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는 생명권, 식량권, 건강권, 주거권 등 인권에 직간접적으로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므로, 정부는 기후위기 상황에서 모든 사람의 인권을 보호·증진하는 것을 국가의 기본 의무로 인식하고, 기후위기를 인권 관점에서 접근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 및 제도를 개선하여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최근에 발표한 메시지다. 정부가 기후위기로부터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것을 기본 의무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이다. 기후위기 취약계층을 유형화하고,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상향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인권위가 기후위기와 인권 문제에 관해 공식적인 의견을 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권위의 발표가 구속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떠나, 인권의 보호와 향상을 위한 업무를 수행하는 인권 전담 국가기관에서 기후위기를 인권의 렌즈로 들여다봐야 한다고 공언했다는 것은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정부 부처의 정책 결정에 다각도로 영향을 끼칠 수 있고, 기업과 학계 및 시민사회에도 적지 않은 고민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기후위기=환경 문제’라는 기계적인 도식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도 환경 문제를 다루는 문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사실 인권과 환경을 교집합이 없는 전혀 다른 별개의 영역으로 구획해왔던 것 자체부터 문제였는지 모른다.

기후위기를 인권의 맥락으로 살펴보게 되면, 문제 인식부터 해법 모색까지 논의의 축이 달라진다. 기후위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ESG도 마찬가지다. 사고의 무게중심이 바뀌는 것이다.

이제 기후위기를 둘러싼 문제를 경시하는 기업이 있다면, 그 기업에는 반(反)환경적일 뿐 아니라 반(反)인권적이라는 명예롭지 못한 꼬리표가 따라붙을 것이다. 역풍의 강도가 세지는 것은 덤이고. 그린워싱(green washing)의 ‘사회적 형량’도 올라갈 터이다. ‘위장환경주의’ 정도의 의미를 지녔을 때와 인권에 해를 가한다는 날카로운 비판까지 더했을 때를 비교해 보자. 죄질이 훨씬 더 나빠지고, 중죄에 처할 공산이 더 커지는 것은 필연적 귀결이다.

제목부터 섬뜩한 <2050 거주불능 지구(The Uninhabitable Earth)>의 저자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David Wallace-Wells)는 최근 벌어지는 각종 재난이 다가올 미래에 나타날 재난에 비하면 ‘최상의 시나리오’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주장했다. 그만큼 앞으로의 상황이 더 심각하다는 뜻이다. 또 일상 자체가 종말을 맞이할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지금도 우리는 크고 작은 재난으로 환경적 비애(environmental grief)와 기후 불안증(climate anxiety)에 빠지곤 하는데, 이 정도가 상대적으로 최상의 시나리오에 속한다니. 불안함이 배가된다.

유엔 기후변화 특사와 유엔 인권고등판무관 등을 역임한 메리 로빈슨(Mary Robinson) 전 아일랜드 대통령은 “기후변화와의 싸움은 기본적으로 인권 문제”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싸움의 링 위에 담담히 서야 하는 ESG 부서의 담당자들은 기후위기를 바라보는 인식 틀을 재점검해야 한다. 인권을 ESG 중 S(사회)의 하위요소로 보던 구래의 시각을 교정하고, 기후위기를 인권의 관점에서 재해석해야 할 것이다. 환경공학과 경영학의 정량적인 분석 기법뿐 아니라 윤리학과 사회학의 세계관도 요구된다. 새로운 싸움이 시작됐다.         


☞ 김민석 팀장은

 

김민석 팀장(listen-listen@nate.com)은 대체투자 전문 자산운용사인 마스턴투자운용에 재직 중이다. 브랜드전략팀 팀장과 ESG LAB의 연구위원을 맡고 있다. 석사과정에서는 경영학을, 박사과정에서는 행정학·정책학을 수학했다. 필명으로 몇 권의 책을 내기도 했다. 대통령 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자문위원 등으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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