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화탄소가 무역장벽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현실이 됐다.
그 첫 단추를 꿴 인물은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이다. 그녀는 최근 “2030년까지 EU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최소 55% 줄이겠다”고 밝혔다. 기존에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목표는 40%까지였는데, 무려 15%나 목표치를 높게 잡았다. 2050년까지 기후중립을 달성해서 유럽을 ‘세계 최초의 기후중립대륙’으로 만들겠다고도 했다.
이렇게 되면 유럽연합 내에서는 기업들의 부담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미 유럽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ETS)’를 시행하면서 온실가스 감축을 해오고 있다. 여기서 더 강력한 규제가 이뤄지면, EU 기업들은 탄소비용 부담이 늘어나고, 반대로 해외에서 수입되는 물건·서비스(재화)는 값이 싸니까 경쟁력이 높아진다. “탄소 부담 때문에 역차별이 벌어진다”는 EU 기업들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EU는 탄소국경세 도입을 강력 추진중이다. 한마디로, “앞으로 유럽으로 물건을 수출하려면 유럽기업들이 줄이는 이산화탄소만큼 너희들이 세금을 내라”는 개념이다.
10월말까지 탄소국경세 공청회 기간 , 의견 수렴
지금까지 진행경과를 보면, 올 3월 탄소국경세 로드맵이 만들어졌고, 지난 7월부터 10월말까지 3개월간 ‘공청회(Public consultation)’ 단계에 돌입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내년 6월까지는 EU 집행위에서 탄소국경세에 관한 세부운영방안을 채택하고, 2023년까지 탄소국경세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달 초에 국무조정실,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환경부는 EU 탄소국경세 도입과 관련한 대책회의를 열고 대응방안을 논의했다고 한다.
현재 EU의 공청회 안을 보면, 탄소국경세에 관한 예상 형태는 3가지 정도다. ▲탄소집약적인 제품이나업종에만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 ▲수입품에도 EU의 배출권 거래제(ETS)를 적용하는 방안 ▲모든 수입품에 소비세 또는 부가가치세 등의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 등이다. 이와 함께 EU 위원회는 에너지 사용량이 많은 시멘트와 철강 제품부터 적용계획을 언급했고, 향후 자동차, 화학, 반도체 등 모든 산업군으로 탄소 국경세 논의를 확대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처럼 자발적으로 배출권 거래제를 실시해 온실가스 감축을 시행중인 기업은 이중 부담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의식해 EU와 유사한 수준의 온실가스를 규제하는 국가, 저개발 국가 등은 탄소국경세 적용을 면제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는데, 우리나라가 이에 해당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EU 내에서도 독일의 경우 반대가 심하다. 일부에서는 “시행이 복잡하다” “WTO와 같은 기존 무역규칙을 어떻게 준수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기대하는 만큼 세수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며 반대하고 있다.
전체 수출의 9.7% 차지하는 EU 탄소국경세, 대응 필요해
하지만 EU 집행부는 확고한 의지를 보이고 있어, 탄소 국경세 도입이 가시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게다가 EU는 지난해 12월 그린딜(Green Deal)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탄소국경세를 EU의 경제회복기금(7500억유로)에 대한 재원조달의 원천으로 보고 있다. 탄소국경세로 인한 수입을 50억~140억유로(6조~19조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디지털세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때문에 EU로서는 WTO 분쟁으로 확대되더라도 탄소국경세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EU는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9.7%(2019년 기준)를 차지한다. 자동차, 선박, 철강, 전기전자 등의 산업 수출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정부와 기업의 각별한 모니터링과 협상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 국내 기업이 온실가스 저감 기술과 제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돕고, 재생에너지 정책 확대에서 국내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도록 돕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