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제도’라는 것이 있다. 정부와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운영되고 있는데, 이 제도는 시민들에게 얼마나 ‘인지’되고 있는 것일까? 역사가 짧은 것은 둘째 치고, ‘인지 예산제도’라는 말부터 적이 낯설고 어렵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약칭 : 탄소중립기본법) 제24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관계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예산과 기금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이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운용에 반영하는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제도를 실시하여야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제도의 규정이 명징하게 나와 있다. ‘예산과 기금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이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운용에 반영하는’ 제도인 것이다.
‘인지 예산’에 대한 오독(精緻)을 경계해야…유기적인 환류 체계가 핵심
‘인지 예산’의 개념이 아직 헷갈린다면, 좀 더 긴 나이테를 가진 ‘성인지(性認知) 예산제도’에 대해 알아보자. 국가재정법 제26조는 성인지 예산서의 작성에 대해 다루고 있다. 성인지 예산서는 ‘예산이 여성과 남성에게 미칠 영향을 미리 분석한 보고서’로 정리할 수 있다. 이 예산서에는 성평등 기대효과, 성과목표, 성별 수혜분석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다시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제도로 돌아오자. 성인지 예산서의 작성을 다룬 바로 다음(국가재정법 제27조)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서의 작성을 다룬다. 2항에서 ‘온실가스 감축에 미칠 영향을 미리 분석한 보고서’인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서에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기대효과, 성과목표, 효과분석 등을 포함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3항에서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서의 작성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말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인지 예산제도’는 분류법이자 분석 방법론이다. ‘인지’라는 말이 괜히 붙은 게 아닐 터이다. 별도로 어느 특정 부처에 예산을 할당했다고 이해하는 것은 단견의 소치다. 성인지 예산이 여성가족부 전용으로 배정된 예산이 아니듯이,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 또한 환경부가 전유하는 것이 아니다. 성인지 예산제도 도입 과정에서 ‘인지 예산’ 자체에 대한 몰이해로 무익한 논쟁이 거듭됐던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물론 인지 예산제가 단순히 분류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예산이 온실가스 감축에 미칠 영향을 철저히 분석하고, 이 고민의 결과물을 예산 편성에 반영하며, 결산에 대해서도 집행의 적정성을 면밀히 점검하고 평가해야 한다. 이런 유기적인 환류 체계가 핵심이다.
성인지 예산제에서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예산 편성 과정에서 ‘성 주류화(gender mainstreaming)’를 이끄는 것이라면,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제의 목적은 ‘기후 주류화’라고 할 수 있겠다. 모든 정책을 고안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기후위기 인식을 고려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후위기 이슈의 해결을 중시하면서 예산 편성과 결산의 문법을 바꾸고자 하는 취지를 올바르게 이해해야 할 것이다.
제도의 수용성, 실효성,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제도적 보완 필요
제도 시행 초기이니만큼 부족한 점도 물론 많다. 각 부서 입장에서는 피평가자로서 어떤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주장해야 하니 다소 부풀려지는 경향이 있고, 이는 그린워싱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부풀려지는 것을 넘어, 즉 과장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온실가스감축과 전혀 무관한 프로젝트가 꼭 친환경 사업인 양 이현령비현령식으로 나열되기도 한다. 탄소 성적표가 과다 계산 혹은 과소 계산의 산물로 인식되면, 제도의 신뢰도는 급전직하하기 마련이다. 아직은 ‘해석의 공간’이 너무 넓어서일까. 성인지 예산제도 운영 과정에서 지적됐던 미비점이 반복해서 노정된다.
또 무엇보다 온실가스의 ‘감축’만 인지하는 것은 태생적인 한계점이다. 그러면 소는 누가 키우나? 아니, ‘배출’은 누가 체크하고 관리한다는 말인가. 제도 시행 초기인 것을 감안해야겠지만, 추후에는 더 포괄적이고 전체론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정부와 달리 아직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제가 의무화되지 않은 지자체에서 나름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 전국 처음으로 기후인지예산서를 발간한 바 있는 경상남도는 기후 친화 사업(기후정책사업, 부분감축사업), 기후 부정영향사업, 기후 잠재영향사업, 기후 중립사업으로 나눠서 예산을 살펴보고 있다. 경상남도 홈페이지에서는 친화, 부정, 잠재로 구분해서 별도의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서를 다운로드할 수 있다.
아직 아쉬운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제도의 수용성과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여러 보완책을 마련하고 각론 영역에서 정치(精緻)함을 더 가다듬어 가며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가는 게 중요할 것이다. 일단 이 제도의 목적, 맥락 등이 온전하게 ‘인지’될 수 있도록 부처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중지를 모아야 한다.
기초지자체에서 부는 바람… 관(官)뿐 아니라 민(民)도 노력해야
그래도 희망은 있다. 경기도와 같은 광역지방자치단체뿐 아니라 대전광역시 대덕구나 순천시, 서울시 은평구 등 기초지방자치단체에서도 자발적으로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제도를 운용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상상을 덧붙인다. 연말 연초에 기업의 각 부서에서 심혈을 기울이는 것을 두 가지만 꼽자면 평가와 예산이다. 이 둘은 서로 밀접히 연결되는 사안이기도 하다. 정부와 지자체처럼 기업에서도 회계팀, 홍보팀, 법무팀, 자금팀, 인사팀, 감사팀 등 각 부서에서 사용하는 예산을 온실가스감축이라는 잣대로 나눠보게 되면 어떨까. 기왕 하는 것 ‘태깅(Tagging)’을 통해 보다 면밀하게! 나라 살림과 기업의 운영은 분명 본질적으로 결이 다르지만, 온실가스에 대해서는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니까. 좋은 제도는 관(官)이든 민(民)이든 서로 배우면 좋겠다.
☞ 김민석 팀장은
김민석 팀장(listen-listen@nate.com)은 대체투자 전문 자산운용사인 마스턴투자운용에 재직 중이다. 브랜드전략팀 팀장과 ESG LAB의 연구위원을 맡고 있다. 경영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행정학·정책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필명으로 몇 권의 책을 내기도 했다. 대통령 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서울에너지공사 시민위원,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외부전문가 자문위원,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외부 전문위원 등으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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