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의회 환경 및 경제 두 분과위원회가 천연가스와 원자력 에너지를 EU의 '녹색 라벨' 리스트에 포함하면 안 된다고 결정했다. 이에 택소노미 최종안은 7월 초 EU의회 전체 투표에 달릴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라 EU 연합국 간 이해관계가 복잡해지면서, 최종안 결정 가능성은 미궁으로 빠지고 있다.

12일(현지시각) EU 의회 환경 및 경제 분과위원회에 상정된 결의안에는 천연가스와 원전을 택소노미에 포함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담겼다. 

“지속가능한 경제 전환기에 천연가스와 원전의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보장 역할은 인정한다”면서도 “EU 집행위원회가 제안한 기술적 선별 기준은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의 규준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의안은 찬성 76표, 반대 62표로 통과됐다. 4명은 기권했다. 

이에 분과위원회에서 EU 집행위원회가 제안한 택소노미 최종안 반대의견이 공식적으로 채택됨에 따라 이 표결은 7월 초 전체 의회 표결로 넘어가게 됐다. 만약 705명의 EU의회 의원 중 과반수가 천연가스와 원전을 EU 택소노미에 포함돼선 안 된다고 지지하면, EU 집행위원회는 택소노미 최종안을 취소하거나 수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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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민주진보동맹 폴 탕 의원은 "오늘 투표는 EU 의회가 제도화된 그린워싱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으로 EU 집행위원회에게 보내는 강력한 항의 메시지"라고 밝혔다/EP
사회민주진보동맹 폴 탕 의원은 "오늘 투표는 EU 의회가 제도화된 그린워싱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으로 EU 집행위원회에게 보내는 강력한 항의 메시지"라고 밝혔다/EP

이번 결의안 작성에 참여한 베이사 이크호우트 의원은 분과위원회 투표 이후 발표한 성명서에서 “EU는 기후위기와의 싸움에서 세계적인 선두를 달리고 기후중립 경제 투자를 위한 금본위제를 설정할 기회를 가지고 있다”며 “우리는 과거의 에너지가 아니라 재생가능 에너지 확대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회민주진보동맹 폴 탕 의원은 “이번 투표는 EU가 천연가스 대신 재생에너지에 투자해 러시아 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치솟는 에너지 요금에 대항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 투표는 EU 의회가 제도화된 그린워싱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으로, EU 집행위원회에게 보내는 강력한 항의 메시지”라고 밝혔다. 

반면 프랑스를 대표한 EU 의회 의원이자 환경위원회 위원장인 파스칼 캔핀은 “과도기적인 연료로 천연가스와 원자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건 현실적인 해법”이라며 “궁극적으로 넷제로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현실의 선택을 침해할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보였다.

 

갈라진 EU... 7월 초 택소노미 부결 전망은 '불투명'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는 EU 집행위원회의 택소노미 규정은 아래와 같다.

▲석탄을 대체하고 KWh당 270g 이하의 탄소를 배출하는 천연가스는 일시적으로 ‘녹색 라벨’을 붙일 수 있으며, 20년간 연간 배출량이 KWh당 평균 550kg를 초과하지 않는 선에서 사용가능하다.

▲이 기준을 충족하는 천연가스 발전소는 2030년까지 건축 허가를 받아야 하며, 2035년 말까지 재생 가능한 가스 또는 저탄소 가스로 전환해야 한다.

▲원자력 발전소의 경우 환경 및 수자원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지 않는 이상 2045년까지 건축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지속가능한 펀드는 원자력 및 가스 보유와 관련한 투자자 정보 공개를 강화해야 한다.

이 규정들은 기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에너지원을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국가 간의 의견 차이를 낳고 있다.

독일과 같은 원자력 반대론자들은 폐기물 처리에 대한 우려를 언급하고 있는 반면, 프랑스를 포함한 원자력 발전소 보유국은 탄소 없는 에너지원이 기후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치솟은 에너지 가격으로 러시아 가스 의존도는 줄여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EU 회원국들 간 입장이 일치한다. 

그러나 동유럽 국가들은 더 많은 오염을 일으키는 석탄을 배제하고,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선 천연가스 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다른 국가들은 탄소를 배출하는 천연가스를 지속가능하다고 표기하는 것은 기후위기를 억제하려는 노력을 약화시킨다고 말한다.

자유주의와 중도를 표방하는 리뉴 유럽의 스웨덴 엠마 비즈너 EU 의회 의원은 “중도 성향의 EU의회 의원들은 천연가스 및 원자력 택소노미 포함 반대 제안에 동의하지 않았다”며 “프랑스와 독일이 갈라져 서로의 편을 더 많이 납치하는 게임에 빠졌다”고 밝혔다.

엠마 비즈너 의원은 그러면서도 “이번 결의안은 사실 꽤 넓은 다수의 동의를 받은 셈”이라며 “상당히 확실한 승리였고, 7월 본회의 표결에서도 좋은 신호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EU 이사회와 의회는 EU 집행위원회의 제안을 거부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EU 이사회에서 택소노미 최종안을 부결하려면 27개 회원국 중 20개 회원국이 반대해야 하는 등 반대 국가의 장벽은 꽤 높다.

반면 EU 의회 내에서 부결은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다. 과반수의 의원만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치적 구상은 또 다른 큰 도전”이라며 택소노미 최종안 부결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한편 자금 관리자들과 환경론자들은 택소노미에 천연가스와 원자력을 포함하는 것에 꾸준히 반대 입장을 내고 있다. 이런 조치는 2030년까지 55% 탄소 감축이라는 EU의 ‘Fit for 55’ 정책에도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금융업계에 그린워싱을 부채질 할 수 있다고 맹비판한다. 또 재생에너지 투자를 잠재적으로 회피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안데르스 셸데 덴마크 연기금 아카데미커펜션 최고투자책임자는 “천연가스나 원자력 같은 위험한 기술이 택소노미가 제공할 수 있는 일종의 인센티브인 저렴한 자금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화석연료와 원자력을 택소노미에 포함하는 실수를 바로잡는 것은 이제 의회에 달려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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