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집행위원회(EC)가 생물다양성 복원을 위한 민간 투자 확대 방안으로 ‘네이처 크레딧(nature credits)’ 제도 도입을 추진한다고 8일(현지시각) 밝혔다.
EU는 생태계 보호 활동에 민간 자금을 연계하고, 탄소시장을 넘어 자연자본까지 투자 범위를 확대할 방침이다.
최근 국방비 등 공공 예산 지출 증가로 생물다양성 보호에 필요한 재원이 연간 약 370억 유로(약 59조4500억원) 부족한 상황에서, EC는 네이처 크레딧 제도를 활용해 연 650억 유로(약 104조5000억원) 규모의 민간 투자를 유치할 계획이다.
제시카 로스월(Jessika Roswall) EU 환경 집행위원은 “이번 제도는 자연을 상품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연 복원과 유지 활동의 가치를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보상하려는 취지”라며,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해 자연 보호에 대한 투자 유인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한편 브뤼셀은 지난주 2040년 EU 기후목표 초안을 발표하면서 각국이 국제 탄소 크레딧을 자국 감축 목표 달성 수단으로 일부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크레딧 시장을 제도권으로 통합하려는 정책적 움직임으로 보인다.
인증 기반 자연 자본 투자 시장 구축
네이처 크레딧은 농민, 임업인 등 생태계 관리자가 산림 확장, 습지 복원, 서식지 회복 등 자발적 생태계 개선 활동(nature-positive outcome)을 수행한 경우, 이를 인증하고 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크레딧으로 전환하는 제도다. 기업이나 정부 등이 크레딧을 구매하면 관리자 자산으로 크레딧 수익이 귀속된다.
EU는 이 제도를 통해 자연 기반 활동에 수익 구조를 구축하고 민간 투자를 촉진함으로써 생물다양성 회복을 가속화할 계획이다. 현재 EU 기업의 75%가 자연 자산에 의존하고 있으며, 세계경제포럼은 전 세계 GDP의 절반 이상이 생태계 서비스에 기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자연 훼손과 기후 변화가 기업 수익의 최대 7%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경고도 제기됐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EU 집행위원장은 "자연 역시 회계 장부에 포함시켜야 하며, 네이처 크레딧이 이를 실현하는 수단이 될 것"이라며, “민간 투자를 통해 자연 보호를 수익 모델로 전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엔생물다양성협약(UN CBD)은 203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연간 2000억달러(약 284조원) 규모의 자연 복원 투자 자금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현재 EU는 공통농업정책(Common Agricultural Policy)을 통해 농민들에게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보다 구조적인 재원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EU는 2027년까지 내부 예산의 10%를 생물다양성 분야에 배정하고, 대외 지원도 70억유로(약 11조2700억원)로 두 배 확대할 계획이다.
에스토니아와 프랑스는 네이처 크레딧 시범 테스트를 진행했으며, EU는 2025~2027년까지 회원국 전역으로 시범사업을 확대 운영할 예정이다.
EC, 자발적 참여 기반 인증 시장 구축해 그린워싱 방지
EC는 이번 로드맵에서 하향식 규제 대신 시장 자율성과 참여를 강조하는 ‘바텀업’ 방식을 채택했다.
인증 기준, 시장 운영 방식, 신뢰성 평가 등을 논의하기 위한 전문가 그룹을 올해 중 출범시킬 예정이다. 이 그룹에는 각국 정부, 농민, 지역사회, 과학자들이 참여하며, 향후 제도의 EU 법제화 여부도 검토된다. 생물다양성크레딧연합(Biodiversity Credit Alliance),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국제자문패널 등 국제 기구와도 협력하고 있다.
EU는 자발적 참여 기반의 인증 시장을 구축해 행정 부담을 줄이고, 그린워싱을 방지하겠다는 방침이다. 나아가 네이처 크레딧 시장에는 사전 검증과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투명성과 신뢰성을 제도 설계의 핵심 원칙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네이처 크레딧이 여전히 그린워싱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 환경단체 포레스트(Fern)는 “에스토니아 시범사업에서 27헥타르의 산림이 벌채됐고, 그 중 일부는 생태적으로 민감한 지역”이라며, “자연 금융을 논의하면서 오히려 환경 파괴를 초래하는 시범사업에 의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지구의 벗 유럽(Friends of the Earth Europe) 역시 “네이처 크레딧은 자연 보호 행동을 가장한 방관 행위이며, 기업이 자연을 계속 파괴하면서 비용만 지불하면 면죄부를 받는 구조”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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