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과 티베트, 홍콩에서 인권 유린이 우려된다. 미국은 우리의 노동자와 산업계를 중국의 불공평함으로부터 보호할 필요성이 있다.”

지난 16일, 미국 바이든 대통령 취임 300일 만에 만난 두 정상의 대화는 확연한 입장차를 보였지만 협력을 다짐했다. 그러나 이틀 뒤, 백악관은 외교적 보이콧의 일환으로 베이징 동계올림픽 참여를 검토 중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강제노동 등을 ‘인권 탄압’으로 규정하고, 이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미-중 갈등의 불똥이 섬유 산업으로 다시 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본은 이에 기민하게 움직였다. 22일 일본경제신문은 “일본 의류 산업계에서 신장산 면화 사용 중지 움직임이 꾸준히 퍼지고 있다”면서 “미즈노에 이어 산요상회와 TSI홀딩스 등이 이에 합류하기로 했다"고 1면에 보도했다.

TSI 홀딩스와 산요상회는 일본 의류 업계 10위권 안팎에 드는 대형 업체다. TSI 홀딩스는 의류 무역과 자체 패션·뷰티 영역에서 자체 브랜드인 '나노유니버스'와 '산에이인터내셔널' 외에도 일본의 한국 패션 온라인 쇼핑몰 '모루지',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인 'HUF' 등을 보유하고 있다. 산요상회는 주로 백화점을 통해 자체 브랜드와 라이선스 생산 제품을 판매한다. 과거 영국 명품 업체 버버리의 일본 생산을 맡기도 했다. 

산요상회는 내년 봄·여름 제품에서 신장산 면화 사용을 중지한다. 산요상회 측은 “위구르에서 발생하는 인권 문제에 대해서 자체적으로 조사는 했지만, 실상은 잘 모른다”면서도 “(신장 면화가) 회색인 이상 사용은 그만둔다는 결정”이라고 밝혔다.

의류브랜드 나노·유니버스 등을 가지고 있는 TSI홀딩스도 일부 제품에서 신장 면화를 사용했다는 게 확인되며 올 가을·겨울 상품(SS)에서 이를 제외했다. 이 문제로 투자자와 소비자의 압박을 받아온 TSI 홀딩스는 “인권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신장산 면화를 사용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중 갈등으로 섬유산업 멈춰 선 일본... 이번엔 초기대응 한 것

상반기 미중갈등으로 일본 섬유 산업이 줄줄이 타격을 맞은 바 있다. 이번 일본 섬유업체의 움직임은 전면전으로 번지기 전 빠른 조치를 취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 3월 당시 신장 면화의 강제 노동 생산 의혹 문제로 일본 섬유 업계엔 비상이 걸렸다. 

지난 3월 일본 기업인 아식스와 '무지루시료힌(無印良品·무인양품)'을 운영하는 '료힌게이카쿠(良品計画)',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패스트리테일링' 등에 불똥이 튀었다. 아식스는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웨이보를 통해 신장 목화 지지글을 게시해 전 세계에서 불매운동이라는 역풍을 맞았다. 

패스트리테일링은 올 5월 신장산 목화를 사용했다는 의혹으로 미국 당국에 의해 유니클로 남성용 셔츠 수입통관이 막히는 제재를 당했다. 이후 패스트리테일링은 각 공급망 단계에서 인권 침해 요소가 없는지 직접 확인하는 체제를 구축했다고 밝힌 상태다. 

료힌게이카쿠의 경우 중국의 영자지인 글로벌타임스를 통해 신장산 면화 보이콧 사실을 부인하면서 공급 라인을 점검한 결과, 신장의 인권 침해 문제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보이콧과 통관 제재 등 수위 높은 위험이 반복되자, 신장 면화를 사용한다고 밝혀진 일본기업 14곳은 거리두기를 택했다. 일본 스포츠 의류업체 미즈노는 신장산 면화 사용을 전면 중단했다. 2019년 3월 중국에 향후 3년 안에 500개의 점포를 세우겠다는 목표를 세우는 등 적극적인 중국 진출 방안을 내세웠지만, 이를 포기하고 내세운 결정이었다. 와콜 홀딩스, 산요 상회, 시마무라, 삼양상회 등은 신장 내 공장과 거래를 보류하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투자자 등의 압박도 거세졌다. 미국의 기관투자자 단체 ICCR은 일본 섬유 기업에 “강제 노동에 관여하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며 일본 기업 47개에 상세한 거래 내역 공개를 요구했다. 미국과의 관계를 우선으로 한 일본 정부도 움직였다. 금융청과 도쿄증권거래소는 지난 6월 상장기업에 적용되는 지침인 지배구조·코드에 인권 존중을 요구하는 규정을 포함시켰다.

 

일본 정부까지 나서 “공급망 점검하라” 

미중 갈등의 불똥이 자국 기업에 직접적 피해를 입히자, 일본 경제산업성과 일본 섬유산업 연맹은 7월 본격적 움직임에 나섰다. 

경제산업성은 지난 7월 12일 섬유 산업에 대해서 인권 침해의 회피나 환경 문제에 대한 대응 강화 지침 책정 등의 제언을 담은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최초로 공개했다. 보고서는 기업이 인권 침해 위험을 파악하고 정보를 개시하는 '인권 실사(Due Diligence)'를 위한 지침 가이던스를 제시하고 업계에 개선을 요청했다. 섬유 산업의 99%는 중소기업으로, 인권 침해 요소를 살펴볼 만한 인력이 부족한 탓에 당국이 직접 나선 것이다.

섬유산업 연맹은 국제노동기구(ILO)과 연계해 2022년까지 지침을 책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적절한 노동 시간이나 임금, 아동 노동 유무 등의 인권 침해 요소를 확인하는데 필요한 항목을 기업에게 알린다는 목적이다. 기업은 거래처가 인권 침해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지 조사하는데 이 지침서를 활용하기로 했다.

 

한국 산업에도 불똥 튈라... 인권 침해 점검 필요한 때

지난 3월 한국 기업에게도 유엔 인권보고관의 경고가 있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한국기업들이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인권침해와 관련된 기업들로부터 제품을 구매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며 한국정부와 기업에 해명을 요청했다. 해당 기업은 휠라, 해지스, LG, LG디스플레이, 삼성이었다.

유엔 인권보고관들이 지난 3월 12일 한국 기업들이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인권 탄압과 연루됐다며 한국 정부에 보낸 서한
유엔 인권보고관들이 지난 3월 12일 한국 기업들이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인권 탄압과 연루됐다며 한국 정부에 보낸 서한

UN 인권사무소는 “한국기업들이 연루됐다는 주장에 대해 예단하지 않겠다”면서도 “신장 위구르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와 노동법 위반 등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또 “신장 및 중국 내 기업들로부터 제품을 조달하는 한국기업들이 자신의 공급망에서 인권 침해가 이뤄지는지 제대로 점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전반적인 공급망 관리에 대해서도 질의했다. 인권사무소는 우리 정부에 기업들이 사업 운영과 공급망에서 인권을 존중하기 위해 시행 중인 법적·정책적 조치가 무엇인지, 향후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문의했다. 또 공공조달 부문에서 위구르족 인권 침해와 관련 있는 기업으로부터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지 않도록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국내 기업에서 인권 침해를 당한 해외 피해자들이 한국 사법 프로세스 내에서 어떻게 구제받을 수 있는지도 알려달라고 했다. 

우리 정부와 해당 기업들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유엔의 인권 관련 노력을 지지하며 앞으로도 잘 살펴보겠다”, LG는 “신장 위구르 지역 대상 협력사가 없고, LG디스플레이는 언급된 협력사 2곳 중 1곳은 거래관계가 없으며, 다른 1곳은 2020년 무렵 거래가 끝났다”고 설명했다. 

같은 요청에 일본 기업의 반응은 달랐다. 신장과 선을 그으면서도 공급망 관리 노력을 강화한 것이다. 일본 패션그룹 아다스트리아는 공장에서 노동환경 등 인권 실사 조사 결과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패션그룹 워크맨은 봉제 공장 외 원단 등 소재 공장에도 외부 감사를 검토했다. 미중 갈등이 전면전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는만큼, 우리 기업도 인권과 공급망 관리에 신경 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IMPACT ON(임팩트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