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로 인한 재해가 일상화되는 가운데, 보험산업이 감당해야 할 재정 리스크와 공적 개입의 기준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됐다.
1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일상화된 재해, 보험 산업의 기후위험과 책임’ 세미나에서는 보험·기후금융·재해정책 전문가들이 모여 기후 리스크 확대에 따른 보험 상품 구조, 민관 역할 분담, 손해평가 시스템의 한계 등을 짚었다.
이대건 한국은행 기후리스크분석팀 팀장은 “기후위기로 인한 손실 규모가 이미 경제 안정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이라며 “보험 시스템이 재정안정장치로 작동하려면 사적 계약으로 감당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공적 분담 논의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통계 기반 한계에 부딪힌 재해보험… 유기적 연계와 기술 활용 강조
박남영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실장은 호주 아다니(Adani)의 야생동물보호구역 내 석탄 개발로 인한 글로벌 보험사들의 프로젝트 인수 거부 사례를 들며, 국내 보험사도 ‘탈화석’ 수준을 넘어 재생에너지·송전망·저장 등 고위험 대규모 전환 프로젝트에 자본·리스크 보장으로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한국 손해보험사의 행보가 이에 못 미친다고 지적했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의 ‘화석연료 금융 백서’ 설문 분석에 따르면 10개 손보사의 보험 인수액은 2023~2024년에 크게 늘었지만 증가분은 석탄 운영보험이 주도했고, 신재생에너지 관련 보험 잔액 비중은 2024년 6월 기준 화석연료 대비 13.6%에 그쳤다. 기타 금융상품(채권·지분 투자)은 소폭 증가에 그쳤고, 신규 재생 투자 집행액은 오히려 줄었다.
박 실장은 공공부문의 조달력을 활용해 보험사 선정 기준에 ‘탈석탄 로드맵·재생에너지 투자·국제 이니셔티브 참여’ 등 기후금융 실적을 의무 반영·공개하고, 우수 보험사에는 입찰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제도화를 제안했다.
이병식 농업정책보험금융원 본부장은 농업 분야에서의 기후위기 대응 보험에 대해 발언했다. 그는 극한기후에 따른 농업 피해가 급증하고 있으며, 농작물·가축·수산물 재해보험의 사고 접수 건수가 모두 전년 대비 3~5배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기후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한 통계 기반의 보험 설계는 한계에 봉착했다며, 이 본부장은 AI 기반 모델과 지수형 보험의 도입을 언급했다.
보험산업이 감당 못할 수준의 기후리스크… 공적 개입 기준 재설정 필요
한편 이승준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보험산업의 역할을 강조하며, 재생에너지 사업자에 대한 보험 보장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재 태양광 종합공제보험 등을 통해 중소형 사업자 대상 재산·배상 손해 보장이 이뤄지고 있지만, 재생에너지 특성상 기후 조건에 따른 수익 변동성이 커 수입 보존형 보험 도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탄소중립이 어려워지는 현실 속에서 기후 적응 전략이 강화돼야 하며, 보험은 회복력 확보의 핵심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대건 한국은행 기후리스크분석팀 팀장은 보험산업의 기후 대응력 강화를 위해 공공 데이터 인프라 구축과 리스크 분산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 팀장은 공공기관이 보유한 기업별 탄소배출량, 기상 전망, 재해위험지도 등 데이터를 통합·가공해 보험사가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 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또한 기후재난 피해가 일부 보험사 부담을 넘어서고 있는 만큼, 글로벌 재보험, 국가 재보험, 대재해채권 등 자본시장 기반의 리스크 분산 장치 도입도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후보험은 특정 계층이 아닌 사회 전체가 분담해야 지속가능하다”며, 의무가입 범위 확대와 취약계층 지원 등 구조적 개선을 함께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주채윤 현대해상 교통기후환경연구소 선임위원은 기후위험이 보험산업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지적하며, 현장에서 체감하는 제도적 한계와 대응 과제를 실무자의 시각에서 제시했다. 특히, 전기차 보험, 날씨지수보험, 폭염 대응 건설근로자 보험 등 보험업 특화 상품 개발과 함께, 정량적 기후위험 개수 도입과 보험업에 특화된 표준화된 언더라이팅 가이드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정부 차원의 기준 정비와 공공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박성빈 금융위원회 보험과 사무관은 “보험산업은 기후위기에 가장 직접적으로 노출된 산업 중 하나”라며, 민영보험의 손실 확대에 따른 공적 시스템의 보완 필요성에 대해 공감했다. 그는 보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보험은 근본적으로 사적 계약에 기반한 것인 만큼 시장의 기능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원칙을 덧붙였다.
- SBTi, 금융기관 ‘넷제로 스탠다드’ 발표… 화석연료 신규투자 원천 봉쇄
- 기후위기 리스크에 보험사들 ‘재난채권’ 발행 사상 최대... 상반기만 23조 돌파
- 보험으로 그린본드에 투자한다?…취리히, 생보 가입자 전용 ESG 펀드 첫선
- 영국, 고탄소산업 전환금융 시범사업 착수…“녹색금융으로 370조원 성장 이끈다”
- 보험사, 폭염 리스크 상품화...“AI 데이터센터·노동 중단 등 피해 속출”
- EU, 금융감독당국 대상 ESG 스트레스 테스트 프레임워크 구축
- 재생에너지 자산, ‘보험 공백’ 우려…2050년까지 426조원 손실 가능
- 보험업계, 기후 적응력 정량평가 본격화…폭염 대응 인프라까지 심사 반영
- PF부터 EaaS까지…재생에너지, 보험으로 수익 불확실성 헤지
- 탄소중립 새 해법 ‘EPC’, 기후금융 혁신과 제도 신뢰가 관건
- 성장률 20%…보험사, 기후적응 컨설팅과 보험료 ‘양쪽에서 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