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장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는 <더 글로리>였다. 학교폭력을 겪었던 주인공이 오랫동안 치밀하게 복수를 준비하는 긴장감 넘치는 서사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다. 이 드라마에서 학교폭력의 가해자 중 하나인 전재준은 적색과 녹색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또 다른 가해자인 박연진의 딸도 전재준과 유사한 적록색약 증상을 겪는다.

히트작 제조기로 불리는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에 괜히 이런 작위적인 설정이 들어가지는 않았을 터이다. 극적 요소를 다소 과장되게 가미했겠으나, 적색과 녹색을 가려내지 못하는 것은 이 작품에서 꽤나 핵심적인 단서이자 유의미한 상징이다. 온라인상에서는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녹색 구두가 어떤 기제로 작동할지 그럴듯한 추측과 해석이 무성하다.

 

건축물에 붙는 ‘그린 프리미엄’과 ‘브라운 디스카운트’

ESG를 이야기하려는 글에 웬 색깔 타령이냐고? 이제 건축물로 시선을 돌려보자. 건설 및 부동산 금융업계에서 화두는 녹색과 적색이 아닌, 녹색과 갈색의 구분이다. 두 색상의 구획을 가르는 것은 다름 아닌 ESG다.

건물이 녹색으로 분류되면 프리미엄을, 갈색으로 인식되면 디스카운트라는 상반된 성적표를 받게 된다. ESG가 그저 특정 기업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홍보성 활동이라거나, 이런저런 비용만 과다하게 수반되는 부담스러운 요식행위라는 식의 ‘반(反) ESG’ 주장과는 전혀 결이 다른 현상이다. 거칠게 말하면, ESG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면 실제로 자산의 값어치가 깎인다는 것이다.

친환경적이지 못하게 설계되었거나, 낙후한 환경에 놓인 노후한 건물들은 건물 자체의 가격이나 임대료 등에서 적잖은 손실을 볼 공산이 커졌다. 이를 ‘브라운 디스카운트(brown discount)’라고 부른다. 이와 반대되는 개념은 ‘그린 프리미엄(green premium)’이다. 요컨대 친환경 건물에 웃돈이 붙는 것이다. 녹색과 갈색 사이, 이제 돈이 오고 가는 엄중한 사안이 되었다.

 

녹색과 갈색,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경제적 가치의 차이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분석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영국 런던에서 LEED(Leadership in Energy and Environmental Design)나 BREEAM(Building Research Establishment Environmental Assessment Method) 등과 같은 친환경 건축 인증을 받은 녹색 건물은 그렇지 않은 건물에 비해 약 25% 정도 가격이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35%까지 그 격차가 더 벌어진다. 이런 가격 차이(sale-price gap)로 누군가는 프리미엄을 얻고, 누군가는 가치평가 절하에 직면한다.

임대료도 건물이 녹색인지, 갈색인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 회사 JLL(Jones Lang LaSalle)은 홍콩에서 LEED 인증 여부에 따라 플래티넘(Platinum) 등급의 경우 최대 28%(임대료 기준)까지 그린 프리미엄이 붙는다고 밝혔다. 영국계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 그룹인 나이트프랭크(Knight Frank)는 영국에서 BREEAM의 중간 등급 이상 인증을 받은 자산의 경우 10% 이상의 임대료 프리미엄을 기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오피스뿐 아니라 앞으로 물류센터도 보다 친환경적인 자산에 임대료 프리미엄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공실률 또한 미국 중심업무지구에서 LEED 인증 빌딩의 공실률이 일반 빌딩의 공실률보다 낮아지는 경향이 발견되고 있다. 이렇다 보니 국내에서도 마스턴투자운용, 이지스자산운용 등과 같은 주요 부동산 자산운용사들이 친환경 건축 인증에 커다란 관심을 쏟고 있다. 

 

서울 오피스의 숙명, 건설업·부동산 금융업의 ‘ESG 시즌2’를 준비해야

이런 비자발적 디스카운트 현상은 더 이상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한국에서도 그간 주로 공공영역 위주로 가해졌던 건축물에 대한 온실가스 감축 규제가 민간영역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이는 국내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작지 않은 충격파를 던질 것이다. 당장 인허가 단계에서부터 제로에너지건축물(Zero Energy Building, ZEB) 인증 등 고려해야 하는 요소가 예전보다 많아졌기 때문이다.

글로벌 종합부동산서비스 기업 세빌스코리아에 따르면, 서울 소재 2000평 이상의 오피스 셋 중 하나는 준공 기준 30년이 넘는 노후 건축물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보는 건물의 약 33%가 브라운 디스카운트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수천억 원이 넘는 프라임급 대형 오피스의 경우, 이 자산에 투자자와 임차인, 지역사회(혹은 지자체) 등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해당 자산의 노후화로 가치가 하락하면, 이 생태계에 어마어마한 경제적, 사회적 피해를 끼칠 수 있다. 특히 도심 소재 주요 오피스들은 상장 리츠나 공모 펀드 등에 편입된 자산도 많기에, 브라운 디스카운트는 기관투자자뿐 아니라 개인투자자에게도 당면한 자산관리 이슈이다.

다시 <더 글로리> 얘기다. 지금 필자를 비롯해 많은 시청자는 오는 3월로 예정된 시즌2를 눈이 빠지게 열렬히 기다리고 있다. 악독한 폭력의 일방적인 피해자였던 주인공의 통쾌한 복수가 본격적으로 시작될지 자못 궁금하다.

건설 및 부동산 금융업계야말로 이제 ‘시즌2’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ESG에 대한 자세를 고쳐 잡으며 말이다. 이산화탄소를 기준으로 환산한 6개 온실가스(이산화탄소·메탄·아산화질소·수소불화탄소·육불화황·과불화탄소)의 배출총량인 CO2eq 전 세계 배출량의 약 37%를 다름 아닌 건축물이 차지하기에 그만큼 책임도 막중하다.

녹색과 갈색 사이, 어느 쪽이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일지는 당위적·윤리적 측면뿐 아니라 경제적·실리적 측면으로도 정답은 정해져 있다. 친환경적으로 건축물을, (하드웨어뿐 아니라 임차인의 건강과 문화생활 등을 폭넓게 고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서 우리가 일하고 생활하는 도시의 환경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데 중지를 모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더 글로리> 명대사로 글을 마쳐볼까 한다. 만약 ‘갈색’ 건물을 ‘녹색’으로 전환하지 못한다면 “오늘부터 모든 날이 흉흉할 거야.” 그래도 공간을 만들어가는 건설 및 부동산 업계에서 넷제로를 비롯한 ESG 의제에 진심 어린 행동을 보인다면, “나 지금 되게 신나.”

그린 프리미엄을 향유하는 기업이 많아지길 바라며 이만 줄인다.


마스턴투자운용 김민석 팀장
마스턴투자운용 김민석 팀장

 

☞ 김민석 팀장

김민석 팀장(listen-listen@nate.com)은 대체투자 전문 자산운용사인 마스턴투자운용에 재직 중이다. 브랜드전략팀 팀장과 ESG LAB의 연구위원을 맡고 있다. 경영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행정학·정책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필명으로 몇 권의 책을 내기도 했다. 대통령 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서울에너지공사 시민위원,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자문위원 등으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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