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고용시장 불안 지속, 인간-중심적 접근이 핵심

유엔 책임투자원칙(PRI)가 양질의 일자리 확대 방안에 관한 보고서를 지난 11일 발표했다./PRI
유엔 책임투자원칙(PRI)가 양질의 일자리 확대 방안에 관한 보고서를 지난 11일 발표했다./PRI

유엔 책임투자원칙(PRI)는 ‘투자자가 양질의 일자리를 늘릴 방안’이라는 제목의 노동 관련 보고서를 지난 11일(현지시각) 발표했다. 국제 기준에 맞춰 양질의 일자리를 정의하고 인간-중심적 접근을 통한 노동권 향상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보고서는 국제노동기구(ILO)가 정의한 괜찮은 일자리의 정의를 따른다. 양질의 노동은 직장 생활에서 열의를 가질 수 있는 요건을 포괄한다. 보고서는 양질의 일자리를 규정하는 요인으로 ▲생산적이고 적절한 수입 ▲직장 내 사회적 보호망 ▲자기계발과 사회통합에 기여 ▲표현의 자유 ▲조직 의사결정에의 참여 ▲남녀 간 평등한 대우를 제시했다.

투자자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데 인간-중심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고용을 단순 경제적 거래로 보는 시선을 넘을 것을 제안한다. 경제 효율의 측면에서 노동자를 인적 자본으로 인식하기보다는 경제적 존엄과 인간 발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케임브리지대 지속가능성 리더십 센터장인 카를로스 졸리(Carlos Joly) 박사는 “우리는 자본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부의 창출과 분배의 공정성, 노동자를 존엄하게 대우하려면 인적 자본이라는 용어를 버려야 한다“고 밝혔다.

양질의 일자리 보호·촉진은 세계인권선언(UDHR),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지침과 ILO(국제노동기구) 등 국제 인권 관련 핵심 협약에서 언급하고 있다. 유엔 지속가능개발목표(SDGs)의 SDG8(양질의 일자리 촉진)도 같은 접근법 속에서 제시됐다. 이처럼 양질의 일자리의 범위를 확장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은 많다.

관련기사: 2021년 주목할 ESG 트렌드는? 5편 불평등(끝)...MSCI 보고서

'양질의 일자리 향상을 위한 투자자의 방안' PRI 보고서 표지. /PRI
'양질의 일자리 향상을 위한 투자자의 방안' PRI 보고서 표지. /PRI

 

양질의 일자리는 왜 필요할까?

양질의 일자리는 국제 인권 관련 논의에 포함돼 투자자가 존중할 의무가 있다. 이는 2011년 유엔과 OECD를 통해 공식화된 책임이다. 투자자의 운영 활동뿐 아니라 다양한 투자 관련 결과에도 적용된다. 

실제로 투자통합프로젝트(TIIP)가 PRI에 의뢰한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 격차는 오히려 투자자들의 재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한다. OECD 역시 양질의 일자리 부족과 소득 불평등 증가 간 연관성을 강조하며 "양질의 일자리 부족은 사회적·정치적 불안뿐 아니라 경제 실적 감소를 동반한다"고 밝혔다.

양질의 일자리 보호를 통해 기업이 이익을 얻는다는 보고도 있다. PRI의 ESG 통합 보고서에 따르면 투자자가 노사갈등,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해 베타 리스크를 줄이고 회사의 공급망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하면 기업 운영 효율성은 늘고, 평판이 추락할 위험이 줄어든다. 

 

양질의 일자리 부족의 현실…고통받는 비공식 노동자

2001년 ILO는 "양질의 일자리 부족이 고용 기회 부족, 불충분한 사회적 보호, 노동자의 권리 행사 거부, 사회적 대화 단절로 이어졌다"고 발표한 바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상황은 더 악화됐다. 2020년 한 해에만 총 114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OECD는 팬데믹의 첫 3개월 동안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이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10배인데다가 앞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ILO '세계 고용 및 사회 전망 2022 보고서'에 따르면, 팬데믹으로 인해 7700만명이 극도의 빈곤에 놓이게 됐다. 특히 전염병 유행과 함께 큰 피해를 받은 비공식적 경제(informal economy)에 속한 경우가 많았던 개발도상국 여성 계층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비공식적 경제는 고용의 공식적 구조 밖에서 발생하는 보수를 받는 노동이다. 비공식적 경제는 농업 비중이 높은 개발도상국에서 주로 나타난다. 비공식적 노동은 법적으로 고용 지위가 없고 평균적인 수입이 낮다. 비공식적 경제 종사자는 열악한 근로 조건 속에서 사회적 보호 및 혜택에 접근하기 어렵다.

PRI는 보고서를 통해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정책 입안자는 중소기업이 마주한 장애물을 인식하고, 누진적 조세 구조를 촉진하고, 세법을 단순화해야 한다. 둘째, 규제 당국은 공식적 경제에 많은 근로자가 있어야 재무 성과와 생산성이 늘어 혜택도 커진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셋째, 다중 이해관계자 접근법을 채택해 노동단체, 정부, 기업의 소통을 장려하는 것이다.

 

세 가지 패러다임 전환이 미래 일자리 바꾼다

보고서에 따르면,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 ▲기술의 진보 ▲인구 통계적 변화 등 3가지 패러다임 전환이 미래 일자리를 바꾸게 될 전망이다. 

먼저 투자자는 저탄소 흐름 속에서 '정의로운 전환'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 저탄소 정책이 근로자, 지역사회, 소비자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고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리가 부실하면 넷제로의 전환은 불평등을 키우고 노동자와 지역사회를 고립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지만, 효율적으로 전환되면 투자자에게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보고서는 ▲신재생에너지와 지속가능한 건설 및 개조, 고용 창출 및 인력 재숙련 ▲녹색 채권, 지속가능한 인프라 및 녹색 부동산 등 자산 전반에 걸친 새로운 투자 기회 ▲파리협약의 목표 달성 시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일자리 2400만 개 창출 ▲녹색 경제에 대한 투자가 포괄적인 업무 의제를 진전시킨다고 봤다. 

둘째, 기술의 진보와 관련해 2030년대 중반까지 자동화로 일자리의 약 30%가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 노동자와 관리자 간의 대화가 사전에 대책을 구체화하고 재교육을 장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산업 전반에 걸쳐 디지털 고용 플랫폼의 사용이 늘어나면서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보호와 노동 조건이 열악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양질의 일자리를 지원하기 위해 디지털 플랫폼은 양질의 일자리에 대한 안전장치를 존중해야 하며, 개인정보 사용과 알고리즘에 대한 규제도 병행돼야 한다. 기술에 대한 적절한 규제와 노동자 재교육을 통해, 혁신을 촉진하고 정보격차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인구 통계적 변화와 관련, 보고서는 2050년까지 60세 이상 인구가 두 배로 늘어나고 청년 인구는 계속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노동시장에서 상당수의 노동자가 사라지고, 청년인구로 전환된다는 의미다. 

청년 실업 증가 추세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청년 계층의 훈련과 교육에 대한 정부와 민간 부문의 투자가 필요하다. 노동자와 지역사회가 저탄소 경제 패러다임에 준비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이 접근법은 고령 노동자에게도 재교육이라는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연금 시스템도 함께 조정할 필요가 있다. 청년 교육과 고령 노동자의 재교육이라는 접근법은 고용불안으로 인해 투자금을 회수하려는 투자자들에 대한 압력을 완화하고 연금 체계와 돌봄 노동자들에 대한 수요에 대한 압박을 부분적으로 완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임팩트온(Impact O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