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OECD 라운드테이블에서 폴 앳킨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의장이 EU의 ‘이중 중요성(double materiality)’ 원칙을 비판하며 포기를 촉구했다. SEC가 10일(현지시각) 공개한 연설문을 통해 확인된 발언이다.
미 SEC, 재무 중심 공시만 강조
앳킨스 의장은 “재무적 중요성(financial materiality)에 기반한 공시가 자본의 효율적 흐름을 보장한다”며, EU의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CSRD)과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CSDDD)이 기업과 투자자 모두에 과도한 부담을 준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제적 성과와 주주 이익과 무관한 의무는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중 중요성 원칙은 기업이 직면한 재무 리스크와 기회뿐 아니라 사회·환경에 미치는 영향까지 함께 공시하도록 요구한다. CSRD는 상장사와 일정 규모 이상 기업에 매년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의무화하고, CSDDD는 공급망 전반에 걸친 인권·환경 위험 관리 및 공시 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EU와 시민단체는 ESG 리스크 관리를 위해 이중 중요성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SEC와 기업 단체들은 투자자 의사결정에 직접 관련된 재무 정보만 공개하는 단일 중요성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EU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독일과 프랑스는 기업 부담을 이유로 완화를 요구하는 반면, 스페인과 북유럽 국가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 자본시장 경쟁력 지키기 목적
SEC의 핵심 논리는 단순하다. “투자자에게 꼭 필요한 재무 정보만 공시하자”는 것이다. 반면 EU식 규제가 그대로 적용되면 유럽에 사업장을 둔 미국 기업도 추가 보고 의무와 비용을 떠안게 된다. 앳킨스 의장은 이를 “역외효과(extraterritorial effect)”라고 지적하며, 미국 자본시장의 매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국제회계기준재단(IFRS Foundation)이 기존 회계기준위원회(IASB)에 더해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까지 관리하게 된 점도 문제로 꼽았다. IFRS 재단이 ESG 의제에 치우칠 경우 IASB 본연의 역할이 흔들릴 수 있다며 “회계와 지속가능성 공시의 경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중 중요성, 유지와 수정 사이 갈등 심화
기업 공시를 둘러싼 글로벌 논의는 이중 중요성을 유지하려는 진영과 완화·수정을 요구하는 진영으로 나뉘고 있다.
GRI를 비롯한 323개 단체는 이중 중요성이 투명성과 경쟁력을 강화한다며 EU 집행부에 원칙 사수를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제출했다. 유럽 지속가능투자포럼(Eurosif)도 같은 입장이다. 이들은 소기업 적용 시기 조정은 가능하지만, 인권·환경 실사와 같은 핵심 취지 훼손은 불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비즈니스유럽(BusinessEurope) 등 기업 단체는 원칙 자체는 지지하면서도 보증(assurance) 절차가 과도한 비용을 유발한다며 합리화를 요구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역시 기업 부담을 이유로 적용 지연과 단순화를 주장하고 있으며, EU 집행위원회의 ‘옴니버스’ 개정안은 이러한 압박을 일정 부분 반영한 결과다.
다만 최종 결정은 의회와 회원국 논의가 남아 있는 만큼, 글로벌 공시 기준을 둘러싼 갈등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앳킨스 의장은 투자자의 이익에 초점을 맞춘 재무 중심 공시로 회귀해야 한다며, 미국 자본시장의 경쟁력을 지키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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