퓨팅의 핵심 강점이다.

 

‘스페인 대정전’ 이후, 실전 시뮬레이션의 필요성 부각

NREL이 첫 단계로 착수한 테스트 모델 개발 영역은 실시간 전력망 최적화다.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로 출력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수요-공급 균형 조정, 발전기·저장장치 배분, 송전망 제어 등 복합 연산이 필요한 운영 환경이 빠르게 고도화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스페인에서 발생한 대규모 정전은 복잡해진 전력망이 기존 연산 체계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특히 태양광 발전은 회전형 기계장치를 사용하는 화력·수력과 달리, '관성(inertia)'이 존재하지 않는다. 기존 발전원은 발전이 일시 중단돼도 회전체의 회전 관성으로 인해 계통 주파수를 일정 시간 유지할 수 있다. 반면 태양광은 인버터 기반으로 구동돼 일사량이 급격히 줄면 곧바로 전력망에서 이탈하며, 계통 전체에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

이처럼 돌발 상황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선 실시간 수요 예측과 자원 배분을 병행하는 고차원 ‘확률 최적화(stochastic optimization)’ 계산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기존 슈퍼컴퓨터로는 시나리오 수가 많아질수록 계산 시간과 정밀도 모두에서 한계가 뚜렷하다.

NREL은 이 문제를 2단계 확률 최적화 모델로 수학적으로 모델링하고, 양자 알고리즘을 활용한 성능 시뮬레이션에 돌입했다. 연구진은 “양자 알고리즘이 불확실한 시나리오를 병렬적으로 탐색할 수 있어, 재생에너지 계통 운영과 복원력 확보에 효과적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수소·배터리·탄소포집 기술도 ‘양자 시뮬레이션’ 타깃

전력망 운영 외에도, NREL은 에너지 소재 분야로 테스트 모델 개발 대상을 확대 중이다. 차세대 배터리 수명 예측, 수소 촉매 반응 경로 분석, 탄소 포집 물질의 분자 결합력 계산 등은 모두 전자 간 상호작용을 정밀하게 시뮬레이션해야 하는 복잡한 물리계로, 고전 연산 체계로는 계산 시간이 과도하게 소요되거나 정확도 확보가 어렵다.

NREL은 이를 위해 대표적 다체계 상호작용 모델인 ‘앤더슨 불순물 모델(Anderson Impurity Model)’을 양자회로에 적용해, 계산 속도와 정밀도 측면에서 양자의 우위를 평가 중이다. 해당 모델은 리튬이온 배터리의 전극 물질 구조 예측, 수소 생산용 촉매 효율 분석 등 기후 기술 R&D 전반에 핵심적으로 사용되는 계산 구조다.

연구를 이끄는 케일럽 로텔로(Caleb Rotello) 박사는 “이제는 단순한 기술 가능성이 아닌, 양자컴퓨팅이 실제 산업 문제에서 어느 정도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따지는 실효성 중심의 접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향후 NREL은 각 계산 구조별 연산 효율을 정량화하고, 기술 적용 가능성이 가장 높은 문제 유형부터 선별해 로드맵을 제시한다는 계획이다.

기후테크 전문매체 클린테크니카는 이번 실험에 대해 “단순 기술 비교를 넘어, 기후위기 시대 전력계통 리스크를 예측·완충하기 위한 현실적 검증 시도”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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